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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Feb 10. 2021

선택의 고통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217027010&fbclid=IwAR01uNhfQXoze4tLJfblbriHYPFzmZp_n3FOdcKZMEUrzVmbEtzgRfFJ4sM

최근 출간된 이해인 수녀님의 대담집 <이해인의 말>에는 수녀님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가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항암화학치료, 방사선치료, 수술 중 어떤 치료를 먼저 하시겠느냐고, 생존률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 진료실에서 자주 벌어지는 풍경이다. 암 치료는 점점 발전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의 가짓수도 늘어난다. 하지만 그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먹거리나 옷가지를 사는 것도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 행복도 보다는 선택피로를 가중시키는데, 하물며 목숨이 달린 암 치료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환자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물론 암 같은 위중한 질병의 치료는 언제나 실패의 확률이 있기 때문에, 그 확률을 올리고자 늘 의료진은 새로운 방법을 찾고 여러 방법을 비교하면서 최선의 길을 찾아나간다. 문제는 어떤 방법이던 장점이 있으면 그에 따르는 단점이 있어서, 선택이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효과가 좋으면 합병증 위험도 같이 높아지기도 하고, 또 그 효과라는 것도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니 말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우리는 최저가격만 찾아서 구입하지는 않는다. 가성비, 디자인, 내구성, 배송기간 등을 다양하게 고려해서 고르느라 골치가 아프다. 그러나 치료방법은 온라인쇼핑처럼 가격과 성능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해주는 것도 아니요, 의료진의 몇 마디에 의존해서 결정을 내려야 하니 보통 난감한 것이 아니다. 

직장암 치료라면 방사선치료를 먼저 해서 재발률을 더 낮출 수 있지만, 만성설사를 앓게 될 확률은 수술만 하는 경우에 비해 조금 더 올라간다. 보통은 그래도 완치율을 가장 먼저 고려해서 결정하게 되지만, 환자 개개인에게는 늘 난감한 선택이 된다. 재발률을 5% 낮추기 위해 더 높은 합병증을 감수해야 할까? 만약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해서 활동이 어려워지거나, 일자리를 잃는다면? 하지만 방사선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합병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만약 수술만 했다가 재발한다면? 사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 정도의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을 붙잡고 있기도 힘들다. 그것을 대부분의 의료인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왜 이 어려운 선택을 환자에게 하라고 미루는 것일까? 많은 경우 그것은 결정이 어렵고 부담스러우며, 결과의 불확실성을 책임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래왔고, 짧은 진료시간과 소송의 부담, 의료진에 대한 불신 등을 들며 변명을 해오기도 했다. 그래도 선택의 고통 속에 환자를 방치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의사이자 작가인 아툴가완디는 그의 초창기 저서인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에서 의료법학자인 칼 스나이더의 말을 빌어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결정의 부담을 환자에게 미루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환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어떤 미래를 그리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가 완치율을 높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재발위험이 높아지더라도 치료로 인한 고생을 겪지 않고 쉬는 수 개월이 더 소중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는 재발의 위험이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힘들더라도 해볼 수 있는 치료를 다 해보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것은 늘 어렵고, 위중한 병을 진단받은 위기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의사 역시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을 파악해서 알려주는 알고리즘같은 존재는 아니어서, 그가 가장 정확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의료 결정을 도와주는 인공지능솔루션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기는 하지만, 숫자로 나타나는 생존률과 정량화된 삶의 질을 기준으로 한 결정은 도와줄 수 있어도 내 마음과 가치관까지 들여다보고 의료 결정을 내려줄 수 있을까? 최적의 결정은 인공지능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여 판단을 일임함으로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질병과 치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진과 나누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아툴가완디는 폐렴으로 호흡곤란을 겪던 자신의 자녀가 인공호흡기를 달 경우와 좀더 지켜보는 경우의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 결정을 본인이 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는 중환자실 의료진을 믿었고 그들에게 결정을 맡겼다. 이해인수녀님은 “지금이라도 선생님의 마음 안에서 수술을 먼저 하고 싶으면 수술을 하시고 방사선치료를 먼저 하고 싶으면 방사선치료를 하세요. 결과가 안 좋게 나오더라도 저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의사를 믿고 결정을 맡기는 것은 치료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거나 환자가 자기 자신을 충분히 잘 알고 있을 때이다. 최선의 선택을 돕되 가끔은 그 엄중한 선택의 부담마저도 대신 짊어지는 것이 의사의 일이지만, 그래서 주어지는 신뢰에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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