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Feb 19. 2021

백신 보도 유감

국내 의료진의 코로나 백신 거부감을 취재하면서 "접종을 의무화하면 사표쓰겠다"는 말을 한 의료진의 말을 그대로 헤드라인으로 단 자극적 기사가 최근 나왔습니다. 무려 의학전문기자가 쓴 것이더군요. 

https://news.v.daum.net/v/20210218201224023?x_trkm=t

물론 기사 말미에는 백신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우려하면서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을 요약해주는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목이 이렇게 나가면 곤란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기사를 다 읽지 않습니다. 제목을 보고 '백신이 위험하구나' '의료진도 거부한다니 안전성에 우려가 있긴 있구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위험이 큽니다. 그리고 실제 백신을 거부하는 의료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굳이 보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기사 중 인용된 의무접종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만 해도 그렇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의료인 연합(가칭)"은 의사 7명, 치과의사 3명, 한의사 9명으로 구성된 조직입니다. 문제의  SBS 기사에는 천 명 넘는 의료인들이 서명했다고 하고, 현재까지 만 명 넘는 서명을 받았다고는 하나 이들이 모두 의료인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성명서의 내용이 백신자체가 아니라 의무화를 반대한다는 내용임을 감안하더라도, 의료인이 이러한 성명을 내는 것 자체가 백신에 대한 불신과 순응도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이 성명서를 발의한 이들 대부분을 저는 모르지만, 한 분은 제가 다닌 의과대학의 기초교실 교수로서 실제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 분이고, 예전부터 비타민C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유사과학을 설파해오던 독실한 기독교도라는 점에서 그다지 신뢰가 가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전문가로서의 실력과 양심과 책임감을 갖춘 저의 동료와 친구, 선후배들 중 백신을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학회나 병원에서도 백신을 거부하거나 유보해야한다는 의견을 개진하는 이는 없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백신 의무접종은 법적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백신접종은 의무가 아닙니다. 접종이 시작된 미국, 유럽 등에서도 국가적으로 강력히 권고하고 있으나 강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국의사협회지의 시론에서도 단기간의 안전성 데이터만을 갖추고 응급사용승인을 받은 백신을 의무적으로 접종하는 것은 법적으로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기데이터가 축적되고 정식 승인을 받게 되면 이후로는 의무접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합니다)  https://ja.ma/3qtPP7X 그러나 의무접종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백신 자체가 위험하다는 뜻과 동의어는 결코 아닙니다. 백신은 단기데이터 자체는 충분히 안전하며 효과가 좋고, 무엇보다 백신의 위험보다 코로나19 로 인한 질병과 유행지속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개인적 위험이 훨씬 더 큽니다. 

물론 백신 접종을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며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 상황에서 대부분의 성인에게 백신접종은 위험보다 이득이 훨씬 큽니다. 적어도 언론, 정치인, 그리고 의료인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왜곡되거나 잘못 포장된 정보가 유통되는 것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을 조장하는 기사를 쓴 의학전문기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기사를 오늘 하나 보았습니다. 오늘 뉴욕타임즈에는 백신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나왔더군요. 현재 16세 미만에는 백신이 승인되어 있지 않아서 현재 모더나, 화이자 백신은 청소년 대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경우 본인은 물론 부모의 동의까지 모두 얻어야 임상시험 참여가 가능합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인종, 나이, 태도, 생각들이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과학의 발전과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부 청소년들은 그 자신 역시 임상시험에 참여한 의료인의 자녀들이기도 합니다. 

https://www.nytimes.com/2021/02/16/health/covid-vaccine-teens.html

왜 우리 언론기사에는 불안감만이 넘쳐날까요? '실험용 동물이 되기 싫다'는 자극적인 제목도 보입니다. 임상시험은 환자의 자율성과 이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진행되는 것으로, 임상시험 피험자는 실험용 동물처럼 함부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실험용 동물이 되기 싫으면 다른 이는 되어도 되는 것인가요? 나보다 먼저 임상시험에 참여한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낼 수는 없나요? 이 전례 없는 공중보건의 위기는 인류 모두가 함께 공동으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남들이 임상시험에 참여해서 충분히 안전성을 검증해주어야 비로소 백신을 맞겠다는 마음은, 평상시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저는 현재 해외 의료기관에 연수중이라 이미 백신을 맞았고, 지금 중학생인 제 자녀도 만약 청소년 임상시험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권유할 생각입니다. 사실 한국에 계신 저의 70대 어머니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예정대로 고령자도 접종을 시작하게 되었다면 강력히 권유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은 우려할 수준은 아니며 현재 유행상황을 고려했을 때 고령자 접종을 유보한 결정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실제로는 결정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는 평가를 제 주변에서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나치게 유보적인 결정이 결국 백신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는 결과를 이미 낳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백신이나 감염질환, 역학 등 관련 분야 전문가는 아니어서 가능하면 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지난 독감백신 접종시기에 이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불신론이 점점 고개를 드는 상황인데 정부, 언론, 의료계의 대응이 모두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의료인 중 한 사람으로서 책임있는 말을 한마디라도 더 보태야겠다 싶어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이다 발언 유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