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Oct 22. 2016

외할머니를 하늘로 보내며 (5) 

말 그대로 한줌의 재가 된 외할머니를 모시고 장지로 향하는 중이다. 고통받던 수많은 병든 몸들이 성스럽게 고이 모셔지는 광경은 낯설었다. 비록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일지라도. 병든 몸들은 붓고, 멍들고, 진물이 나오고, 때론 욕창으로 고름과 냄새로 가득찬, 그가 사랑했고 그를 사랑한 누군가의 애물단지였을 것이다.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인간답지 않았던 순간을 거쳐 영정 속의 팽팽한 얼굴로 돌아오는 듯 싶더니 순식간에 재가 된다. 

아침에 회진을 돌고 온 환자들을 생각한다. 일부는 아마 수개월 내에 재가 될 운명이다. 황달이 낀 노란 눈자위와 앙상한 팔다리를 생각한다. 아무리 흔들리는 촛불같이 위태로운 생명일지라도 재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죽음이란 이 애물단지같은 몸뚱아리에서 벗어나는 고통의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재가 된 할머니를 보니, 비로소 이젠 볼 수 없다는 아득한 슬픔이, 죽음의 실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다.


-------------------------------------------------------------------------------------------------------------------


수없이 보아온 죽음이지만 죽음은 다 다르다. 할머니의 죽음을 기록해야 하겠다고 느낀 것은 그 때문이다. 나에게는 일상인 죽음이지만 환자와 가족에게는 그것이 아님을 늘 떠올려야 한다. 외할머니의 죽음이 나에게 남긴 의미와 슬픔이 일상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할머니는 10월 4일 돌아가셨다.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20일 전.  할머니의 부고를 받을 때 내 앞의 중환자실 침상에  있었던 젊은 환자는 얼마 전 복막전이가 진행되며 끝내 항암치료는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 다행히 투석은 하지 않고 하늘로 보냈다. 할머니의 장지로 향하며 떠올렸던, 그날 아침 회진을 하며 만났던 황달 낀 50대 여자 환자분도 그날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뭇가지같은 팔다리로 언제쯤 걸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던 환자는 지금 더욱 바싹 마르고 복수와 흉수는 점차 차오르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은 다 다르다. 그 이전의 삶도 다 다르다. 그 다른 삶들이 병원에 오면 병록번호, 몇 병동 몇호실, 병명, DNR 여부 등에 의해 구분되고, 그 이전에 그가 애써왔고 지켜왔고 즐겨온 각자의 그 삶과는 단절되어 일렬로 죽음을 향해 행진한다.  그 낯섦에 대해 기록해두고 싶었다. 병원에서의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죽음의 낯섦을 기억해두고 싶었다. 결국은 누구나 재가 되지만, 그 재도 서로 다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를 이루고 있었던 것임을.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연도(煉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