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Nov 19. 2016

서울로 향하는 노인들


가끔 출퇴근길에 EBS 영어프로그램인 ‘Power English’를 듣는데, 경남 하동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진행자인  Kristine이 말하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아침에 하동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와서 녹음을 하고 다시 저녁에 하동에 돌아오는 생활을  하는 그녀는, 자신과 같은 패턴의 여행을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노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의 당일치기 서울 여행의 이유는 medical care 였다고. 진행자들은 노인들이 왜 가까운 부산을 놔두고 서울로 가는지 궁금해하지만, 좀더 많은 병원이 있고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서울에 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 같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왜 노인들은 그 멀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을까. 하루 꼬박  KTX를 타고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오가는 일은 젊은 사람에게도 힘에 부치는 일이다. 그걸 몸이 성치 않은 노인들이 한다. 왜 그럴까. 이름난 병원에 왔으니 막연히 좋을 것이라는 느낌일까? 하지만… 그런 느낌만으로는 잘 설명이 안되는 것 같다. 그냥 좋겠지, 하는 느낌만 가지고 이 먼 병원으로 와서 부대끼는 사람들 속에 고작 1-2분 정도, 어떤 경우엔 수 초 정도 의사를 만나고 돌아가는 과정은 너무도 허무한 일인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지 못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몸을 맡기는 것. 그들은 의사가 아니라 시스템을 믿는 것이다. 대형병원에 고용된 의사가 아니라 대형병원이라는 시스템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기러 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의사 뿐만 아니라 모든 모르는 사람을 못믿는다. 불신의 사회. 


사람들이 의사를 믿지 않는 것은 이미 오래 된 현상인 것 같다. 의사라는 직업이 기자, 법조인보다는 신뢰도가 높다는 조사결과가 있긴 하였지만, 그것은 기자나 법조인에 대한 신뢰가 워낙 낮아서 상대적으로 좋게 평가된 것 뿐이지 의사가 신뢰받는 직업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노인들이 서울로 오는 이유는, 어쩌면 모두가 다 뻔히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이라는 곳은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 특히 노동력을 투입해야 겨우 돌아가는 곳인데, 그걸 다 갖출 수 있는 병원이 사실상 big5 외엔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분한 수의 저렴한 노동력 - 전공의-을 확보하여 엄청난 진료량을 소화하면서 겨우 수지를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곳. 그러면서 필요한 의료진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상시로 구축해놓을 수 있는 곳. 그래서 내가 전공의를 대신해 당직을 서지 않아도 되는 곳. 인력과 자원을 흡수하여 의료생태계를 파괴하는 괴물. 그러면서 가장 마지막에 살아남을 곳. 

환자들도 그런 곳을 찾아서 오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먹잇감들이 모두 사라지면 포식자 역시 멸종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생태계의 섭리인데, 이 곳도 과연 언제까지 지속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3-4개월에 한번씩 만성질환으로 외래 진료를 받는 이들은 서울에 올 만 하다고 느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암환자는, 특히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진행암환자는 다르다. 대개 치료의 후유증과 병의 진행으로 체력의 소모가 심한데, 이 상황에서 굳이 서울까지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치료결과가 조금이라도 더 좋을 것이라는, 또는 비현실적이지만 암이 완치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 희망을 잔인하게 꺾는 것이 최선일지, 그 희망이라도 가지고 사실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최선일지 늘 고민한다. 또는 내가 너무 소극적으로, 패배주의적으로 진료를 하는 것은 아닌지, 또한 고민한다. 그러나 늘 ‘이건 아닌데'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내 외래진료실에 오는 70-8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암인 것 같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올라온다. 종양내과에 올 정도면 대개는 완치불가능한 진행암이다. 

일단 완치 불가능한 상황임을 알리는 것도 쉽지 않다.  노인 환자가 들어오면 컴퓨터 화면에 팝업창이 뜬다. 간호사가 미리 메모해놓은 보호자의 요청사항이다. 환자에게 너무 나쁘게 얘기말아달라고. 환자는 혹인 걸로 알고 있다고. 소심하고 예민한 분이라 충격을 크게 받을 수 있다고. 

하아… 일단 거두절미하고 우선 항암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뭐 그건 사실이니까. 목적이 완치가 아닌 것은, 수 개월에서 수 년 정도의 연장인 것은 천천히 말하기로 한다. 천천히 언제. 언제 말할 수 있을지. 노인환자이기에 치료의 위험도 크다고 말한다. 그리고 항암치료는 단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한달에 두세번씩 병원에 와야 하는 지속적인 치료이니 가까운 병원에서 하시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자녀들은 그래도 큰 병원에서 경험도 많고 잘 하실테니 다녀보겠다고 말한다.  환자 본인은 무표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걸까. 자녀들을 믿고 맡기고 내려놓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왜 여기에 앉아있지 하고 생각하시는 것일까. 

그러면서 노인환자들은 정해진 스케쥴대로 2주에, 또는 3주에 한번씩 산넘고 물건너 말없이 진료실에 온다. 묵묵하게 치료를 받는다. 그러다가 때로는 치료의 합병증 또는 암의 진행으로 응급실에 실려오기도 한다. 한동안 입원해서 고생을 다 하고 결국 지방의 요양병원 또는 호스피스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가장 나쁜 경우는 응급실 또는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시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작가의 이전글 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