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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May 27. 2021

"싸늘한 의사들"에 대한 생각

나쁜소식 전하기와 "감정배제훈련"

말기암을 통고받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유명인 이야기가 최근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과정에서 몇몇 의사들의 인터뷰도   있었는데요. 그러나 인터뷰를 한 분들은 대부분 말기암 환자 진료를 직접 하지는 않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059470?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utm_campaign=post_fb&utm_content=210517&fbclid=iwar3k26tecb7tg28kzqbwrwuny96u1tgmkblniqoaht2igar_8vifyzdvtaa

 기사에서 이은숙  국립암센터 원장님께서는  "말기 환자가 주로 만나는 종양내과 의사는 감정을 배제하도록 훈련받기도 한다" 하셨는데 이은숙 원장님은 외과의사이시죠. 암수술을 많이 하시지만 말기암 환자와의 면담경험은 종양내과의사보다 많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양내과에서는 그런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sz24s

노환규  의사협회장님은  '종양내과의사들에게는 환자로부터 감정을 배제하는 어떤 기제가 작용하는게 아닌가 싶다' 하셨는데 그런 기제가 작용한다는 것은 종양내과의사인 저도 처음 들어봅니다. 정작 방어기제에 대해  알고 있는 정신과의사들저희 종양내과의사들을 대상으로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환자로부터 감정을 거두는 것이 번아웃의 증상일 수는 있습니다만 그것은 모든 진료과의 의사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할  있는 현상이고, 종양내과가 번아웃이 타과에 비해  심하다는 보고는 보지 못했습니다. 아래 링크의 미국의사들을 대상으로  2020 번아웃 보고서에서도 종양학 (, 외과를 합친 것으로 보입니다만) 중간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번아웃이  만한 어려운 상황이 많기는 하지만, 보람도 그만큼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https://www.medscape.com/slideshow/2020-lifestyle-burnout-6012460?faf=1#2

한편 '진실보다는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게 중요하다'면서 끝까지 좋은 말만 환자에게 해주며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희망고문만 하는 몇몇 의사들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나쁜 소식 전하기를 한낱 방어진료의 일환 같은 것으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신의 병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방어진료가 아닙니다. 환자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글은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신문 칼럼을 위해 작성해보았습니다.



의사로서 가장 보람있을 때는 누가 뭐래도 치료가 잘 되어 환자의 삶이 더 나아졌을 때이다. 환자가 ‘고맙다, 생명의 은인이다’ 라며 다소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더라도 게면쩍긴 하지만 그리 싫지는 않다. 나는 시티 영상에서 줄어든 종양을 보여주며 설명할 때가 가장 즐겁다. 몇 퍼센트나 줄었는지 계산하는 것은 이 직업에서 얻는 몇 안되는 짜릿한 쾌감 중 하나다. 나중에 언제 또 커질 지는 모르지만 일단 지금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항암제가 효과가 아주 좋으면 대개 환자가 먼저 아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통증이 줄어들고 숨 쉬기가 편해지고 대소변이 잘 나온다. 표정이 달라져서 진료실로 들어서는 순간 직감한다. 약이 잘 들었구나. 만세!


반면 치료가 효과가 없다거나, 재발했다거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은, 아마도 의사가 되어 가장 하고싶지 않은 말이 아닐까. 그러나 암 진료를 하는 이상은 종종 그 이야기를 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는 오래 걸린다. 이런 분을 진료하게 되면 그 이후 순서는 한없이 밀리게 된다. 사실 종양내과 진료실은 단순히 환자 수가 많다고 지연되지 않는다. 그 날 암이 진행된 분이 몇 분이냐가 그날의 진료 상황을 좌우한다. 많은 환자들은 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화를 내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말이 없는 경우는 더 무섭다. 내 환자 중에는 암이 진행했다는 소식을 쿨하게 받아들이시는 듯 진료실을 나섰는데, 이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진 적도 있었다.


중증질환의 진단, 치료실패, 임종 등 ‘나쁜 소식’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엄연한 의사의 책무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의 의학적 상황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상황에 대해 알아야 그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큰 아픔과 죄책감을 남긴다. ‘나쁜 소식 전하기’는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 항목으로 들어있어서, 의과대학생들은 암을 진단받은 시나리오에 따라 행동하는 모의환자를 대상으로 실습을 한다. 그들은 분위기를 잡고 환자를 안정시킨 후 조심스레, 그러나 명확히 나쁜 소식을 전달하는 것까지는 잘 하는데, 이후 모의환자의 감정적 반응에 놀라기도 하도 겁을 먹기도 한다. 그들을 보며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실제론 환자에게나 의사에게나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이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어떤 의사들은 ‘진실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종양내과의사들은 환자와의 정서적 교감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도록 훈련을 받는 것 같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환자가 듣기 좋은 말만 하며 살 수 있는가. 나쁜 소식 전하기는 정서적 교감을 차단하기는 커녕 누구보다도 그 교감을 놓지 않으면서 그 분노와 슬픔을 다 받아안을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면담이 잘 되지 않아서 환자가 상처만 받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원칙적으로는 환자가 자신의 질병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치료에 기대하는 것이 어떤 정도인지 확인해가며 조심스레 접근해야 하지만, 시간의 부족 또는 면담기술의 부족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의사가 환자의 안타까운 상황에서 자신을 완전히 분리하여 “치료가 효과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가뿐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이런 어려운 대화는 충분한 시간동안 환자와 상호작용하며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나는 그래서 진료비가 조금 더 높긴 하지만 15분간 진료를 할 수 있는 ‘심층진료’를 주로 말기암환자들에게 적용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원무과에서 ‘건강보험 정책상 심층진료는 처음 진료를 받는 초진, 신환에게만 적용되고 이전에 진료했었던 재진 환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도가 있어도 받쳐주지 않는 현실을 조금만 개선한다면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덜 받고 힘겨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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