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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un 30. 2021

나의 진료기록을 볼 수 있다면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 녹음을 하는 것은 이제 거의 일반적인 일이 되다시피 한 것 같다. 가끔은 양해를 구하지 않은 채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는 분도 있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수 년 전만 해도 진료실에서 녹음 또는 녹화를 하는 행위를 두고 의사-환자 관계가 무너졌다고 한탄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체념하는 분위기다. 의사와의 면담을 녹음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는 마당에, 어차피 별로 있지도 않던 신뢰가 파괴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사를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의 말을 이해하거나 기억하기 어려워서 녹음을 하고 있으니, 오늘날의 진료방식이 과연 효과적인 의사소통인지를 되돌아봐야 할 필요도 있다. 

만약 환자가 진료를 받은 후 의사가 기록한 내용을 인터넷에 접속해서 바로 볼 수 있다면 녹음을 하지 않아도 될까? 물론 그래도 녹음을 할 사람은 하겠지만, 상당수의 환자들은 진료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올해  4월부터 환자가 자신의 전자의무기록에 실시간으로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오픈노트 룰 (OpenNotes rule)”이 적용되고 있다. 이는 신의료기술의 개발과 적용을 가속화하기 위해  2016년 제정된 연방법인 21세기 치료법 (21st century Cures Act)의 조항에 따른 조치이다. 신의료기술의 효과와 안전성 평가에 전자의무기록의 의료정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환자 본인 역시 자신의 정보에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이런 오픈노트 룰을 시범적으로 적용한 여러 연구결과는 무엇보다 의료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을 강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진료기록을 본 환자들은 치료과정에 대해 좀더 신뢰할 수 있고, 건강관리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며, 약을 잘 챙겨먹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환자들은 자신의 진료기록에서 진단명, 병력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바와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의료진에게 보고할 수 있게 되어 환자 안전이 더 확보될 수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물론 시행 초기 여러 문제점들이 예상되었으나, 다행히 현재까지는 의료분쟁이나 소송이 더 늘어나지 않았으며, 진료기록과 관련한 환자들의 문의가 쇄도하거나 의사들의 업무량이 크게 증가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의료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환자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의사와 환자간에 더 큰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지금도 진료기록을 환자가 원하면 복사할 수 있지만, 일정 비용을 내야 하고 기록을 받기 위해 환자 본인이 직접 병원을 찾아가 대기해야 하는 등 여러 불편이 따른다. 의료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가족이 대신 발급받으려고 해도 신분증과 위임장을 제출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만약 온라인으로 진료기록에 바로 접속해서 확인할 수 있다면, 환자가 병원에 다녀와서 의사가 뭐라고 말했는지 가족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음성녹음파일을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리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지 모른다. 처방받은 약 용량이 이전과 다른 게 맞는 것인지, 다르다면 왜 달라진 것인지 몇 날을 두고 고심하다가 의사에게 물어보기 위해 다시 진료예약을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예상보다 부실하고 알아볼 수 없는 진료기록에 실망하게 될 수도 있고, 진료기록이 얼마나 잘 이해되게 정리되었느냐에 따라 의사들이 적나라하게 평가될 수도 있는 일이다. 반면 진료기록을 조회하는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콘텐츠와 온라인 툴이 개발되는 등 여러 환자 중심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혁신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의사-환자간의 불신이 큰 우리 현실에서 과연 오픈노트 룰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기는 하지만, 불신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진료기록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한다. 미국에서도 오픈노트 룰이 연구결과가 쌓이면서 실제 시행되기까지는 10년이 걸렸고, 새로운 변화에는 당연히 저항이 있었다. 오픈노트 운동을 처음 시작한 하버드의대의 톰 델방코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많은 의사들이 우리에게 지옥에나 떨어지라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쉽지는 않지만, 정보공개와 투명성이 세계적 대세가 되어 가는 상황에서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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