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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un 18. 2021

너의 세상은 달랐으면

딸이 초경을 했다. 4학년이니 좀 빠르다. 나도 꽤 빨리 했기 때문에 빠를거라 생각했지만 좀 많이 빠르네. 사실 키가 요즘 부쩍 많이 컸기 때문에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얼떨떨하다.

선생님에게 아이가 생리를 시작했다, 축하한다는 문자를 받고 아이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이는 집에 들어오면 울까. 속상해할까.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축하한다' 말하는   구릴  같았다. '여자가 되었다' '숙녀가 되었다' 말로  사건을 억지로 기쁘게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고 싶지 않았다.  질척이고 귀찮은 생리의 세계로 이렇게 일찍 들어온 것에 애써 의미를 많이 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는 정작 쿨했다. 들어오자마자 "으... (선생님한테) 들었지..."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게 다였다. 조금 배가 아픈가 싶었는데 바지에 묻은 것을 선생님이 보고 데려가서 이것저것 챙겨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받은 생리대를 팬티 바깥 아래에다 붙인 것이 웃음포인트.... 미리 가르쳐줄 걸 그랬다. 문자받고 미리 편의점에 달려가 사온 일회용생리대를 팬티에 어떻게 붙이는지 가르쳐주고 팬티와 바지를  빨았다.

나는 미레나를 하고 양이 거의 없어서 간혹 면생리대만 쓰는데, 본인도 면생리대를 쓰겠다고 한다.

"야 그거 네가 빨거야?"

"그냥 버리면 안돼?"

"그게 얼마짜린데 버려... 집에 가지고 와서 빨아야돼. 엄마가 빨아서 너는거 봤잖아. 일단 일회용으로 해보고 많이 가렵거나 불편하면 면생리대도 고려해보자."

우리 엄마는 광목천 끊어다가 접어서 나에게 면생리대 만들어주고 그걸 다 빨았다.(음 물론 나도 빨았지만 엄마가 더 많이 빨았다) 물론 일회용생리대가 있던 시기였지만 그것에 익숙지 않았던 엄마는 본인이 하던 식으로 나에게 해주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순 없지. 대신 다른 걸 가르쳐주겠다.

"미레나 하면  생리 많이 안해."

"와 그럼 나도 해도 돼?"

"어른되면."

원래는 피임도구이고 모든 여성이 자궁내 피임장치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부작용도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생리양이 꽤 많아 불편했던 나에겐 꽤 도움이 되었다. 활동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둘째 낳고 6년이나 지나서 한 게 후회될 정도로. 요즘은 혼전, 또는 비혼인데도 미레나를 선택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생리만 아니면 여행이나 스포츠 활동도 좀더 자신있게 할 수 있겠지. 너의 세상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아빠한테는 본인이 밝힐 때까지는 아이의 오빠에겐 비밀로 하자고 했는데, 오빠가 귀가하자마자 데리고 가더니 본인이 얘기해준 모양이다. 아들이 딸을 가리키며 "얘 생리터졌어요?" 하며 소리를 지른다.  뭐 이렇게까지 쿨할 필요까진. 그래도 가족들끼리 숨기며 얘기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아이가 초경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런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듯해서 기쁘다. 사실 이게 정상인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날 울었고, 우울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임신할  있는 몸이  것이 싫었다. 엄마가 안아주는 것도 왠지 서글프기도 하고 소스라쳤다. 유년기의 행복과 영원히 안녕을 고해야 하는 날인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가임여성이 된다는  사실상 약자가 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대상화하는 시선과, 국가의 눈에는 자궁 1이 되는 수모와, 도처에 깔린 성범죄와,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까지. 그래서 초경을 겪었을 때의  느낌이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딸은 그 때의 나보다 어렸음에도 준비되어 있었고, 성장의 신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아이의, 모든 소녀들의 앞으로의 날들도 다르지 않을까? 초경 이전의 날들과 다름없이, 여전히 나름의 꿈과 취향을 가진 개인으로서의 날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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