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연간 암 발생자 수는 1999년 10만명에서 2018년 24만명으로 두 배가 넘게 증가했다. 반면 인구 수는 지난 20년간 4500만명에서 5100만명으로 10% 정도 증가했을 따름이다. 이렇게 암환자가 많아진 것은 우리 환경에 발암물질이 많아져서가 아니라 고령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암은 어린이와 청년들에게도 닥치는 비극이지만 암 발생 위험이 가장 높은 연령군은 60세 이상의 노인층이다. 그래서 암을 진료하는 의사들은 암은 노인병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인구 수는 이제 막 정점을 넘어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앞으로 노인인구의 비율은 더욱 더 늘어날테니 노인 암환자의 수도 더욱 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보다 항암제의 효과나 부작용이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많은 노인 암환자들도 젊은 환자들처럼 항암치료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때 ‘어떻게 암으로부터 완치될 수 있느냐’보다 더 자주 맞닥뜨리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저희 부모님이 항암 치료를 견딜 수 있을까요?”
“선생님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결정하시겠어요?”
환자의 자녀들에게서는 물론, 지인들로부터도 많이 듣는 질문이다. 항암제의 부작용은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젊은 사람도 쉽게 견디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니 자녀로서는 치료를 하자니 부작용이 걱정되고, 치료를 안하자니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료기회를 박탈하는 것 같고, 뭘 어떻게 결정하더라도 불효를 저지르는 것만 같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어려운 결정을 심사숙고하여 내리기는 쉽지 않고,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는 병원의 스케쥴에 맞춰서 어영부영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호전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노인 암환자의 병세는 예기치 않게 악화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항암제의 부작용인 발열, 감염, 설사, 구토 외에도 기저질환인 혈압이나 당뇨가 악화되거나, 넘어져서 골절이 생기고 앓아 눕게 되는 일은 제법 흔하다. 그러다 보니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의료진을 원망하게 되기도 한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고생만 하고 돌아가셨다” 는 후회가 낯설지 않은 이유다.
노인 암환자에서 항암치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어떤 치료를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노인 환자의 건강상태를 상세히 평가하는 ‘노인포괄평가’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검사는 대단한 장비나 시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노인에게 자주 발생하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약 한시간 정도의 진찰과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인이 혼자 옷을 잘 챙겨입고 씻을 수 있는지, 식사를 잘 할 수 있는지, 넘어지거나 휘청거리지 않고 잘 걸을 수 있는지,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치매나 우울이 의심되지 않는지, 사회적 유대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본다. 담당 의사라면 당연히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한 사람의 다양한 기능적, 정신적, 사회적 측면을 복합적으로 파악하려면 한시간 이상 걸리는 것이 당연하고 진료시간이 보통 3-5분인 외래 진료실에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찌보면 별 것이 없어 보이는 이 검사결과는 다른 어떤 비싸고 복잡한 검사보다도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잘 예측한다고 알려져 있다.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 노인도 약간의 치매기가 있을 수 있고, 식사를 종종 거르거나 위생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가 있는데, 항암치료를 할 때는 이런 것들이 모여서 큰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숨어있는 문제들을 항암치료 이전에 미리 파악해놓는 것은 치료 결정에도, 치료 이후의 돌봄에도 큰 도움이 된다.
노인포괄평가는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대학병원급 기관에서 주로 연구목적으로 제공되며, 흔히 시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인포괄평가는 암환자라면 대부분 한번씩은 찍는 엠알아이나 양전자단층촬영 못지않게 환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준다. 무엇보다 전자차트 위의 숫자와 글자로 존재하는 환자를 살아있는 입체적인 존재로 구성하고, 그를 위한 최선의 치료가 어떤 방향인지 좀더 선명히 보여준다.
부모님의 암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선생님의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환자 상태와 암 종류에 따라 다르니 담당 선생님과 상의해라”는 뻔한 답. 그러나 여기에 더해서, 가능하다면 노인포괄평가를 받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꼭 암 같은 위중한 병을 진단받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노년의 몸과 마음을 관리하기 위한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