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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Sep 29. 2021

수술실은  ON AIR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929027010&fbclid=IwAR0pSAEHsXCq-LcBn0XvGvVY1MSU8S7-UO9Ra1FsmDRuY5Y06UdK5DseaA8

먼저 내과 의사는 수술실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밝혀두려 한다. 가장 흔한 전문과목인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의 공통점은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외 대부분의 진료과는 수술을 하는 장기에 따라 분류된 외과의 세부전공이라고 보면 된다.

외과의사들은 대개 수술실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의 강도와 위험, 불확실성을 생각하면 긴장하고 두려워해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오히려 많은 외과의사들은 수술실에 가야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는다고 말한다. 일단 공기가 청정하고 시원하기도 하지만, 환자가 마취가 되면 잠잠해지고 보호자도 없으니 계속되는 질문과 불평불만 등에 응대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또한 수술 이외의 다른 잡무들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고도의 통제된 공간에서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아마 그들이 수술실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끔 하루 종일 깨어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과 씨름해야 하는 내과 의사들을 속세에서 고통받는 중생인 양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과 의사들 입장에서는 대체로 그들이 더 측은하다. 타인의 몸에 칼을 대는 외과의사의 권한과 책임은 너무나 무거워서, 늘 존경하면서도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20여년전 인턴 때 이후 수술실에 거의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내가 수술실에 다시 간다면, 그것은 환자로서 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환자 입장에서 지난달 국회에서 법제화된 수술실 CCTV 촬영을 요구하겠느냐고 묻는다면 ‘No’라고 답하겠다. 수술실에 가본 지 오래되긴 했지만 수술실에서 어느 정도의 신체 노출이 필요한지는 알기 때문이다. 수술실에서는 보통 환자가 마취된 후 옷을 벗기고 환부 주변에 광범위하게 소독을 하기 때문에, 대개 환자가 마취 전 인지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위가 노출되게 된다. 대개는 소변줄도 그 때 넣는다. 만약 그것이 다 영상으로 저장된다고 생각하면 그 수치심과 불안을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환자로서 수술실 CCTV 촬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특권일 수도 있다. 정보 불균형에서 자유롭다는 것, 즉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찾아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큰 특권이다. 반면 그런 의사를 찾기 어려운 대다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프라이버시를 희생하더라도 자신이 절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일 수술실 내에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놓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시민 사회단체가 수술실 CCTV 촬영을 줄곧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마침내 법제화까지 이루어낸 배경에는 무방비 상태로 몸을 맡기는 대상인 의사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크나큰 불신과 두려움이 있다.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는 수술실 내 의료사고와 대리수술, 성범죄는 일반인이 드나들 수 없는 청정공간에도 카메라를 들이대게 만들었다.

물론 수술을 직접 하는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일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사랑하는 수술실의 평화와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누군가 의심에 찬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 아마 무너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에 대한 걱정을 ‘방어진료가 늘어난다’ ‘수술을 소극적으로 하게 된다’는 우려로 표현할 때 환자의 입장에서는 도리어 짜증이 날 뿐이다. ‘아니 그럼 CCTV 때문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며 협박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수술을 할 때 외과의사의 뇌에서 동원되는 ‘작업 기억 (working memory)’의 측면에서 본다면, 감시와 불신이 부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작업 기억은 우리 뇌에서 어떤 문제를 처리하는 동안 머릿속에 담고 있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을 가리키며, 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메모리에 해당한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과 불안이 메모리를 잠식할 때 수술에 쓸 수 있는 작업 기억 용량은 줄어들게 되고, 수술의 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결과가 불확실하고 어려운 수술에는 도전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시험점수를 낮추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의사들이 시험보는 학생하고 같냐고, 어떤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완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의사도 인간이므로 한계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의사들이 여태껏 수술실 내의 사고와 비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업보는 늘 카메라를 의식하며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하며 개탄하다가도 20여년전 의대생 때 본 장면이 떠올라 입을 다물게 된다. 수술실 실습 중 당시 전공의가 마취된 환자에게 성추행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아무런 항의나 고발을 할 수 없었던, 무력하고 비겁했던 스스로가 부끄럽다. 대한의사협회는 이 법안이 ‘의사와 환자간 신뢰를 저해한다’며 반대했지만, 그 신뢰는 이미 다 무너진 지 오래이고 이제 새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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