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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Oct 25. 2021

금융상품과 임상시험

“임상실험이요?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거에요?” 

“임상실험이 아니고 임상시험입니다. 지금 환자분의 질병은 일반 약제로는 치료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에요. 임상시험에 참여하시면 현재 개발중인 신약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한번 생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꼭 해야 하는거에요?”

“임상시험은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설명을 들어보시고 본인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어렵네요. 참여하는게 좋을까요? 이게 최선인가요?”

“이 약이 이제까지 진행된 초기 연구에서는 환자분과 비슷한 종류의 병에서 효과가 일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각한 부작용도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구요. 물론 아직 수십명의 환자들만 참여했으니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에 대해선 아직 모르는게 많죠. 효과도 모든 환자에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여하지 않으면요?”

“다른 약제를 사용할 순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이에요. 이렇게 비유하는 건 좀 그렇지만, 투자랑 비슷합니다. 임상시험은 고위험 고수익 상품이라고 볼 수 있어요. 좋은 효과를 기대하고 참여하시는 것이지만, 위험 역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위험이 많이 걱정되신다면 참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제가 안하겠다는 건 아니고…” 

이쯤되면 비정하게 들리지만 일단 더 생각해보시고 결정하라고 말씀드리고 진료실에서 내보내야 한다. 이미 환자 1인당 쓸 수 있는 3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썼기 때문이다. 바깥의 복도에서는 대기하는 다른 환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듯하다. 

서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임상시험이 이루어지는 도시다. 박리다매 3분 진료로 많은 환자를 적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효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서울을 세계 제 1의 임상시험의 도시로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에 대한 진료는 선진국 수준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의료진이 한 번이라도 더 살펴보고 진료기록과 검사결과도 더 자세히 검토한다. 그래서 대체로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의 치료성적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더 좋은 경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임상시험을 임상‘실’험으로 부르며 환자를 ‘마루타’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는 대중의 의심은 비단 일제 강점기에 생체실험을 한 731 부대의 기억에서만 나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위험과 이득에 대한 충분한 소통, 환자의 병의 상태에 대한 이해 가능한 설명이 좀처럼 제공되기 어려운 우리 의료환경에서 일정 정도의 예측불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임상시험이 대중에게 신뢰를 얻기란 쉽지 않다. 

결국 환자를 빨리 이해시키기 위해 “고위험 고수익 금융상품”에 임상시험 치료를 비유했는데,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싶으면서도 어쩌면 금융기관의 소위 불완전 판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은행에 가면 수많은 낯선 용어들과 빠른 설명에 얼어버려 대략의 감으로 몇 개의 펀드를 찍어 가입해버리는 일을 저지르곤 했다. 그런데 환자들도 의사가 권하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는 뭔지 잘 모르겠는데 위험이 있다 하니 괜히 걱정이 되어 일단은 피하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적용되면서 은행에서는 평균 50분씩이나 걸려 금융상품을 꼼꼼하게 설명해준다고 하니, 임상시험 참여는 펀드 가입만도 못한 설명을 제공받고 깜깜이 상태에서 결정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임상시험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시대에 불거진 의학에 대한 의심과 불신 역시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해소되지 않은 정보격차가 자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의학의 성과는 대중의 참여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코로나19 백신도, 면역항암제도, 에이즈와 간염 치료제도, 질병 치료의 지평을 바꾼 모든 약제들은 임상시험에 참여한 수많은 피험자들이 위험과 불확실성을 무릅쓴 결과다. 어쩌면 금융상품과 임상시험은 이런 면에서도 비슷할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전문가들이 경시했던 개미투자자들이 코스피 지수를 떠받치고 있듯이, 대중의 이해와 참여는 앞으로 의학의 발전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될 거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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