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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Dec 04. 2021

빅5는 무조건 좋은 병원인가

http://naver.me/FhRKUnGc

“지방 환자분들의 빅5병원에 대한 믿음은 거의 종교와도 같습니다. 일류 치료를 하는 병원에 가야지 마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서 불치병이 나은 환자와 같은 기적을 경험할거라는 믿음입니다. 신앙은 공고해서 깨지지 않고 또 다른 체험자(?)의 간증으로 계속 공고화됩니다. 지방 병원에서 일하는 저희들은 이 와중에 경제적인 이유로, 또는 상태가 악화되어 갈 수 없는 분들을 돌보면서 의사직을 유지합니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 계시는 A 선생님이 내 페이스북에 남긴 댓글이다. 연구업적 및 학식과 인품 면에서 모두 나보다 뛰어난, 존경하는 선배님이 그런 자조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이 슬펐다. 상당수의 수술과 항암치료가 A 선생님의 병원에서 가능한데도 무조건 서울로만 가겠다고 소견서를 요구하는 암환자들을 상대하기 지쳐버렸다고 한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특히 가장 규모가 소위 빅5병원으로의 환자 쏠림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현상이 코로나를 거치면서 더 심해졌다. 상급종합병원 진료비는 올해 상반기에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15.5% 증가한 반면, 병의원급은 6-7% 증가에 그쳤다. 요양병원 진료비는 오히려 3.4% 감소했고, 올해는 특히 병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개업보다 폐업이 3배 더 많았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쏠림은 더 심하다. 빅5 중 하나인 내 직장에서는 입원대기시간이 한달 정도 걸리는 것은 예사이고, 위급한 환자는 응급처치만 하고 수용이 불가능해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실랑이와 진통이 있다. 그나마도 코로나19 전파 위험 때문에 응급실 진료도 한층 더 어려워졌다. 당장 호흡과 맥박이 불안정한 초 응급상황이 아닌 한,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응급실에 입실 자체가 안되기 때문이다. 응급실이 만실이라 접수 자체가 중단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암환자를 주로 보는 내 입장에서는 항암치료를 하면서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와도 감당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니,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희망을 붙들고 전국에서 모여드는 환자들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 늘었다. 판데믹은 모두의 마음속에 불안과 위기감을 증폭시켜 각자도생에 매달리게 만들고 있는데, 병원 선택에 있어서도 조금이라도 더 크고 평판이 좋은 곳에서 치료받고 싶다는 욕망 역시 더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인서울 대학을 향한 욕망, 인서울 아파트를 향한 욕망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까지 뒤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가장 본능적이고 처절한 욕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맹목적인 빅5 선호현상이 통제되지 않으면서 수용가능범위를 넘어 진료를 하고 있는 이들 병원은 몸살을 앓고 있는 상태다. 

매일같이 서울의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수도권 대형병원에 진료를 보러 오는 환자와 보호자들로 넘쳐나는데, “수도권 중증 병상이 부족해지면 코로나 환자를 비수도권으로 이송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공허하게 들린다. 이미 수도권 병원들은 지방 환자 진료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평소에도 중증이 아닌 환자를 설득해서 다시 거주 지역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중증 코로나 환자를 지방으로 전원한다는 것이 그 안전성은 둘째치고 과연 의료이용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인지 의문이 든다. 민간병원에 코로나 병상을 제공하라는 행정명령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상태라면 환자가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 병원에서 비 코로나 환자들이 병상이 부족해 코로나 환자 대신 죽어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지난 2년간 코로나 병상과 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실패해왔다. 여전히 가용의료자원이 부족한 가운데 기존에 있던 서울 의료기관으로의 환자 쏠림현상이 더 심해지면서 수도권의 코로나 환자와 비 코로나 환자 모두 위험에 빠졌다. 지방 병원에 대한 지원이나 환자 쏠림을 막기 위한 의료이용 규제는 정부와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가 아니다. 저마다 치적이 될 만한 신설 의대 따위를 생각하는 가운데 기존의 지방 병원들은 경영난에 고사되고, 서울 병원의 환자와 의료진들은 위험과 과로에 노출되고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패혈증이 의심되는 환자를 병실이 없어 입원시키지 못하고 응급실 바깥에서 코로나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앓게 두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탄식하는 나에게 A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래도 선생님의 병원에선 약간의 대기 후 입원해서 항생제 치료를 진행할 수는 있다고. 지금 당장 위독한 환자에게 어떤 병원이 좋은 병원인가. 어떤 병원이 더 안전한 병원인가. 그에 대한 답은 올해 초 백신이 부족했던 시절, 종류에 관계없이 빨리 맞을 수 있는 백신이 가장 좋은 백신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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