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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Dec 13. 2021

왜 하필 나에게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1222027015

“오늘날 건강한 사람들은 질환이 ‘그냥 생기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 한다. 자신이 건강을 통제할 수 있으며 자신이 노력해서 건강을 얻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암이 있는 사람은 분명 무언가 잘못한 것이며, 건강한 사람은 그 무언가를 피할 수 있다…. 오로지 이런 식으로 사고할 때만 사람들은 질병을 눈앞에 두고서도 삶이 얼마나 위험으로 차 있는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다.”  

암 투병을 하며 쓴 자전적 에세이 <아픈 몸을 살다>에서 의료사회학자 아서 프랭크는 질병에 필연적인 이유를 부여하여 자신을 그로부터 분리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말한다. 질병을 신의 형벌이라 여기던 고대와 중세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 이성과 과학의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이지만, 질병에 재한 두려움은 여전히 질병에 어떤 특별한 이유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그 ‘이유’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현대의학이 밝혀낸, 질병을 유발하는 위험인자들이다. 흡연, 음주, 비만,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등. “무리하게 일만 했더니 스트레스를 받아 암에 걸렸다”는 서사는 과로가 일상화된 한국사회에서 일반인에게 꽤 호소력이 있기는 하나, 암 유병률이 웬만한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타당한 병인론이라 보기는 어렵다.

건강인이 암 발생의 필연적인 원인을 찾고 그것을 멀리함으로써 두려움을 쫓고 싶어 한다면, 암 환자는 재발의 필연적인 원인을 찾고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한다. 그 소망은 몹시나 간절하고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재발을 막기 위해 그 힘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그리고 혈액암의 경우에는 골수이식까지 견디어낸다. 그토록 큰 고통을 겪었는데도 이 모든 노력과 인내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면 그것만큼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이 어디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분율의 환자들은 재발한다. 그나마도 암 치료의 발전으로 예전보다 재발위험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재발을 완벽히 막는 방법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재발의 위험인자 역시 밝혀져 있기는 하지만, 하필 A라는 환자는 재발하고 B라는 환자는 재발하지 않았는지 개인 수준에서 필연적인 원인을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재발을 피하고 싶었던 환자들은 ‘왜 하필 나에게’ 재발이 찾아온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아 헤메게 된다. 식이 관리를 못해서,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의사가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아서, 더 좋은 병원에 가지 못해서, 등등. 대체로 치료받던 병원을 바꾸는 것도 이 시기다.

언젠가부터 코로나19백신이 암을 유발하거나 재발을 일으키는 병인으로 새로이 등장했다. 전 대통령이 앓던 다발성 골수종이 코로나19 백신때문이라는 참모의 주장이 한동안 언론 기사로 쏟아져 나오더니, 아들이 백신 접종 후 급성백혈병이 재발했다고 주장하며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한 어머니의 분노가 여러 차례 보도되기도 했다. 그들은 이 참혹한 질병이 ‘ 그냥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었을 것이다. 늘 조심하고 건강하고자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왜 그런 병이 생겼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하며 견뎠는데 왜 재발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상시와 달랐던 한 가지, 백신을 주목하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부작용에 대한 장기 추적관찰 데이터가 없다는 이 백신의 희생양이 나 또는 내 가족이 아니었을까? 이런 추정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간다.

우리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큰 고통과 불행을 맞닥뜨린 마음이 어떻게든 그 분노를 분출할 대상을 찾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왜곡된 믿음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백신이 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으며, 그보다는 암의 자연적인 발생 또는 재발 확률이 훨씬 크다. 다발성골수종은 나이가 들수록 발생위험이 커지는 일종의 노인병이며, 급성백혈병이 완전관해 후 재발할 위험은 10-40%에 이른다. 백신을 탓하고 싶은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암은 ‘그냥’ 생기고 ‘그냥’ 재발한다. 물론 거시적 수준에서는 위험요인이 있고 이것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개인의 수준에서 누가 그 불운을 맞이하느냐는 확률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냥’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적어도 백신이 거시적 수준의 위험인자일 확률은 현재까지의 생의학적, 역학적 연구결과로 볼 때 0에 가깝다.

‘왜 하필 나에게’는 암환자의 가족이었던 나 역시 오랫동안 품어왔던 질문이기도 했다. 왜 하필 나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죽어야 했는가. 그때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된 나는 과연 무사할 것인가. 그러나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보다는 과학이 마련해준 불완전하지만 최선의 근거를 믿는다. 암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잘 되진 않지만) 가공식품을 덜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자 애쓰며, 감염의 위험을 줄이는 확실한 근거가 있는 백신을 맞는다. 나는 코로나예방접종을 부스터샷까지 맞았고 15세 아들도 2차까지 완료했다. 누구보다 감염위험이 높은 진료실의 암환자들에게도 코로나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다. 대유행의 악화와 함께 불어닥치는 거짓 믿음과 불안의 광풍을 담담히 흘려보낼 것을 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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