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의심전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Jan 15. 2022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248085


수년 전 현재의 직장으로 이직할 때 “범죄경력조회 동의서”를 작성했다. 의료기관이 의료인을 채용할 때 성범죄 경력을 확인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현행 의료법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르기는커녕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늘 두려워하며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인 대부분의 의료인들에게는 꽤 당혹스러운 서류다. ‘잠재적 가해자’ 취급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알고 있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환자에 대한 의료인의 성범죄 사건 때문에 이런 절차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나는 집과 병원밖에 모르고 살아온 바쁜 워킹맘인데 성범죄는 무슨 성범죄냐’고 항변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냥 닥치고 서명하여 나의 결백(?)을 증명하고 일자리를 얻는 것이 합당한 행동이다. 

물론 진료를 할 때 실제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는 일이 없지는 않다. “이 치료 받았다가 잘못되는 거 아니에요?” 라며 불신에 가득찬 눈길을 받을 때는 이러려고 의사했나 싶어 자괴감 들고 괴롭다. 다른 직업과는 달리 의료인은 불성실이나 게으름, 잠시의 방심마저도 범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잠재적 가해자’가 될 가능성은 꽤 높다 하겠다. 실제 의료사고와 관련한 재판에서 ‘설명의무위반’ 또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과실’이라는 이름으로 의사가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구속까지 되는 일이 이전에 비해 더 자주 일어나고 있다. 어떤 학자는 2012년 설립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의료분쟁의 갈등을 중재하기 보다는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을 더 조장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여러 조치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데 반해 의사에 대한 사회적 대우나 신뢰는 나날이 떨어져가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은 많다. 그러나 만약 의사들이 “환자들이 의사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고 있다”면서 ‘취업시 범죄경력조회를 하지 말라’거나, ‘의사와 환자간이 갈등을 유발하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폐지하라’거나, ‘의사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일삼는 환자단체는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이러한 주장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이유는 어떤 의사도 ‘환자는 약자다’라는 대명제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로부터 압력을 받거나 심지어 위협, 폭력, 범죄를 당하는 경우 역시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의사-환자간의 권력관계의 불균형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환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된 논리는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여성가족부는 존재 근거를 잃었다’는 것이고, 몇년 전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제작한 동영상에서 ‘남성은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라고 언급했다는 것을 그 예로 든다. 그러나 해당 동영상의 요지는 남녀관계 뿐만 아니라 권력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강자는 잠재적 가해자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힘을 더 가진 자는 상대방이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여성의 권익신장이 꽤 많이 이루어진 시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의 남성들이 젠더간의 권력 불균형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최근 성평등의 진전이 상당부분 이루어졌다고 하여 해마다 성범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그 가해자의 95% 이상이 남성인 것, 육아와 가족돌봄 때문에 경력단절을 택하는 이는 대부분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에서 남녀간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는 사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젠더 문제는 권력문제다. 이는 어느 한쪽이 악하고 탐욕스러워서 일어나는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 권력관계가 약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분명한 이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장치가 필요하며 여성가족부는 그 장치 중 하나인 것이다. 

환자의 권익이 의사를 처벌하고 악마화하는 것으로 지켜지지 않듯이 여성의 권익 또한 남성을 처벌하고 악마화한다고 지켜지지 않는다. 의료분쟁조정위의 존재의의가 의사를 벌하여 환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듯이, 여성가족부의 존재의의 또한 남성을 벌하여 여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환자에 대한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부모는 아이에 대한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으며, 교사는 학생에 대한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왜냐면 의사나 부모나 교사가 악마라서가 아니라 이들 관계에는 힘의 불균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신뢰나 사랑이 없다면 작동하지 않는 관계이기도 하다. 남녀 관계 또한 다르지 않지 않을까? 그래서 힘을 더 가진 자가 조심하고 더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동영상에서 말한 “동료 시민의 책무”가 아닐까 한다. 의사라는 상대적 강자의 위치에서 나는 동료시민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며, 여성이라는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서는 세상의 남성들에게 여성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동료 시민의 책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하필 나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