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료실에서 읽는 입원일기

<혼자 입원했습니다> 다드래기, 창비, 2021

by OncoAzim

다드래기 작가의 <안녕 커뮤니티>를 예전에 책걸상 팟캐스트에서 민음사 박혜진 편집자님의 강력추천으로 장바구니에 담아놓았었는데, 이번엔 작가가 책읽아웃 팟캐스트에 출연하셔서 신작 <혼자 입원했습니다>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것을 듣고 냉큼 모두 구입해서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안녕 커뮤니티>가 더 좋았고 내용이나 감정의 표현이 더 깊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혼자 입원했습니다> 역시 시사점이 많은 훌륭한 서사이고, 내 입장에서 더 할 수 있는 말이 많을 것 같아서 적어보기로 한다.


여성, 비혼, 비정규직, 돌봄노동

이 책은 한마디로 <상주 보호자가 없는 비정규직 비혼 여성의 입원일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보호자 없는>에 방점이 찍힌다. 의사 동료들끼리 얘기할 때 난감한 환자 유형들 중 하나가 보호자 없는 환자다. 내가 결혼을 한 가장 중요한 이유도 나이가 들어서 병원에 왔을 때 보호자를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뭔가 중요한 설명을 해야 할 때 보호자부터 찾는데, 환자가 "저 혼자에요. 저에게 말씀하세요"라고 하면 괜히 측은하면서도 어깨가 무거워진다. 물론 보호자가 지나치게 너무 많은 (이 보호자에게 설명했는데 다른 보호자가 다시 나타나서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주기를 요구하는) 환자보다는 그래도 낫지만, 신체적 정신적 돌봄부터 어려운 의료결정까지 환자와만 얘기해야 하는 것은 의료진으로서는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실은 의사보다는 간호사들 입장에서는 더 괴로운 노릇이다. 간병인이 없는 환자는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봐야 하고 챙겨야 하니 노동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환자를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간호사의 노동은 모든 환자에게 간병인이 있다는 전제하에 아주 빡빡하게 짜여 있기 때문이다 (만화에도 너무나 바빠 때맞춰 드레싱을 해주기 어려운 병동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나마도 만화에는 하루 이틀 정도는 간병을 해주는 친구들이 나오지만, 그들 역시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를 가족으로 국한하는 우리의 관습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친구의 간병'이라는 휴가이유를 인정받지 못하고 의심받고 속상해하거나, 일을 미리 몰아 하느라 과로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이 만화를 보며 등장인물들의 70대 버전을 상상해보며 아찔해졌다. 자궁내막증으로 수술받는 30대 여환, 비혼에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 이틀 간병을 해줄 친구들이 있고 무엇보다 자기 결정능력이 있는 환자는 의료인 입장에선 사실 어려운 환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주인공과 그 친구들은 그 과정이 너무나도 힘겹고 벅차서 그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왔다. 그런데 70대에 배우자도 자녀도 없이 암으로 입원한다면 어떨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들도 70대다. 지금의 인구구조로 볼 때 그런 상황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 될 것이다. 지금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30대 비혼여성이 노년이 되어 충분한 금전적 풍요를 누릴 가능성은 매우 적다. 아직 공식적인 의료서비스로 간주되지 않아 가족끼리 분담하거나 알음알음 구해야 하는 돌봄노동의 공백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다. 비혼, 비정규직 환자, 돌봄노동의 부족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보편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전혀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 노년과 더 위중한 질병이 더 포개진다면.... 아아 상상하기도 싫다. 이미 알고 있는 위기이지만. 아 그런데 지금 30대가 70대가 되면 나도 80대일 것이므로 의사로 있지는 않겠네. 다행이다. 응??


여자의 변비는 산부인과로? 의료전달체계의 부재

주인공의 첫 증상은 변비였다. 내과를 예약하려다가 여성 변비는 부인과적 원인이 많다는 룸메이트의 권유로 산부인과를 먼저 찾아간다. 그것도 담당의사가 '교수'로 불리는 것으로 보아 대학병원으로 보이는 큰 병원을 선택하여 찾아가고 그곳에 가기 위해 필요한 의뢰서를 받기 위해 동네 의원 방문까지 미리 염두에 두고 병가를 받는다는 내용도 나온다. 결국 그것은 그에게는 옳은 선택으로 드러났고, 자궁내막증이라는 질환으로 수술을 하게 되지만, 의사로서는 이 부분이 이 책을 잃으면서 가장 불편한 부분이었다. 일단 만성변비에 대한 진료는 식습관과 평소 복용하는 약 점검이 우선이고 변비약을 사용하다가 호전이 없을 경우에는 내시경을 하게 되며, 보통 부인과 검진은 그 다음에 온다. 물론 책에서는 생략되었겠지만 아마도 오랫동안 증상을 겪으면서 변비의 흔한 원인 - 섬유질이 적은 식사습관, 적은 활동량 등 -은 자연스레 배제되었을 것이고, 일차진료의를 찾아 처방을 받는 과정도 아마 생략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증상과 신체검진을 통해 원인을 감별해나가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기보다 일반인끼리의 소통에 근거해서 잠정진단을 내리고 전문의를 먼저 찾아가는 방식은 주치의제도가 자리잡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일반적인 것이 된 터라, 이젠 이것이 잘못된 건강행태라며 지적하는 것도 머쓱한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 룸메이트가 해주었던 역할 - 증상을 파악하고 적절한 전문과를 추천해주는 것-이 일차진료의가 해야 할 일이건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네 의원 의사에게 그런 역할을 바라지는 않고 단지 큰 병원에 가기 위한 의뢰서를 받는 정거장 정도로 여긴다. 이것이 많은 의사들이 분노와 자괴감을 느끼는 지점이다.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도 그럴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된다. 질병의 중증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의원-병원-종합/상급종합병원으로 이용하는 제도를 의료전달체계라고 하며, 큰 병원에 가기 위해 의뢰서가 필요한 것도 이 제도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처럼 질병과 중증도를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큰 병원에 바로 가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의료이용방법이라는 인식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주인공은 한번 병가를 낼 때 온갖 눈치를 봐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한번 의사를 만날 때 최대한 많은 것을 해결해야 한다. 즉 의사는 자잘한 증상이 있을 때 상담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심각해져서 도저히 더는 견디기 어려울 때 만나는, 그리고 그것을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줘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가급적 최신의 기술과 장비를 구비하고 있어야 하며, 환자가 본인의 질환에 맞는 과를 찾아가기만 한다면 (책에서는 다행히 맞지만 많은 경우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큰 병원의 전문의를 바로 찾는 것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한 최단거리의 지름길인 것은 맞다.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정부는 지금도 여러 정책들을 실시하고 있다. 예전에는 선택진료비라는 가격격차를 두어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막았지만, 그것은 진료비폭탄이라는 소비자 부담증가로 들어가며 많은 불만의 원인이 되었고 이제는 폐지되었다. 이제는 의료 소비자 대신 공급자를 조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중중질환비율 인센티브다. 즉 상급종합병원의 중증질환 진료비율을 높이고 경증질환은 의원급 또는 일반병원급으로 보내도록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진료수가 인센티브를 적용한다. 모 대학병원 산부인과는 중증질환비율을 높이기 위해 이제 암 이외에 주인공이 치료받았던 자궁내막증 등의 비암성 질환은 진료하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도 고혈압, 당뇨 등의 경증질환 환자들을 지역 병의원으로 전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여간 쉽지 않다. 의사에게 화를 내며 전원을 거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말이다.

일차진료의라는 게이트키퍼는 평소 자신의 건강을 관리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큰 병원으로 가기 전 들러야 하는 불편한 정거장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많은 이들에게, 일차진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평상시 건강관리를 받기 어렵고 병을 키운 뒤에야 병원으로 달려가게 되는 사회체제 안에서 환자들만 의료전달체계를 따르라고 하는 모순을 의료제도의 변화만으로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병원에서의 환자 경험- 반복되는 질문

얼마전 진료실에서 만났던 한 환자는 부모가 모두 암으로 돌아가셨고 본인 역시 암으로 수술을 받았으니, 자녀에게 암이 유전이 될까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가 입원했던 기간의 간호조사정보지에는 "가족력: 없음"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입원기록지는 대개 요즘 전공의들은 간호조사정보지를 복사해서 붙이기 때문에 그곳에도 없다고 되어 있을 것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가족력의 유무는 당장 수술을 하고 항암제 처방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정보는 아니지만, 만약 환자가 가족성 암 증후군이라면 (결국 이 경우는 아니긴 했지만) 환자의 자녀들에 대한 대처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암 유전자 변이 검사를 자녀들에게 해서 암의 조기 진단과 치료가 가능할 수 있으며, 생명을 좌우하는 문제가 된다.

결국 이 일을 통해 다시 한번 '남이 쓴 기록은 믿으면 안된다'는 평소 신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러니 이미 기록에 있는 정보도 반복해서 환자에게 묻고 확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는 만나는 이들마다 같은 것을 묻고 그 때마다 이제까지 병원에서 자신이 겪어온 과정이 리셋되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는 것같은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임신가능성 있느냐'는 질문을 연달아 다른 의료인에게 받고 반복되는 문답에 지쳐가는데, 그것은 수납과 입원 수속 등에서 수없이 나타나는 절차 속에 자신이 한 사람보다는 바코드나 환자번호로 인식되는 소외현상을 그리는 것과도 맥이 닿아있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물건이 되어 이곳에서 저곳으로 전달되는 듯한, 소외된 느낌 말이다.

그러나 환자와 병원의 관계는 이미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닌, 인간 대 조직의 관계다. 의사, 간호사, 방사선기사, 원무과 직원 등 여러 사람들이 진료에 돌아가면서 관여하게 되는데 결국 환자를 인식하는 수단은 그의 생김새나 성격이 아니라 바코드가 된다. 만약 언제라도 환자의 과거의 정보와 현재의 상황을 빠르게 종합해서 불필요한 것을 묻지 않고 당신을 이미 다 아는 것 같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 사이보그일 것이다. 반면 인간은 불완전하기때문에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당신이 아무리 물어보아도 다 파악할 수 없고 시간에 따라 몸과 마음이 계속 변화하는 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환자들에게 바라건데, 반복되는 질문에도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대답해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다소 피곤하더라도 혹시 있을 수 있는 오류나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좀더 진료에 많이 도입되면 환자에게는 덜 물어봐도 되게 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인공지능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이용되는 데이터의 정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마도 지금도 상당수 병원에서는 그러고 있겠지만, 키오스크나 휴대폰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임신가능성없음>에 체크하는 것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때쯤엔 끊임없이 물어보며 귀찮게 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Crying in H m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