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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주는 책

<지속가능한 나이듦> 정희원, 두리반, 2021

by OncoAzim

<지속가능한 나이듦>은 레지던트 시절부터 임상의사로서나 연구자로서나 탁월한 식견과 자질을 보였던 후배의사 정희원 선생님의 저작이다. 어줍잖은 책을 먼저 내었다는 이유로 추천사를 부탁받았는데, 사실 그때는 시간이 충분치 않아 다 못읽고 썼다.


" 죽음보다 무서운 늙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의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젊고 건강하고 아름답지 않은 모든 것은 버려질 위기에 처하게 되는 한국사회에서, 다가오는 고령화 시대는 모두가 애써 외면하는 어두운 미래의 모습이자 인구 소멸의 지름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려깊은 노년내과의사인 지은이는 그의 풍부한 생의학적, 인문사회적 지식과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노년을 감당할 수도 있는, 어쩌면 손꼽아 기다릴 수도 있는 ‘지속가능한 미래’로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의 분절된 정책과 의료와 인간의 대한 생각들을 통합해서 노화라는 ‘코끼리’를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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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정도만 읽고도 개인과 사회에 노화란 어떤 의미이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통찰은 충분히 알 수 있었고, 매우 동감하는 바였기에 추천사를 쓰는 건 어렵지는 않았지만, 한번 제대로 읽고 서평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가 뒤늦게나마 정리해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이드는 것을 두렵지 않게 해주는 책이다. 인생에서 이룰 것은 지금 다 이루고 즐길 것도 지금 다 즐겨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노년을 상상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할 수 있다.


가속노화 : 지금의 2030 세대에서는 평균수명이 더 짧아진다

책의 초반부에 나온 이야기 중 다소 놀라웠던 것은 평균수명이 지금의 젊은 세대, 2030 또는 밀레니얼세대에서는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지난 20여년간 임상의사로 살아오며 인구 집단의 수명 연장을 실시간으로 보아왔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이야기였다.

사실 사람들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는 것은 의사가 아니어도 모두가 실감하는 것이다. 50대는 예전의 40대처럼 보이고, 60대는 50대처럼 보인다. 레지던트 수련을 받던 2000년대의 70대는 쇠약해서 상당수에서 항암치료를 하지 못하거나 용량을 줄여서 치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젠 70대 중 상당수가 항암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체력을 갖추고 있어서, 다른 요인 없이 나이 하나때문에 약 용량을 줄이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이런 추세가 앞으로는 꺾일지도 모른다는 예측인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화의 기전에 대한 생의학적, 역학적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은, 각종 노화 방지 메커니즘이 결국은 절식 (식사 양을 줄이는 것)에 의한 갖가지 대사 효과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특별한 약이나 기구 없이도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이 절식이라는 메커니즘이 우리 사회에서 소비를 촉진하는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함께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까지는 젊었을 때 식량 부족과 가난으로 의도치않게 절식을 실천한 세대이고, 나이들어서는 의료와 노인돌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복지국가 (아직 충분치는 못하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훌륭한)의 혜택을 누리게 되면서 장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저자 본인이 속한 밀레니얼 세대는 어린시절부터 피자, 햄버거 등 고탄수화물 식품들이 넘치게 된 시기를 살아왔고, 더불어 현재는 젊은 세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새로운 문제들, 즉 주거와 직업의 불안정성, 긴 출퇴근 시간, 긴 노동시간, 각종 미디어 노출로 생기는 정신적 번뇌와 신체활동감소가 모두 수명 단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이다. 즉 지금의 젊은 세대는 ‘가속노화’를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는 얼마나 건강하고 독립적이면서 적절한 소비가 가능한 정도의 재력을 유지한 노년을 누리느냐인데, 저자는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일찍 “노년의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수명 및 노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러 인자들 - 절식, 운동, 사회적 유대관계 등-은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작용하기 때문에 몇 년 바짝 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연금자산 포트폴리오를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산투자를 하고 연령에 따라 위험도를 다르게 배치하듯이, 신체와 정신의 포트폴리오도 나이에 따라 적절한 비율로 관리해야 한다는 비유는 적절하게 와 닿았다.

젊었을 때는 그저 젊음을 불태워 뭔가를 이루거나 최대한의 쾌락을 즐기는 것이 인생에 대한 예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한편 젊을 때부터 노년을 준비하고 건강을 챙기는 자세는 뭔가 도전적이지 않고, 너무 좀스럽고, 소위 ‘가오가 없는’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마치 마음이 너무 일찍 늙어버리는 ‘보신’의 행태처럼 말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건강의 포트폴리오의 준비는 흔히 생각하는 ‘보신’이라기보다는 ‘수행’에 가까운 것 같다. 사람은 늘 흐트러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기본 상수로 놓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지속가능한 식이, 운동, 수면, 명상의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한 움큼의 영양제를 먹는 것보다 건강한 노년에 한층 더 가까워지는 길이라는, 어쩌면 재미없는 이야기를 여러 연구와 본인의 사례를 들어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이런 면에서 요즘 젊은 세대가 실천한다는 '갓생', 즉 소소한 생활 목표를 스스로 정하고 실천하는 데서 기쁨과 성취감을 느끼는 행동방식은 저자가 말하는 노화를 지연시키는 “인생의 포트폴리오”를 가꿔나가는 것에 좀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젊은 세대를 가르치고 간섭하면서 쉽게 평가하려는 마음가짐은 좀더 내려놓는 것이 좋겠다.


책 차트

두번째 장에서 그는 실제 노인을 진료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책 차트(복사를 해온 다른 병원의 차트가 백과사전 정도의 두께로 쌓여있는 것)는 사실 노인 진료 뿐만 아니라 다른 과 진료실에서도 흔히 보는 것이다. 언제 몇 시에 어떤 약을 투여했고 어느 날의 혈액검사가 이렇고 하는 자잘한 내용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 중요도가 옅어진다. 환자의 질병의 상태를 의사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데, 그 '판단'에 대한 내용이 없이 수많은 파편적인 정보만을 가져오면 진료의 연속성이 보장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막연히 뭔가 이제까지 받았던 진료보다 더 나은 진료를 받고 마치 몸이 더 나은 방향으로 리셋되기라도 하는 것 같은 기대를 갖고 오니 답답할 뿐이다.

아마 '누구보다도 머리가 좋은 이들이 선발되어 의사가 되는 것이니 복잡한 정보를 단번에 다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시간이 부족한 의사들은 모든 검사를 새로 하는 것을 택하고, 기존에 먹던 약을 이유도 모르는 채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나 이러다 보면 진료가 ‘산으로 간다’. 약 하나에도 쉽게 부작용이 생기고 기능이 흔들리기 쉬운 취약한 환자들, 특히 노인들은 이러한 분절화된 의료의 빈틈에 가장 취약한 이들이다.

진료실에 기운이 없어보이는 노인환자가 들어오면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그들은 고함을 질러야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높아지는 목소리 속에 괜히 진료실의 긴장도도 덩달아 올라간다. 바쁜 진료실에서는 그들의 몸을 일으켜서 진찰용 침상에 눕히는 몇 분조차도 환자당 3-5분정도만 쓸 수 있는 진료실에서는 억겁의 세월처럼 느껴진다. 반면 책에 나와있는 드라마틱한 증례들, 즉 간과된 증상이나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문제를 잡아내어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환자의 상황을 풀어가는 노년내과 진료실의 이야기는 마치 마법같은 신선함을 준다. 그러나 그 마법같은 결과을 얻기까지 노년내과의 진료는 지리멸렬하고 답답하고 느린 과정을 견뎌내는 인고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답답해진다. 과연 이런 진료가 특수한 몇몇 경우 말고 보편적인 진료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의료는 과연 효율을 최대화하는 획일화된 공정에서 벗어나 개인의 특수성과 복잡성을 파악하고 조정하는 역할에 적정한 보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더불어 그 개인의 필요에 맞게 개인화된 돌봄까지도 제공할 수 있을것인가? 의료와 돌봄의 분절된 체계를 이어붙일 수 있을것인가? 저자가 제기하는, 그리고 급속도로 늙어가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고민하고 답을 구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사회구조의 변화 : 오래 일하는 사회

인구구조의 변화는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중장년층은 연금 고갈로 인한 노년의 빈곤을, 청년층은 노령인구를 부양하느라 소득이 감소될 미래를 걱정한다. 나 역시 연금을 과연 낸 만큼 받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중년이자 뒤늦게 주식투자에 기웃거려보지만 이미 하락하는 장에 좌절하고 있는 개미이기도 하다. (흐흙 내 삼전주식....) 그러나 저자는 ‘60세에 은퇴하여 100세까지 40년간 빈곤하고 아프게 살아야 한다고 공포마케팅을 하는 학자들에 대해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나이들어서도 오래 일하는 사회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과거에는 20년 교육받고 40년 일했다면, 이제는 30년 교육받고 50년 일하면 된다”

실제 노인 빈곤과 생산성 감소를 해결하려면 점진적으로 정년과 연금수령시기를 연기하고 오래 일하는 것 외엔 달리 길이 없어보인다. 오래 일하려면 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야 하고 (식사, 운동, 수면, 사회적 관계의 건강의 포트폴리오를 잘 유지해야 하고), 여기에 더해 사회적으로도 연령주의에 기반한 편견을 줄여나가야 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취업시장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하지만, 또한 어린 상사 아래에서 일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생산성에 따라 직급이 낮아지는 것도 감수해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그럴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실은 40이 되도록 이뤄놓은 것도 없고 나이만 먹었다고 자책하던 상황에서 아직 일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자못 위안이 된다. 오래 일할 각오도 되어 있겠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득권을 놓을 수 있는 용기일텐데….하지만 나보다 어린 학자가 쓴 책에 감화받아 인생을 돌아보고 정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고백하는 것도 연령주의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여러가지 도표와 생의학적 지식이 포함되어 있어 일반인에게는 아주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논조는 어렵지 않다. 우리사회에서 누구나 심각하다 생각하는 인구, 고령화, 산업사회로부터 지식정보사회로의 대전환, 환경문제까지 아우르는 이 훌륭한 교양서는 사실 대선캠프에서 필독해야할 책인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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