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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an 06. 2022

나는 탈모인의 딸입니다. 그리고..

탈모급여화 정책에 대한 생각들

나는 탈모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아니다. 그러나 주로  처방하는 약(항암제)의 부작용이 탈모이고, 무엇보다 탈모인의 딸로서 탈모인의 고통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자신할 수 있다. 항암제 부작용을 설명할 때 환자들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은 "머리 빠지느냐"는 것이다. 구토나 감염같이 자칫 신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부작용보다 탈모가 더 큰 관심의 대상인 것은 그것이 얼마나 큰 사회적 정신적 영향을 주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리라. 남성형 탈모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아버지는 어차피 프로페시아도 모발이식도 없던 시절에 탈모인으로 살았으므로 어차피 별 방법이 없는 자신의 탈모에 대해 그리 신경쓰지 않았고, 이를 부끄러워하거나 위축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철모르는 어린 딸이던 나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꼈다. 오죽하면 나는 "머리숱이 풍성한 아버지를 둔 느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궁금해하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40대 초반인데도 길거리에서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아버지가 싫었고, 아버지가 친구들의 눈에 띄는 것이 부끄러웠다.

 

1976년의 아빠와 나. 만 30세에 불과하던 아빠의 이마에는 이미 M자 탈모의 징후가 뚜렷하다.

그러나 나는 내과의사로서 탈모약 대신 건강보험적용이 우선 적용되어야 할 약제, 검사, 의료행위를 수십가지를 더 댈 수 있다. 상당수의 난소암 환자들은 하루 두 알의 먹는 항암제로 질병이 악화할 위험을 무려 57%나 줄일 수 있는데도 한달 450만원의 약값을 지불하기 어려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MSI-H라는 특수한 유전형의 대장암 환자들은 면역항암제를 써서 절반 가량의 환자들이 거의 완치에 가까운 효과를 누릴 수 있는데도 3주당 560만원의 약값을 치르지 못해 대부분이 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미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들조차도 정해져 있는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삭감을 당하기 일쑤이고, 적용이 되어도 원가에 못미치는 낮은 수가 때문에  진료환자 수를 늘여 박리다매 진료를 해야 병원 유지가 가능한 현실은 대부분의 의료인들을 극심한 과로와 번아웃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온 탈모약 건보적용 공약은 의료정책의 방향을 두고 논쟁하던 의료인들과 보건학자들 모두를 멘붕에 빠뜨렸다. 거칠게 말하면 의료계에서 형평성을 위해 공공의료 확대를 주장하는 좌파와 환자의 선택권 및 전문가의 자율성 보장을 주장하는 우파 모두를 어안이 벙벙하게 만드는 희한한 의제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들은 국민건강을 향상시킨다는 목표와 공적 의료보험의 보장범위에 대해서는 동의한 상태에서 공급자가 국가/ 민간인가,  어떤 지불체계가 타당한가에 대해 주로 논쟁을 해왔는데, 탈모 건보적용은 기존의 아젠다와는 전혀 동떨어진 안드로메다에서 온 어이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병적 탈모가 아닌 흔하디 흔한 남성형 탈모까지 건강보험의 영역에 두자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상이 교수님의 말씀대로 탈모가 뚫리면 온갖 미용 성형에 대한 보장에 대한 요구가 빗발칠 것이고, 미용성형을 둘러싸고 형성된 시장과 공적 의료보장의 영역간의 벽에 균열이 가면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에 매우 큰 균열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번 탈모 급여화 논쟁을 보며 느낀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주어 정치의 효능감을 맛보게 해주는 현 대선주자의 정책 스타일이 점점 포퓰리즘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중증질환 급여확대도 안하는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어 히트를 친 정책은 우선순위를 점하게 되고, 정치란 결국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고 순위가 처지는 정책은 상대적으로 실행 가능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다수의 '소확행'을 추구하는 정책이 추진되다 보면 소수, 특히 중증질환자, 노인, 장애인 등의 '대확고 (크고 확실한 고통)'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또 한가지는 대다수의 건강인들이 건강보험을 바라보는 관점에 크게 문제가 있는데 정치가 이것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한달에 건보료를 10-20만원씩 내는데 나는 혜택을 보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이번 탈모 급여화 정책을 크게 반기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지금의 건강한 내가 더 자신있고 쾌적한 삶을 누리자고 하는 지출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들면 겪어야 하는 노쇠와 질병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지금 한달 탈모약 비용 4-5만원을 아끼자고 나중에 늙고 병들어 병원신세를 져야 할 때 엄청난 재정적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당신은 늙고 병들지 않을 것 같은가? 영원히 2030인가?


탈모인이던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던 기억은 어린 마음에 가질 수 있는 자그마한 해프닝으로 남았다. 그러나 암으로 숨진 아버지가 남긴 생애 말기의 기억은 평생 간직할 슬픔으로 남았다. 간병을 도맡아했던 어머니의 소진과 정신적 고통을 당시의 의료시스템은 전혀 돌보지 않았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버지가 앓았던 담낭암에 효과있는 약제 중 하나인 아브락산이라는 항암제는 아직 보험이 되지 않는다. 소수의 담낭암에서 발견되는 유전자변이에 효과가 있는 약제들도 역시 대부분 월 수백만원의 부담을 져야 사용가능하다. 지금도 중증질환 환자의 간병을 하는 가족들이 사회경제적 도움을 받을 길은 여전히 여의치 않다. 탈모인인 아빠를 부끄러워하는 아이보다 아빠가 의식이 있고 식사를 하며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의 소망이 더 중요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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