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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Mar 27. 2022

내공

나는 평균적인 ‘내공’의 전공의였다. 100명 가량 되는 환자의 콜을 받아야 하는 야간당직을 

서면서도 꿀잠을 자는 황제 내공의 소유자도 아니었지만, 한숨도 못자고 연속으로 심폐소생술을 하는 당직이 일상이요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환자가 쓰러진다는 불운의 화신도 아니었다.


내공은 한마디로 ‘운’이다. 무협소설에서 수많은 절차탁마의 과정을 통해 지니게 되는 저력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지난한 의학 수련의 성과물에 비유될 법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내공의 좋고 나쁨은 수련의 기간이나 실력, 또는 의사로서의 자질과 관계가 없다. ‘내공이 좋다’는 것은 나의 실력이나 성실함과 관계 없이 환자의 치료 결과가 좋고 환자 수 자체가 적으며, 그 무엇보다 나의 신체적 정신적 평안함이 확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내가  ‘내공이 나쁜 의사’라면, 내 실력이나 성실함과 관계없이 늘 환자도 나도 힘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가 늘 많고 곧잘 위중해지며 보호자는 늘 소리지르고 있고 최악의 경우 의료사고가 일어나기도 하는, 생각만 해도 뇌리가 얼어붙는 풍경들. 

어쩌면 ‘내공’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생겨난 단어일 수도 있겠다. 자연의 가혹한 섭리에 늘 위협받는 삶을 살았던 고대의 인류가 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을 믿음으로써 위안을 구했듯이, 병원은 수련 중인 전공의에게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야같은 곳이라 인간의 무력함을 넘어서는 내공의 힘에 마음을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공이 함께한다면 이 시련의 강을 무탈히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요, 이 광야에서 외따로 헤메게 된다 해도 그것은 내 부족함이나 잘못이 아니라 내공이 부족한 탓일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21세기의 첨단과학을 배운 이들이 그리 진지하게 운의 힘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연달아 닥쳐오는 불운에 마음을 소진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이게 다 내공 때문이라고 웃어넘기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일어난 불운한 일들의 대부분은 실제 예측하기가 어려운 불가항력의 사고이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운’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 때도 모르지 않았다. 모탈리티 컨퍼런스에서는 그중 일부의 일들, 예측과 예방이 가능했다고 여겨지는 케이스들이 다루어졌고  “이 환자는 당신이 죽였어!”라는 험한 말들이 오가지만, 회의실 밖에서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곤 했다. 의사들은 이 고통스러운 기억과 죄책감을 곱씹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며 회의실을 나오지만, 너무 많은 일들과 부족한 인력, 하루가 멀다 돌아오는 당직들과 채워지지 못한 잠과 휴식들 사이에 그런 일은 또 벌어지곤 한다.  나의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절대 참지 못할 만한 일들을, ‘이런 열악한 의료환경에서는…’이라며 용서하고 넘겨야 하는 이중성을 유지하는 일이 커리어 초반의 의료인에게는 무엇보다 힘든 일이다. ‘내공’이라는 단어는 이 모든 것이 나의 능력 바깥에 있다는 무력감이 쌓이며 만들어진 단어가 아닐까. 


소위 ‘종현이법’이라 일컬어지는 환자안전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16년이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종현이’는 백혈병의 치료 목적으로 척수강 내에 들어가야 할 메토트렉세이트 대신 빈크리스틴이 잘못투여되어 심각한 신경학적 합병증을 겪고 결국은 사망한 어린이의 이름이다. 종현이는 한 명이 아니다. 소아암을 치료하는 병원이라면 한두 건은 일어나는, 반복되는 끔찍한 사고였고 대표적인 시스템의 에러였다. 빈크리스틴을 실수로 주입한  ‘내공없는’ 전공의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겠지만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비길 바는 아니다.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던, 같은 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진 아이의 할머니는 소아과 담당 전공의가 바뀔 때마다 저주의 말들을 쏟아내었지만, 아물어지지 않은 상처는 그런 식으로라도 존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의료진들은 그 험한 말들을 다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환자안전법은 종현이의 부모를 비롯한 많은 의료사고의 피해자들이 싸워 얻어낸 성과다. 병원들은 환자안전위원회를 설치하고 환자안전관리 전담인력을 두어서 병원 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관리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모탈리티 컨퍼런스에서 쉬쉬하며 다루어지던 사례들이 만천하에 공유되고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이 논의되었다. 누군가의 부주의, 잘못으로 여겨지던 일들이 시스템의 문제로 다루어진다. 이것만 해도 참 많은 발전이다. 피해 당사자들의 노력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의료계에서 자발적으로 나서서 입법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아쉬운 것은, 환자안전법에서는 환자안전사고가 어떤 패턴으로 얼마나 일어나는지를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것들은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대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력부족은 늘 주요한 환자안전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되어 왔으나, 대체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환자안전을 중시하는 문화를 바꾸고’ ‘환자안전이 보장되는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등 대체로 돈이 덜 드는 방법들이다. 그러니 하루에 50-100명을 진료하는 공장같은 외래진료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의사 및 간호사 일인당 입원환자 수 역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3-4배 정도인 현실에서 환자안전법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빠르게 더 많이 진료하라’는 압박이 ‘빠르고 더 많이 그리고 안전하게 진료하라’로 바뀐 것 뿐이다. 더 ‘주의’하고, 환자안전교육을 받고, 환자안전규정을 만들고, 이런 일들이 물론 필요하기는 하지만, 왜 충분한 인력을 고용해서 해결하지 않는가, 왜 위험할 지경까지 일을 늘려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겨우겨우 인력 TO를 내어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울화통으로 바뀌고 있다. 


수련을 마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제까지 나의 내공은 어땠을까? 환자안전법도 시행되었고 의료사고에 대한 인식도 드러내고 예방하자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으니 내공이 위협당할 요인은 상당히 덜어진 셈이긴 하다. 그래도 이제까지 소송까지 간 건은 없었으니 이 정도면 평균 정도라고 할 만 하지만, 1-2년에 한번씩은 위기를 맞이하곤 한다. 최근 몇 년간 유명한 의료사고 재판 몇 건에서 담당의사가 법정구속까지 당한 것들을 떠올리면 그래도 내 내공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안도감이 밀려들지만, 한편 내 환자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 일’들이 대개 부주의하고 게으르며 책임감과 윤리의식이 떨어지는 의사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것들이 아니라 ‘나라도 그랬을 것 같은’ 또는 ‘내 환자에게도/ 우리 병원에서도 일어났을 것 같은’ 그런 사건들이어서 그렇다. 

전공의들에게 ‘내공이 함께하길- ㅡMay the 내공  be with you-이란 인사를 건네며 나는 진심으로 그들의 행운을 빈다. 이제는 병원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책임이 중견 의사인 나에게도 있음을 알기에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 험한 세상에 소위 ‘바이탈과’, 생명을 다루는 내과라는 전공을 택한 그들, 그리고 그들의 환자들만이라도 제발 내공이라는 초자연적인 힘이 감싸안았으면 하는 비현실적인 바람을 병원 위 하늘로 띄워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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