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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pr 07. 2022

의사의 글쓰기- 선을 넘지말자

글쓰는 의사들이 많아졌다. 다들 잘 쓴다. 이전에 책을 한번 냈었다는 이유로 글을 쓴답시고 명함을 내밀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아 다음 책은 언제 쓰지. 과연 낼 수는 있을까.

한편 글쓰는 의사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의사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과 위기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개인마다 다르고, 각각이 훌륭한 이야기 소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재가 대상화되면 안된다는 것이 의사가 지켜야  선인데, 의외로 선량한 의사도 그것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써보니 그렇다.

의사가 할 만한 얘기가 병원 얘기 환자 얘기가 대부분인데 그럼 뭘 얘기하란 말인가. 게다가 '대상화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기준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환자가 아니라 내가 이 글의 소재일 때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본다면,  '대상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보게 된 한 의사의 수필이다.

https://dailymedi.com/detail.php?number=882295&thread=14r01

이 글을 쓴 선생님의 진심은 의심하지 않는다. 정말 안타까웠고,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글이 환자를 대상화하고 선을 넘는 대표적인 글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몇 가지 문제만 지적해보자.

1)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이지만 개인정보가 너무 많이 드러나있다. K대법대 학생, 삼수, 경남 창원출신, 교모세포종.... 맘먹고 개인을 특정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정보다. 나는 이전에 블로그에 이보다 훨씬 더 불특정한 정보를 익명으로 노출하였으나 내 환자가 내 블로그의 글을 읽고 본인 상태를 알게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 일로 환자가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고 나는 블로그를 닫았다. 지금은 그런 실수라도 했던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블로그에 안타까운 환자 이야기를 올리며 감상에 젖어있을지도 모른다. 실은 이 브런치에서도 그런 실수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검열을 해봐야지.


2) 병의 경과와 예후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것은 여러 안타까운 정황상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명백히 환자의 권리침해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얘기를 못했다는 것은 의사의 변명이 될 수 없다. 의사는 어떻게든 설명하고 이해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되는 미래를 꿈꾸며 본인이 말기암이라는 것도 모르는 환자를 안타까워하면서 바라보는 것이 대상화다. 만약 누군가 나와 관련된 중요한 진실을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채 딱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그 사람에게 고마워할 수 있을까?  

이것과 대비되는 것이 작년 한창 화제가 되었던, 말기암을 앓던 뮤직비디오 감독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설명에 대해 '싸늘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던 사건이다. 대중은 보통 전자에 감동하고 후자를 비난한다. 물론 나쁜 소식을 전할 때 환자가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배려 없이 전달했다면 잘한 건 아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후자가 부절적한 진료라면 전자는 업무상 과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3) 점점 더 많은 의사들이 글을 쓰고 있다. 책을 한번 냈던 자로서 글쓰기에 대한 욕망과 열정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글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나만 해도 나를 소재로 글을 쓸 수도 있고 나의 건강상태를 나에게 숨길 수 있는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지는 않다.


선을 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선을 넘지 않고 글을 쓸 수 없다면, 그것은 글을 그만 쓰거나 의사 일을 그만두어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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