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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Dec 07. 2021

입원 프리패스

진료를 하면서 요즘처럼 무력감을 느낀 적이 없다. 항암치료를 하다가 구토가 심하거나 열이 나도 응급실에 오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아니, 오라고 말은 하지만 와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을지는 확신을 할 수가 없다. 응급실은 늘 만원이고 코로나19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응급실에 들어갈 수조차 없으니, ‘오긴 오셔야겠지만 들어올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겠네요’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도 차마 내뱉지못한다. 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보는 의료진에게 내리는 (비공식적인) 지침은 ‘웬만하면 응급실 보내지 말고 외래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만약 응급실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해도 그곳을 거쳐 입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병실부족은 코로나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전에는 수 일을 기다려 입원하던 환자들도 메르스 이후 응급실 재원시간 단축 때문에 응급실 입실 24시간 내에 입원하지 못하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가던지 퇴원을 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20여일간 식사도 못하고 대변도 보지 못했다는 노인이 지친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느낀 것은 아득함이었다. 아, 어떻게 해야 하지. 입원시킬 병상도 없고 응급실에도 못보낼텐데. 그러나 그가 다니던 인근병원은 이미 코로나19 집단발생으로 폐쇄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외래에서 한 간단한 진찰과 검사만으로는 심한 변비의 원인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이전 병력으로 보아 암이 뱃속에 퍼져 장 마비가 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도 항문 진찰을 해 보니 직장까지는 변이 내려와 있어서 완전히 막힌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임시로 관장을 하고 가정간호실에 연계해서 집에서 수액주사를 맞도록 일정을 잡고 돌려 보냈다. 제발 그동안 무사하기를 바라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대량의 혈변을 보면서 혈압이 떨어진 중년남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항암치료를 받는 중 반복해서 혈변이 있어 위내시경, 대장내시경을 했지만 출혈 원인을 잡아내지 못했다. 지난번 외래진료실에서 수혈을 하고 간 뒤 며칠만에 다시 혈변을 보며 응급실에 왔지만 입원시키지 못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위장관 출혈은 며칠간 병실에서 집중관찰을 하며 재출혈 위험에 대비하고 다른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피가 나면 다시 오라’고 설명하고 집에 보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모 정부고위관료의 30대 아들이 다른 대학병원의 감염내과에 응급실을 거쳐 입원했다는 소식을 뉴스로 들은 것은 그 날 저녁이었다. 그 병원은 내가 전공의 수련을 받은 곳이라 어떤 곳인지 조금 아는데, 대부분 큰 병원들이 비슷하다. 감염내과는 요즘이야 코로나19로 입원환자가 많다지만, 원래는 그 과로 입원하는 환자는 매우 소수다. 상급종합병원은 주로 중증질환 환자들이 오는 곳이고, 감염질환은 대개 독립적인 질병이 아니라 암, 심장병, 신부전, 간부전 등의 중증질환 환자들이 종국에 다다르는 합병증이기 때문에 감염만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기저 질환을 진료하는 과(종양내과, 신장내과, 소화기내과 등)에서 감염내과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진료하지, 감염내과의사가 환자를 전담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병원에서 코로나19가 아닌데 감염내과에 입원했다는 것은 감염 외에 문제가 될만한 기저질환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날 입원시키지 못한 환자들이 떠오르면서 분노가 차올랐다. 비싼 병실이 남아서 입원했다는 고위관료의 말은 이 정도의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짓말이다. 1인실이어도 좋으니 제발 입원만 시켜달라며 읍소하는 환자나 보호자는 응급실에 널려 있고, 우리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족한 병실과 의료진을 우리가 만들어낼 수는 없다’며 그들을 설득하여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거나 퇴원시키는 일을 매일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환자들에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병실이 없는 이유를 말해도, 이제 환자들은 “내가 빽이 없어 입원을 못하는구나”로 받아들일 지도 모른다. “남아있는 비싼 병실이 왜 없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의료인은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기 시작했을 때 오히려 이를 반겼다. 환자가 주는 돈이나 선물은 고맙긴 하지만 부담스러워 안 받는게 나았다. 대신 툭하면 입원을 시켜달라, 외래진료일정을 당겨달라고 들어오는 청탁에 “이젠 김영란법 때문에 그런 거 못해요”라고 말할 수 있어 더 좋았다. 그런데 이젠 그런 것도 통하지 않게 생겼다. 왜 진료를 하는 것만 해도 지치는 의료인들이 사회의 불공정의 하수인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일을 해야 하나.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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