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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Sep 30. 2022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야지

소아과 의사가 귀여운 어린이 환자를 진료하며 일의 보람을 얻는다면 내과 의사에겐 귀여운 할머니가 있다. 내과 의사는 대체로 잘 낫지 않는 만성질병 환자들을 진료하고, 간혹 인류애를 바닥나게 하는 온갖 진상을 대하기도 하다보니 번아웃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귀여운 할머니 환자와의 만남은 그날의 번뇌와 시름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하니 신기한 일이다. 그들은 간절한 눈으로 의사를 바라보거나, 덥석 손을 잡거나, 말씀하셔야 할 본인의 증상보다 의사의 안부를 먼저 묻기도 하며, 손수 짠 참기름이나 찐옥수수, 삶은 밤, 손수 만든 한과나 튀각 따위를 안겨주기도 한다. 사실 김영란법을 따르자면 이런 ‘금품’들은 병원 법무팀에 보내어 환자에게 반환하도록 조치해야 하긴 하지만 나는 잘 그러지 않는다. 가끔 들어오는 돈봉투나 지갑, 스카프는 법무팀에 보내지만 할머니들이 하사하신 탄수화물 만큼은 챙겨놓았다가 외래 진료 후 야금야금 먹으며 지친 뇌를 달랜다. 내가 얼른 먹지 않으면 할머니들의 마음이 담긴 음식들이 쉬어버릴 테니까. 

왜 할머니들은 귀여울까? 일단 할아버지들은 대개 귀엽진 않다. 나는 점잖고 신사적인 할아버지들도 좋아하지만 대체로 그들을 귀엽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귀여움이란 무엇일까? 어린이들과 할머니에게는 있는데 할아버지에겐 없는 그것이 무엇일까? 

물론 할머니라고 다 귀여운 것은 아니다. 진상 할머니도 많다. 의사가 좋아하는, 치료 효과가 좋고 병이 많이 호전되어 나를 명의로 만들어주는 할머니가 귀여운 할머니일까? 하지만 병이 깊고 힘든 증상을 호소하는 할머니도 안 귀여운 건 아니다. 귀여운 할머니도 아프다고 눈물을 짓기도 하고 가끔은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들은 귀엽다. 왜 그럴까? 그들의 마음이 전달되어 오기 때문이 아닐까? 

일단 귀여운 할머니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호의가 표정에 담겨있어서 말을 건넬 때도 편하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를 모시고 오는 가족들의 표정에도 간병의 그늘이 별로 없다. 

“선생님 나 많이 힘들어… 어떻게 하면 될까? 음…. 그렇게 하면 좀 나아질까?”

“고마워요~ 선생님도 하루 종일 아픈사람들 보느라 힘들텐데 기운내고…..” 

“어유 그동안 좀 기운은 없었지.. 그래도 우리 며느리가 잘 돌봐줘서 잘 지냈어요.”

어린이의 귀여움이 상대방에 대한 편견이 없는 해맑음에서 온다면 일부 할머니들의 귀여움은 그들이 관계에서 디폴트 값으로 놓는 사랑과 우정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살아오면서 어떻게 누군가를 경계하거나 불신하지 않고 대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지혜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귀여움은 큰 힘이다. 어린이들의 귀여움은 어른들의 함박웃음을 이끌어내고 힘든 돌봄노동을 어떻게든 견디게 한다. 반려동물의 귀여움 역시 마찬가지다. 할머니의 귀여움 역시 나이가 들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면 큰 무기가 된다. 상대방에게 기꺼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게 하면서 나를 짐으로 여기지 않게 하는 인생고수의 마법과도 같은 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노년의 목표를  ‘귀여운 할머니 되기’로 정했다. 일단 할아버지가 되진 않을 것이므로 가능성이 있다. 할아버지가 대개 안 귀여운 이유는 아마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하고 본인의 권위와 가치를 늘 우선하였던 그들의 삶의 방식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평생 돌봄 노동을 하며 살아온 할머니들은 주는 데 익숙해서 역설적으로 받는 것도 잘 받는다. 나이가 들면 결국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것은 중요한 미덕이다. 40대 후반으로 달려가며 뼈와 관절은 굳어가고, 잊어버릴 만하면 밀린 빚을 갚듯 운동을 하며 남에게 폐 안끼치는 독립된 노년을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어차피 받아야 할 누군가의 도움, 기꺼이 받으려면 돈도 중요하지만 귀여움을 장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귀엽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상대방을 인간적 주체로 여기지 않고 대상화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단어가 아니면, 생각하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 느낌을 잘 표현하지 못하겠다. 그것을 흔히 ‘엄마미소’ 또는 ‘아빠미소’라고 부르고 나는 ‘내과의사 미소’라고 부르겠다. 그런 미소를 자아내는 사람이 된다는 인생의 목표는 꽤 근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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