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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게 더 잘 듣는 것 같던데 이걸로 처방해주실 수 있나요?”
환자가 내미는 물건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펜타닐 패치. 소위 ‘몰핀보다 100배 강하다’고 알려진 마약성 진통제다. 내가 처방한 적이 없는데 환자는 왜 이걸 가지고 있을까?
“ 이거 어디서 구하셨어요?”
“ 요양병원에서 만난 다른 환우가 이게 잘 듣더라면서 추천해주더라구요….”
환자는 이미 암성 통증으로 다른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던 분이라, 이를 펜타닐 패치로 바꾸어서 처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의사의 처방 없이 환자들 사이에 유통되는 것은 큰 문제다. 물론 암으로 인한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 사이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 돕고 싶어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처방 없이 유통되는 이 위험한 약물이 이들 사이에서만 돌아다니라는 법은 없다.
나는 환자를 ‘마약류 취급자가 아니면서 마약을 제공하고 수수하는 행위’를 금하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제 4조를 위반한 혐의로 고발을 할 수도 있겠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통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면 그랬겠는가. 진작에 약을 잘 맞는 것으로 바꿔주지 못한 내 잘못이다. 그러나 확실히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무너졌고 관리 또한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사실 우리나라의 마약 관련 규제는 매우 엄격하고, 마약에 대한 사회문화적 터부도 상당하다. 60년대 마약성 진통제의 일종인 메사돈을 일반 진통제에 섞어서 팔던 제약사들의 비양심적인 행태로 수많은 마약중독자들이 양산되었던 ‘메사돈 파동’이 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마약은 난치성 만성통증과 암으로 인한 통증을 조절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약제다. 일부 특수한 환자들만이 마약 처방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국민의 38%가 평생 한번 이상 암에 걸리고 전체 사망자의 26%가 암으로 죽는데, 이들 대부분이 증상조절을 위해 마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간의 사회적 법적 규제로 인해 2000년대까지도 마약성 진통제 사용에 상당한 제한이 있었고, 아직 우리나라의 마약성 진통제 소비량은 1인당 연간 55mg으로 OECD 평균량인 258mg보다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십수년간 효과적인 통증조절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량이 상당히 늘어났고, 해마다 새로운 성분과 제형의 마약성 진통제들이 도입되고 있으며, 이미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에 대한 대처가 아직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식약처에서는 처방건수가 많은 환자와 의료인을 모니터링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처방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환자 교육과 진료에 대한 지원이 더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로서의 바램이다. 솔직히 진료시간이 부족하니 의사 입장에서는 진통제의 효과와 부작용을 자세히 모니터링하고 혹시 오남용의 문제를 보이지는 않는지 확인할 여력이 없다. 사실 환자들 중에는 중독까지는 아니어도 ‘약을 안먹으면 아프진 않지만 기운이 없고 식은땀이 난다’는 신체적 의존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적지 않다. 통증이 아닌 불안, 불면 등의 다른 문제를 마약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마약성진통제 코핑 현상 (opioid-related chemical coping)을 보이는 경우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고 조절하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 복약교육 및 상담이 별도의 수가가 책정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면 좋겠지만, 그런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일단 처방이 된 이후에는 환자가 얼마나 약을 복용하였고 얼마나 남았는지 관리를 하기란 매우 어렵다. 또한 ‘아픈데 약을 넉넉히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다. 중독이 아니라 정말 아파서 진통제가 부족하다며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는 최대한 많이 처방을 하게 되지만, 이런 곳에서 약물 오남용의 구멍은 막기 어렵다. 결국 마약류 오남용은 환자를 충분히 면담할 수 없는 ‘3분진료’의 폐해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마약성 진통제를 쓰는 주요한 질병인 암 유병률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미 우리나라에 암 경험자 수가 200만명이 넘는다. 보통 암환자 중에서도 전이암이나 말기암 환자의 경우 증상조절을 위해 적극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게 되는데, 과거에는 이런 환자들이 기대여명이 길지 않아 복용 기간이 짧고, 중독이나 오남용의 문제는 적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암 치료가 발전하면서 전이암 환자들이 점점 오래 생존하고, 완치와 질병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진통제 복약기간이 길어지면서 오남용도 점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차례 전이암을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해오면서 암성통증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함께 복용해왔지만, 막상 통증을 유발할 만한 암 병변은 상당부분 줄거나 제거가 된 반면 환자는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한 OTT 서비스에서 제작한 마약사범 관련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고 연예계 마약 범죄 관련 뉴스가 화제가 되면서 마약에 대한 경계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라는 자조섞인 한탄이 나온 지는 오래 되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터지면 마약류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들은 정책에 반영되며, 마약이 꼭 필요한 의료현장에서는 도리어 처방이 어려워지고 환자들의 진통제 접근성이 떨어지게 된다. 관리책임과 보고 건수가 많아지면서 현장 인력의 피로가 쌓이는 것은 물론이다. 그보다는 마약이 필요한 환자를 진료하고 관리하는 현장의 의사, 간호사, 약사 인력에 대한 보상과 지원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