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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pr 29. 2023

집안의 의사 한 명

서울신문 2023.5.5 칼럼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358977?sid=110


늘 가까이 하면서도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 같던 삶, ‘간병하는 삶’이 얼마 전 나에게 시작되었다. 사실 아직은 정확히 말하자면 주 보호자는 아니므로 간병보다는 환자의 가족이 된 삶이긴 하지만. 여러 가족들이 예고 없이 갑자기, 또는 익히 예상되었지만 하필 이 때부터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가족 중 유일한 의사로서 수시로 연락을 받고 진료 일정을 잡고 때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며칠 전 직원식당에서 만난 의대 동기는 “누가 아프면 너무 챙길 게 많아서 집안에 의사가 둘은 있어야 돼...”라며 내 처지를 동정해주었지만 둘 다 알고 있다. 의사 하나도 없는 집안이 대부분이고 의료접근성이 날로 나빠지는 이 시점에 집안의 의사 한 명은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자 보험이라는 것을. 그게 의대 경쟁률이 이렇게 치솟는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환자의 가족이 되면서 새로 알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환자와 가족은 치료결과의 불확실성에 대해 생각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질 미래, 희망을 믿고 싶어한다. 가족 중 한 분은 고령이지만 숙고 끝에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어떤 선생님은 크게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은 채 고통은 지속되고 삶의 질이 저하된 채 꾸역꾸역 목숨을 유지해가는 노인 암환자들의 이야기를 하며 걱정을 했다. 요즘 항암제들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병을 완치시킬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들이다. 항암치료로 큰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도저도 아닌 고통의 연장일 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아마도 돌봄의 당사자가 되어 그것을 함께 견뎌야 하는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씀인 것을 알지만 순간 서운함이 불쑥 밀려왔다. 그리고 병이 나빠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화를 내거나 속상해하는 환자들의 마음이 약간은 이해되기도 했다.

물론 나는 “의사가 병을 고칠 생각을 해야지 왜 나빠진다는 얘기만 하며 겁을 주냐고요!”라는 말을 듣고 물러선 적은 없다. ‘그래도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이나 치료 실패의 가능성에 대해 이해하시고 결정하셔야 한다’고 설명하고서는 돌아서서 동료들과 얘기하곤 했다. “왜 저렇게 인사이트 (insight: 병에 대한 인식)이 없으실까...” “좋은 얘기만 골라서 듣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지만...” 그런데 당사자가 되고 보니 그 항변은 아집이나 대책없는 낙관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간절한 것일 줄은 몰랐다. 의사 보호자는 의사라기보다는 보호자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 의사 보호자는 진상 보호자가 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그 점에 각별히 유의하긴 해야 하겠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집안의 의사 한 명은 급할 때 보험이 될 지는 몰라도 가족들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들 집안에 의사가 있으면 가족들의 건강을 다 챙길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익히 예상된 질병이 발생한 가족들은 흡연, 음주, 비만이라는 조절할 수 있는 건강위험요인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그들의 생활습관에 참견을 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건 의사가 아닌 가족으로서의 한마디였고 무력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의 삶의 무게가 있었기 때문에 나무라거나 비난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에게 주치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족이 아닌 의사의 말은 좀더 진지하게 듣지 않았을까? 물론 습관은 고칠 수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년 몸무게를 확인하고 혈당과 콜레스테롤을 체크하고 식이습관을 점검하고 흡연자 폐암검진으로 추천되는 저선량시티를 매년 찍었다면 적어도 지금의 문제를 조금 더 빨리 발견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검진을 내가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다소 후회하고 있긴 하지만 건강검진을 포함한 일차의료는 나의 전문영역이 아닐뿐더러, 다시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여전히 내가 그런 것을 다 챙길 자신은 없다.

의사 보호자는 보호자일 뿐이며 집안의 의사는 가족의 건강을 챙길 수 없다. 그리고 건강을 위한 개입은 보다 지속적이고 공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을 다른 말로는 주치의제도라고 부른다.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집안의 의사가 아니라 좀더 공식적이고, 사무적이며, 사적인 관계가 얽히지 않은 의료인의 단호하지만 따뜻한 개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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