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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ul 22. 2023

진찰이 사라진 시대

2023.6.16  서울신문 칼럼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616026001

노인은 최근 감기 증상 이후 몸이 많이 부었다고 했다. 체중도 불어났고 다리도 많이 부었다. 그러나 부어 있는 정강이의 피부를 눌러보는 것 이상의 시간을 노인에게 쓸 수 없었다.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많았다. 몇 가지 피검사와 소변검사, 엑스레이 오더를 내고 응급실에 보내야 할 지 입원을 시켜야 할 지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 주 외래 진료실에서 검사결과가 나오면 다시 보자고 했다. 입원을 하려면 3-4주가 걸릴 것이고, 그렇다고 당장 응급실로 보내기엔 더 많은 번거로운 검사와 긴 대기 시간으로 더 고생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다음주에 온 노인의 엑스레이에서 폐는 한쪽 구석이 허옇게 변해있었다. 중간에 많이 힘들어서 다른 병원에 가보니 폐렴이라고 하여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호흡기 증상이나 열이 없었기에 나는 진단을 적시에 하지 못한 것이다. 노인 환자에서는 감염증이 있어도 열이 나지 않을 수 있고 활동량이 적으니 호흡곤란도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놓쳤다. 아마도 감염으로 인한 혈관투과성증가, 일시적인 심부전, 또는 영양불량이 부종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지난주에 청진기를 노인의 가슴에 대 보았다면 알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 간단한 일을 하지 못해 오진을 한 셈이다.

옛날에는 환자를 진찰하는 능력이 의사가 가진 중요한 기술이자 지적 자산이었다. 심장박동 사이에 미세하게 들리는 잡음의 강도와 패턴을 파악해서 심장의 구조적 이상을 진단해내고, 무릎의 인대를 두드려 나오는 다리의 반사운동의 각도를 보고 신경의 어느 부위가 손상되었는지 맞추는 그 신묘한 감각들 말이다. 그 옛날 CT도 MRI도 없던 시대에 진료를 했던 원로의사들의 전설적인 진찰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랑잎을 타고 압록강을 횡단했다는 김일성의 신화가 부럽지 않다. A 선생님은 환자의 눈만 보고도 황달 수치를 소수점 첫째자리까지 맞추더라는 이야기, B 선생님은 청진만으로 폐암의 위치와 크기까지 알아내더라는 이야기, 선생님은 환자의 배만 눌러보고도 대동맥 옆 림프절이 몇 cm까지 커졌는지를 알더라는 이야기…그런 얘기를 들으면 존경스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그런 건 혈액검사와 영상검사로 금방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소견들인데 그런 대단한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 이제 진찰은 단순한 허례에 불과한 것이 되다시피 했다. 단순 계산도 계산기로 하듯이, 종합병원의 의사들은 쉽게 영상과 혈액검사에 의존하고 좀처럼 진찰을 하지 않는다. 사실 외래진료는 환자에게 손을 대는 순간 상당한 시간이 지나버리기 때문에, 가급적 진찰을 하지 않는 것이 최대의 효율을 올릴 수 있다. 그러다보니 눈과 손과 귀는 점점 퇴화되고 의대생들이나 전공의들을 가르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 되어간다. 결국 노인의 폐렴을 놓친 것도 그 결과일지도 모른다. 

미국 스탠포드의대의 감염내과의사인 아브라함 베퀴즈는 “의사의 손길” (a doctor’s touch) 이라는 제목의 테드 강연에서 의식저하와 쇼크 상태에서 응급실에 실려온 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고보니 그 원인은 진행된 유방암이었고, 환자는 꾸준히 정기검진을 받아왔음에도 담당의사가 유방에 손을 대어 진찰하지 않은 무심함의 결과였다. 의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찰이 사라진 시대가 낳는 의외의 비효율과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베퀴즈의 절절한 눈빛은 심금을 울린다. 그는 의사의 진찰을 단순한 진단과정을 넘어 <의식(ritual)>에  비유한다. 진찰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형성하고 질병의 과정에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식이라고 말이다. 

“만약에 의사들이 환자들의 옷을 벗기지 않거나, 환자복 위로 청진기를 대고 듣는다거나, 완벽한 검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 의식을 속인다면, 이는 환자와 의사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매일같이 이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다. 한시간에 10-20명을 보며 진찰을 하는 환자는 한두명이나 될까. 대부분은 옷 위로 대충 만진다. 옷 벗길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진료실 침상으로 올라가 누워보시라고 하고 나서도 환자가 걸어가 눕는 그 몇 초가 오래 걸릴까 봐 조마조마한다. 과연 원격의료가 안전할까, 각종 생체신호와 활력징후가 모두 데이터화되어 인공지능에 의해 해석되는 시대에 의사의 진찰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은 종종 부질없게 느껴진다. 의사들은 이미 환자들에게 손을 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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