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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짧은 진료시간에 못해드렸던 말씀을 지면을 빌려 드리고 싶어요. A 씨는 저의 진료실을 찾아와 이렇게 말씀하셨죠.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이렇게 지내는 게 맞는 걸까요? 남들은 암을 이겨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고 난리거든요.”
아무것도 안하시다니요. 힘든 암 수술을 받고, 회복이 채 되기 전에 항암치료도 시작하셨잖아요. 그래도 아직까지 큰 부작용 없이 잘 하고 계시고, 이제 곧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서히 하시면 되는 단계인데요. 그런데 사실 이럴 때가 환자분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답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지요.
알아요. 환자분이 ‘아무것도 안한다’고 말씀하신 의미를요. 건강보조식품이나 보완대체요법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곧이어 “글루타치온을 복용하는게 도움이 될까요?”라고도 물어보셨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인터넷 포털에 접속할 때마다 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어떤 의사의 글루타치온 광고를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답니다. 저와 환자분들이 대화를 나눠야 할 몇 분 안되는 시간을 의미없이 앗아가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건강에 좋다’ 또는 ‘암 치료에 좋다’고 광고하는 보완대체요법들은 유행이 있답니다. 얼마 전에는 그라비올라였고, 와송이었고, 개똥쑥이었지요. 영원한 스테디셀러 상황버섯과 차가버섯도 있네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경험이 부족했던 젊은 시절에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환자분들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었어요. 너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고, “그런 것은 드실 필요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반복하다보니 지치기도 했었기 때문이에요. 실제 이런 보완대체요법 중 어떤 것도 암의 재발이나 진행을 막거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알려진 것은 없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질문들이 자녀에게 선행학습을 시켜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저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불안의 발로라는 것을 느껴요.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나만 안하고 있어도 될까? 큰 효과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아주 작은 간발의 차이로 나에게 큰 영향이 있지는 않을까? 그런 마음 말이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온갖 건강보조식품을 챙겨서 복용하시면 정말 건강해지고,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일까요? 제 생각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이런 분들은 그만큼 불안수준이 높고, 삶의 질도 더 낮은 경우가 많아요. 국내 연구에서도 보완대체요법을 이용하는 환자 중 재발에 대한 불안수준이 높은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고(1), 이는 우울증의 위험과도 연관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답니다(2). 사실 대부분 암 투병의 결과는 진단 당시의 병기가 좌우해요. 당연한 얘기죠. 병기가 높을 수록 치료가 어렵고, 재발 위험도 높으니까요. 저희가 보기에는 재발의 위험인자가 있으니 아무리 치료를 잘 해도 일부는 재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환자분들은 “내가 관리를 소홀히 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무거나 먹어서” 재발했다며 자책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환자의 탓으로 암이 재발했다고 여겨지는 경우를 저는 거의 보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암의 이차예방 (암에 걸리고 난 후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를 이차 예방이라고 한답니다)은 암에 걸리기 전의 일차예방과 다를 것이 없어요. 다 아는 거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것이에요. 그럼에도 “뭔가 특별한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은 환자들이 버리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한국인 특유의 자력갱생 정신 때문일런지도 모르겠어요. 가만히 있어서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 스스로 찾아서 쟁취해야 한다는 마음. 우리 현대사가 그래왔고, 많은 분들이 그런 인생의 역사를 스스로 써 왔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마음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식사와 운동같은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환자분은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신 것이에요. 아시겠지만, 실제 그걸 잘 하기도 매우 어렵답니다.
제가 많은 환자분들을 보아오며 가장 닮고싶은 분들은 항상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분들만은 아니었어요. 어떤 분들은 재발을 겪기도 했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한결같이 웃음을 잃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했던 것이 그분들의 공통점이었어요.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었어요. 그런 것을 저는 진정한 인생에서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 Kim et al, Association between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Use and Fear of Cancer Recurrence among Breast Cancer Survivors. Korean Journal of Family Medicine 2022;43(2):132-140.
(2) Tran et al, Fear of Cancer Recurrence and Its Negative Impact on Health-Related Quality of Life in Long-term Breast Cancer Survivors. Cancer Res Treat 2022;54(4):1065-1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