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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Sep 13. 2023

당신의 가족이라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922026002



“환자가 선생님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사들은 종종 환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젊었을 때는 “환자가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주로 받았고, 그 질문은 대개 환자의 삶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던져졌다. 연명치료에 대한 어려운 결정에 봉착하였을 때 가족들은 혼란스러워하며 묻는다. 항암치료를 더 하겠는가, 중환자실에 가겠는가, 호스피스 진료를 받겠는가, 곧 돌아가신다는 나쁜 소식을 본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나는 다년간의 수련과 임상 경험을 통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음을 거의 굳힌 상태다. 오래전 아버지를 암으로 떠나보내는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생애 말기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온 어머니는 이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어머니에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항암치료는 표준치료로 권장되는 것 이상을 권유드리지 않을 작정이다. 어머니가 불필요한 연명치료로 고통받게 하지 않을 것이고, 일찌감치 호스피스 진료를 받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은 이런 질문을 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먼저 보호자에게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나의 부모님 같으면 이렇게 하겠다…’ 면서 운을 띄우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받는 질문의 대상이 달라졌다. 암을 드물지 않게 진단받는 40대 후반으로 접어드니 환자가 선생님의 배우자라면, 환자가 선생님의 형제라면, 아니 환자가 선생님 본인이라면,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 또한 질문을 하는 상황도 더 복잡하고 어렵다. 수술과 항암치료 중 어떤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좋을지, 방사선치료를 하는 것이 좋을지 수술을 하는 것이 좋을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지 아닐지. 망설이는 환자와 가족에게 상의해서 결정하고 오시라고 하면, 때로 느닷없이 이런 질문이 내 앞을 막아선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이러한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사실은 불쾌해하는 경우가 많다. 갑작스런 감정이입을 요구받는 것이 우선은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우라면 쉽게 대답하면서 다른 가족의 경우엔 대답하기 어려운게 왜인지 처음에는 나도 잘 몰랐다. 다만 왠지 억하심정이 들면서 '외국에서도 환자들이 이런 질문을 할까? 혹시 우리나라 환자들이 의사를 더 불신하고 더 쉽게 선을 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북미의 한 응급의학과의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웹진에 비슷한 내용으로 글을 쓰지 않았겠는가. 왠지 반가운 마음에 읽어보게 되었다. 

https://first10em.com/what-would-you-do-if-this-was-your-family-member/

그는 자신이 이런 질문을 매우 싫어한다는 말로 포문을 연다. 이런 질문의 기저에는 ‘가족이라면 일반적인 환자와 다르게 치료할 것이다’라는 불신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래, 이런 생각 때문에 이 질문이 싫어지는 거지. 점잖게 물어봐도 사실은 ‘네 가족이면 이렇게 하겠느냐’는 힐난이 숨어있는 거지. 

그런데 그는 다른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한다. 불신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혼란스러워서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고. 그건 그렇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미명 하에 어려운 결정을 하도록 환자와 가족을 홀로 내버려두었을 때 그들은 이런 질문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즉 불확실성이 높은 의학적 결정을 해야 할 때 의사는 그들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것에 맞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질문이 불확실성을 사라지게 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신우신염에서의 항생제 치료같이 위험에 비해 이득이 높고 불확실성이 적은 결정이라면 의사는 가족에게도 똑같은 치료를 할 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뇌경색에서의 혈전용해제 사용과 같이 이득도 위험도 모두 높고 환자마다 상황이 천차만별인 치료일 때, 내 가족이라면 이렇게 하겠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의 글을 읽고서야 내가 느꼈던 불쾌감과 난감함의 정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말기암에서의 연명치료의 위험은 이득보다 훨씬 크므로 의학적으로는 결정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어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환자라면 어떤 선택을 결국 하긴 하겠지만 그것이 이 환자에게도 최선인지 장담할 수도 없다. 결국 그건 환자가 자신의 가치관과 상황에 맞추어 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정보를 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지 못했다는 방증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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