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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Nov 11. 2023

실손보험 하나쯤

‘실손보험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질병과 사고를 대비해 구비해 놓아야 하는 필수품이라 ‘국민보험’이라는 별명도 있다. 그러나 실손보험이 의료현장에 가져온 해악을 목격하며 나 한명이라도 가입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소위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볼 때 실손보험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한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실손보험은 비급여시장을 팽창시켰다. 개원가에서 활발히 시행되고 있는 각종 주사치료, 예를 들어 각종 영양주사, 도수치료, 체외충격파치료 등은 근거중심의학에서는 권고하지 않는 보완대체요법이다. 이런 치료들은 ‘필수의료’라고 보기 어렵고 당연히 건강보험에서 비용을 지원하지도 않는다. 굳이 하려면 환자의 본인부담으로 시행하는 것이 원칙인데 실손보험은 그 문턱을 상당부분 낮춰버렸다. 가격이 낮아지니 수요는 증가하고 의사들은 너도나도 이 ‘성장하는’ 시장으로 흡수되었다. 비급여치료의 대상들은 ‘환자’라기보다는 ‘고객’이다. 중증도가 높지 않고 지갑을 잘 여는 ‘고객’을 맞이하며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굳이 아픈 ‘환자’들을 상대하겠는가. 쉬운 길을 열어놓고 어려운 길을 가지 않는다 타박하기엔 실손보험이 깔아놓은 이 쉬운 길이 너무 넓다. 또한 어려운 길을 가겠다 결심하고 수련을 받아도 극심한 노동강도 속에 번아웃이 되면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필수의료’의 영역에서도 실손보험이 미친 해악은 크다. 실손보험이 있는 환자들은 입원을 선호한다. 입원치료가 외래 통원치료보다 더 보장범위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고가의 비급여 약제를 투여받는 환자들은 통원치료를 할 수 있음에도 입원하기를 고집한다.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가 돈 걱정 없이 최선의 치료를 받는 것을 원하고, 무엇보다 바쁜 진료실에서 그들과 실갱이를 하며 관계를 망치고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이렇게 환자와 의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입원수요가 늘어나고 병상은 이에 맞춰 늘어난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OECD에서 가장 많은 병상수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고, 전체 의료비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입원치료는 통원치료보다 돈이 많이 들고, 실손보험 가입환자의 입원진료에는 국민건강보험의 돈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상의료비는 지난 10년간 OECD 연평균 증가율 4.4%에 비해 거의 두 배인 8.0% 씩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암 요양병원의 번성 또한 실손보험에 힘입은 바 크다. 환자와 가족들은 치료 후 쇠약해진 몸으로 집에 있기가 걱정이 되는데  마땅히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 이런 돌봄의 수요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암 요양병원이다. 그러나 실손보험은 ‘면역증진주사’ ‘고주파온열치료’ 등의 비급여 보완대체요법을 필수 치료코스인 양 포함시키는 요양병원의 수익모델이 발생하는 토양이 되었다. 실손보험 가입 환자들의 요양병원 이용횟수와 기간이 늘어나며 생기는 문제 중 하나는 감염의 확산이다. 독감, 코로나는 물론 각종 항생제 내성 세균, 옴 등의 기생충의 전파기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필요할 때는 이용해야 하겠지만, 집에서 지낼 수 있는데도 ‘삼시세끼를 해결하느라’ 늘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다는 환자를 만나면 마음이 답답해져온다.


요즘 부쩍 의료제도의 위기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많아졌다. 응급실 뺑뺑이, 필수의료의 붕괴, 의료취약지역의 증가 등이 연이어 보도된다. 그러나 의료시장을 왜곡시키는 실손보험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언론은 드물다. 실손보험에 관해서는 다들 청구간소화에만 관심이 있지 그것이 일으키는 의료수요와 비용 증가, 도덕적해이, 비급여 팽창 등의 해악에는 좀처럼 눈을 돌리지 않는다. 언론인들을 포함한 국민 대부분이 모두 ‘실손보험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서 일어나는 거대한 ‘카르텔’의 침묵일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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