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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종양학 분야에서는 매년 쏟아지는 신약의 이름을 외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5-FU라는 항암제는 종양학을 전공으로 하지 않더라도 의료계 종사자라면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보았을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항암제다. 현대 종양학이 태동된 1950년대에 개발된 이 약은 아직도 위암, 대장암, 췌장암의 치료에 쓰이는 필수 치료제다.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이 암 치료의 풍경을 180도 바꾸어놓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옛날 약’들 역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중요한 재료로 남아있다. 마치 첨단 정보사회에서도 물, 쌀, 휴지 같은 생필품들 없이는 살 수 없듯이, 아무리 부유한 환자여도 이 값싼 약들 없이는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이 5-FU가 국내 대부분의 병원에서 지난 12월 약 2주간 품절되었다는 사실은 주변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고 유야무야 지나갔다. 제조회사의 생산라인 설비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이 기본적인 약을 만들어 국내에 공급하는 회사가 200여개의 국내 제약사 중 단 한 곳 뿐이라 벌어진 일이다. 그나마도 품절기간이 길지 않아 다행이었고, 한 번 정도 주사가 연기되는 것은 치료에 큰 영향은 없다며 환자들을 간신히 달랠 수 있었다. 그러나 약사들에 의하면 이전부터도 수급이 간당간당하던 약이 품절 사태까지 맞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고 한다. 실제 12월 말부터 공급이 재개되기 시작한 5-FU는 평균적인 수요를 간신히 커버할 정도로만 각 병원에 할당되고 있어 언제 다시 품절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증 환자에 대한 필수의약품이 품절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8월에는 면역저하환자의 감염치료에 없어서는 안될 코트림 주사제의 생산중단 사태가 있었다. 페니실린, 나프실린 등 드물게 쓰이지만 없어선 안될 기본적인 항생제도 종종 수급이 어렵다. 제약회사로서는 신약개발이라는 미래 먹거리에 투자해야지 이런 오래 된 값싼 약을 생산하는 부가가치 낮은 일에 자원을 투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되고 정부의 개입과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당연히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2000년대부터 의약품 부족 사태가 종종 벌어지면서 향후 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나왔었고, 코로나19 판데믹 시기에 실제 항생제나 해열제가 부족해지면서 이 문제가 대중에게 좀더 알려지게 되었다. 해외 각국에서는 일찍이 의약품 부족에 대비하여 공급망을 강화하고 수급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경고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왔고, 우리나라 역시 식약처에서 필수의약품을 지정하여 이에 대한 수급모니터링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입장에서 쉽게 체감하는 해열제, 감기약의 부족은 자주 뉴스에 나오지만, 이런 중증환자의 필수의약품 부족은 좀처럼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니 수급문제 해결의 우선순위에선 자꾸 밀린다. 이번 5-FU 공급부족사태에서는 약사들이 다른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남은 약이 있는지 수소문하고 다녔고, 일부 환자들은 약이 남아있는 병원을 스스로 찾아 나서기도 했다. 마치 코로나19 초기의 마스크 대란같은 각자도생이 연상되었다면 과장일까.
우리나라는 원료의약품의 해외의존도가 11% 정도로 해외 주요국의 30%보다 낮아서 향후 의약품 부족 문제는 더욱 자주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최근 식약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의약품 부족과 관련된 보고와 공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의약품 부족, 특히 약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중증 환자의 필수의약품 부족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이해, 그리고 감시가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