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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Feb 10. 2024

이와이

2024.2. 전공의 파업을 앞두고 

“완전히 내가 실습대상이 되었다고요!” 

내시경검사실에서 병동에 막 도착한 환자가 소리지른다. ‘초짜의사’가 자신의 위 안을 헤집었다는 것이다.

“그거, 뺐다가 또 집어넣고! 잘 안보인다면서 계속 휘젓고! 중간에 내시경 잡은 의사가 바뀐 다음부터 그랬다고!” 

모니터에 뜬 내시경 영상과 판독을 보아도 문제가 있던 것 같지는 않아서 내시경실에 연락을 해보았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중간에 3년차 전공의가 내시경을 잡았으며,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옆에서 같이 봐주었다고 한다. 

“그게 이와이였대요?” 

“그건 아니래요. 전에 몇번 해보셨다고.” 

수련 중인 의사가 수술이나 시술을 처음으로 해보는 것을 병원에서는 ‘축하’라는 의미의 일본어를 딴 은어로 “이와이”라고 부른다. 의사로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므로 축하받을 일이지만 환자에게는 마치 괴담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소위 ‘명의’라고 부르는 의사들도 한 명도 빠짐없이 이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태어날 때부터 내시경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태어날 때부터 제왕절개수술, 간 이식수술, 심장판막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고, 처음이 없다면 의술은 후세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처음’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찌 이기적이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숙달된 전문가가 해도 합병증의 위험이 생길 수 있는 시술을 받는데 내 몸을 초심자에게 의탁하고 싶은 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와이를 안전하고 능숙하게, 마치 ‘경력같은 신입’처럼 할 수 있다면 그런 고민은 조금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안전한 이와이’를 위해 환자에게 실제 시술을 하기 전에 연습을 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장비들이 많이 보급되어 있다. 약도 사람에게 처음 쓰일 때는 조금씩 용량을 늘려서 최적용량을 정하고 수백, 수천의 환자들에게 사용해보고 비로소 시판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학은 언뜻 보면 완벽해보여도  수많은 시도와 착오의 산물이고, 오늘의 전공의처럼 ‘초짜’라며 비난받는 일도 종종 생기지만, 이런 시도가 없다면 발전도 없다. 

정치는 어떨까. 처음부터 완벽한 정치가도 정책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대통령 단임제이므로 모든 대통령직 수행은 ‘이와이’일 수밖에 없다. 다만 사람들은 내시경을 서투르게 하는 의사에게 내지르는 날선 고함을 대통령에게는 아껴둔다. 처음인 걸 모두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이 자리는 ‘시뮬레이션’이 필수다. 정책의 파장과 무게를 가늠하면서 최대한 많은 이들의 경험과 의견을 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이 들 때는 결단을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기존의 필수과 기피현상과 수도권 쏠림현상에 대한 믿을만한 대책 없이 기존 정원의 무려 65%를 한꺼번에 늘리는 2,000명 증원이라는 섣부른 결단은 당황스럽다. 마치 시뮬레이션 한 번 안해보고 중심정맥관 시술을 하다가, 넣어야 하는 경정맥이 아닌 경동맥에 쑤셔넣고야 마는 초짜의사라고나 할까. 설 연휴동안 쓰고 있는 이 글이 신문지면에 나올 때 쯤이면 나는 전공의들이 나간 병원에서 오랜만에 병동 당직을 서며 여러 시술을 해야 하는데, 근 십수년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이와이 아닌 이와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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