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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Mar 25. 2024

비정상의 정상화

https://www.seoul.co.kr/news/editOpinion/opinion/medicine-ksy/2024/03/29/20240329026001?wlog_tag3=naver


교수들만 병원에 남아 병동을 지켜온 지 어언 4주가 지났다. 젊은 전공의들을 갈아넣어 유지되어 왔던 병동에는 적막이 감돈다. 전공의 1명이 당직을 서며 보던 환자는 100명이 넘었지만 교수 한 명은 약 30명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입원환자 진료를 직접 챙기는 것은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체력이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 7일 근무에 3-4일에 한번 야간 당직을 서니 늘 머릿속이 멍하다.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외래진료는 더 꼼꼼히 예습을 해둔다. 그러다보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논문, 학회 등은 모두 제쳐놓은 지 오래다. 

오랜만에 입원환자의 오더를 내고 상처 드레싱부터 수액 주입 속도, 혈압약 한 알까지 신경을 쓰다 보니 그동안의 나의 진료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입원환자에게 투여되는 약과 주사가 모두 정말 필요한 것이 적절한 용량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하나하나 따지다보니, 그동안 얼마나 환자를 대충 보아왔는지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회진은 돌았지만 많은 것은 전공의 선생님들의 재량에 맡겨놓고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환자 제대로 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수의 환자를 ‘처리’하는 법을 배워오고 있었다. 너무나 바쁜 그들을 옆에 앉혀놓고 오더 하나하나를 꼼꼼히 봐줄 시간은 나도 없고 그들도 없었다. 이러한 비정상의 상황을 계속 견디는 것을 정상으로 여기면서 살아온 잘못은 나와 같은 기성세대에게 있다. 

그동안 입원을 너무 쉽게 시켜왔음도 역시 깨닫게 된다. 지역병원에서 치료받아도 되는 환자도 되돌려보내는 실랑이를 하느니 그냥 입원시키는 것이 편했다. 또한 외래진료보다는 입원진료의 실손보험보장 금액이 더 많기 때문에, 대다수의 환자들은 외래에서 가능한 치료도 입원을 해서 받고자 하는 도덕적 해이에 쉽게 노출된다. 의사는 그런 환자의 요청을 외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외래에서의 짧은 진료시간 동안 환자의 문제를 충분히 파악하고 대처하기 어렵다는 부담이 있다. 입원은 그런 환자와 의사의 필요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해결책이었으나, 결국 그 진료의 부담은 전공의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말기암 환자에게도 무리한 항암치료를 하고 연명의료에 대한 설명을 미처 하지 못해 중환자실까지 보내던 진료패턴도 점차 바뀌고 있다. 상황이 악화하면 어떤 의료적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대화는 대다수의 환자가 원치 않는다. 나빠진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싫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의사도 자꾸 피하게 된다. 결국 임종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환자의 고통과 이로 인한 가족들의 원망을 받아내는 역할 역시 전공의가 짊어져 왔다. 그러나 이 일의 어려움을 이제 본인들의 몸으로 때우며 알게 된 교수들은 서둘러 환자들에게 연명의료결정에 대해 설명하고자 애쓰고 있다. 


응급실은 이제 선진국 병원의 응급실과 비슷해졌다. 환자 수가 대폭 줄어들면서 모든 환자들이 독립된 공간에서 모니터링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응급처치 역시 이전보다 신속해졌다. 자리를 배정받지 못한 환자들과 보호자들로 엉켜있는 복도의 아수라장은 이제 보기 어렵다. 

힘들고 번거로운 일들을 받아내던 전공의들이 사라지니 병원에 많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꼭 필요한 환자들만 받고,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한 일들은 쳐내고, 환자에게 꼭 필요한 것만 하려는 변화. 문제는 이 변화가 지속가능하느냐는 것이다. 박리다매식 진료로 유지되던 병원들은 도산 위기에 처해있고, 임상연구와 개발은 정지상태다. 그러나 다시 젊은 의사들을 값싸게 연료로 소비하는 이전의 진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한치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돌아올 병원은 이전과는 다른 곳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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