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집> 김혜경, 2021 /제철소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한 사람의 취향을 통해 드러나는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재미있어서다. 잘 읽히고 부담도 없는데 의외로 깊은 이야기들이 살살 피어나는 것이 좋았다.
사실 그 중에서도 <아무튼, 술집>은 처음 접하는 책이었다. 사실 저자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시시알콜'은 이름만 들어봤을 뿐 직접 청취해본 적은 없다. 시에 대해서도 술에 대해서도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술을 못마시는 건 아닌데 누군가의 주정을 듣는 것은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그리고 응급실 근무경험이 있다면 소위 '술탱이'와 얽힌 트라우마와 불쾌한 기억은 다들 하나쯤은...)
술과 얽힌 방황과 에피소드라는 점에서는 <아무튼, 술>과 비슷한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술>은 사실 읽으면서 계속 취한 느낌이었어서 기억이 잘 안난다는 (그 술잔이 부딛치는 소리가 나는 상트페테르스부르크의 크루즈와 밤하늘의 별들과 바람이라는 근사한 풍경을 머릿 속에 남겨준 것 외에는) 문제가 있었고, 이 책은 특유의 왠지 모를 아련함과 동시에 유쾌함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술집의 메뉴와 분위기와 주인장의 각자 다른 개성과 사랑스러운 점들을 맛깔나게 풀어나간다는 점에서는 웹툰 <술꾼도시처녀들> 또는 권여선 작가의 <오늘 뭐 먹지?>와 닮아있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깔려있던 ‘아련함’은 아마도 처음 드러나는 작가의 가정사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을까 한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결핍을 채우고도 남을 푸근함을 술집에서 찾았다는 이야기. 아마도 ‘집’으로 상징되는 정상성을 가질 수 없거나, 견딜 수 없거나, 그것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데 대한 슬픔과 낯섦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며, 그 ‘집’에 대한 대안의 공간으로서 위안과 위로와 행복을 주는 술집에 탐닉하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술집에 가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면, 꼭 그래야만 한다면, 그건 집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마음 편하게 잠들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 익숙해지는 내가 끔찍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워킹맘의 자녀로 사느라 끼니가 급식 아니면 배달음식, 또는 반찬가게에서 사온 반찬인 우리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집밥’이란 기억이 있을 리 없는데 그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가 될까? ‘집’이라는 단어가 가진 정형성을 벗어나 더 확장되고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 책에서 보여준 만큼, 미래의 ‘집’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많을 것 같다.혹시 그들도 ‘집’을 ‘술집’에서 찾게 될까? 하지만 그때는 술의 보건사회적 폐해에 대해 너무나 관대한 우리 사회가 조금은 달라져 있기를 바란다. 술집 말고도 더 다양한 ‘집’을 마련할 수 있기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전수해준 여러 술집 리스트 중 구미가 당기는 몇 군데를 네이버 지도에 저장해두었다. 이제 술친구와 시간만 만들면 되는데 그게 더 어렵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