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사제를 부르짖던 정치인들도 big5로 향하는 밴드왜건을 탄다
"치료는 여차저차해서 이렇게 진행될거에요. 그런데 이 치료는 댁에서 가까운 OO병원에서 하셔도 같은 약으로 합니다. 국내 모든 병원, 아니 전 세계 병원에서 같은 약으로 치료해요. 전 세계적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 약의 조합이 가장 최선의 치료이거든요. 어디서 치료받아도 다를 것이 없어요."
"그래도 여기서 치료받고 싶은데요"
"네... 그런데 저희가 주사실에 자리가 별로 없어요. 환자분이 워낙 많아서요. 그래서 진료를 보러 오셔도 보통은 당일 주사까지 맞고 가시기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죠. 피검사하고 두시간, 진료가 지연되면 더 오래 기다려서 진료를 봐야 하거든요. 그런데도 바로 주사가 준비되는게 아니에요."
"그러면요?"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로 주사 일정이 잡힐거에요 그러면 주사 시간 맞춰서 다시 오셔야 하는 거죠. 이걸 한 달에 두번씩 주사맞을 때마다 반복하셔야 해요."
"지방에서 왔는데..."
"대부분 환자분들이 지방분이에요. 아무리 집이 멀어도 어느 분만 특별대우를 해드릴 순 없어요."
"......"
"그런데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하시면 이런 절차는 훨씬 단축될거에요. 진료 보고 바로 주사 맞고 가실 수 있을 거고, 환자분도 더 편안하실거구요. 입원도 더 잘될 거고 만일에 응급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치료도 더 빨리 받으실 수 있어요."
"그래도 여기서 할래요."
"네.... 그럼 할 수 없죠. 항암교육 받고 일정 잡고 가시면 됩니다. 나가시면 간호사님이 설명해주실거에요."
지방에서 오는 환자와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수술이나 시술은 한 번으로 끝나니 지방에서 온 환자도 크게 고민없이 결정할 수 있다. 두세 달에 한번 오는 일반적인 만성질환 관리도 환자가 오고싶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달에 한번 또는 두 번을 와야 하는 항암화학치료는 다르다. 온전히 삶을 붙잡혀 살아야 하는 치료다. 더 문제는 진행/전이암의 경우 언제 끝날 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중간에 부작용으로 인해 응급실에 와야 할 수도 있는데 그 때 치료받는 병원이 멀면 빠른 대처도 어렵다.
짧은 진료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이 걱정되어서 가능하면 가까운 병원에서 하시도록 유도를 하지만 웬만해선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 "다들 큰 병원에서 항암해야 한다던데"를 되뇌이며 망설이다가 결국 많은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하며 생기는 스트레스와 불만은 결국 언젠가는 터진다. 진료가 지연되어 예약해둔 차 시간을 놓치면 애꿎은 간호사에게 소리를 지르는 식이다.
병에 걸린 환자와 가족은 불안하다. 그래서 이성에 근거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한번 마음이 기울면 바꾸기가 어렵기도 하다. 의사와 병원의 선택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으니 무조건 큰 병원을 선호하게 되는 것도 뭐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큰 병원으로만 몰리면 지역의료는 점점 더 고사하고 정작 필요할 때 이용하기 어려워지는 것도 모두가 안다. 그래서 병원과 의사의 선택을 온전히 환자의 자유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원칙과 제한이 필요하지만, 이미 의사를 선택할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있는 이 나라에서 그것을 도로 거둬들이기란 쉽지 않다. 결국 지역의료가 지역민들에게 선택받고 의료 시장 (의료는 시장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유선택과 자유경쟁이 가능한 시장에 가깝다)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신뢰를 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일단 돈이 든다. 일단은 국가가 돈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론 돈만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화적 측면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다들 서울에 올라가 진료를 받으면 나만 안 하면 불안해진다. 부모를 한번쯤 서울에 모셔가서 진료를 받게 하는 상황에서 나만 지역의료기관에 부모를 맡겨놓으면 불효자식이 되는 것 같다. 소위 밴드왜건효과, 편승효과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의료시장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서비스의 디테일, 친절, 장비, 청결도, 이런 것들이 다 작용한다고 말이다. 일반인 입장에서 의료기관의 선택에 이런 것들이 다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의료의 본질, 즉 의사의 실력, 그리고 그에 따른 임상적 성과라는 측면에서 나는 지방의료, 적어도 내 영역인 종양내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의 수준을 낮게 보지 않는다. ('낮게 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송구스럽다 내가 뭐라고...) 그러므로 환자들에게 권유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테러 피습을 당한 모 정치인은 이런 밴드왜건효과를 더 강화시키는 선택을 했다. '더 잘하는' 의사를 찾아 서울의 병원으로 옮겨서 수술을 받은 것이다. 물론 생명의 위협을 당한 상황에서 이성적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널리 알려졌듯이 실제로 서울의 병원이 '더 잘하는' 병원이라 보기도 어려운데도 굳이 그런 선택을 한 유명인을 두고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더 이상 지역 병원에서 진료받으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와 이에 따른 백색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유명인의 선택이 가져올 파장은 가벼이 볼 수만은 없다.
만약 그가 부산의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고 회복하며 의료진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였다면 어땠을까. 지역 의료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이제까지 선거에서 쉽지 않은 지역이었던 부산에서의 지지도도 상승시킬 수 있는 효과도 낳았을지 모른다.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정책을 표를 벌기 위한 엉터리 정책이라며 비웃던 의사들도 좀 머쓱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치료기간에 많은 뉴스가 부산에서 생성되면서 취재진과 당직자들이 부산을 오갔을 것이고 여러 중요 인물들도 면회를 위해 부산을 방문하는 일이 잦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부산의 경제도 일시적으로나마 활성화시키고 부산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도 생겨났을 것이다. 수도권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부산이 대한민국 제 2의 도시라는 명성을 다시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어려운 상황이었겠지만 평소 그와 그 당이 지역의료는 물론이고 전반적인 국가의 수도권 편중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했다면 위중한 가운데에서도 할 수 있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 당장 다음주 나는 가까운 지역병원을 놔두고 서울에서 치료받고 싶다는 환자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