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Mar 13. 2024

입원진료의 거품을 줄이자

저희 과의 입원환자는 보통 200명에서 230명가량입니다. 웬만한 종합병원 하나 차릴 정도의 규모이죠. 병동 4개를 꽉 채우고도 대체로는 "엑스트라"라고 부르는 타 병동의 일부 병상까지 써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공의들이 사직할 때 무척 걱정이 많았습니다. 이 환자를 다 어찌할 것인지. 

그러나 2월 말까지 저희 과의 입원환자는 약 130여명 정도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입원을 시키면 교수 본인이 오더, 의무기록, 병상에서의 시술과 처치까지 도맡아 해야 하고 환자 상태 변화시 간호사의 보고까지 받아야 하다보니 자연히 본인의 업무를 줄이기 위해 입원을 덜 시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입원이 꼭 필요한 환자들은 입원시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항암제가 없는 말기환자분들은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전원하였고, 비교적 간단한 처치와 치료는 2차병원으로 전원하여 시행 후 회복되면 다시 외래로 오시게 하여 항암치료를 지속하였습니다. 입원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항암제치료는 외래 주사실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실손보험금을 타기 위한 입원항암치료를 차단하니, 생각보다 많은 병상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입원수요가 너무 부풀려져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제가 이전에 썼던 글 <입원 권하는 사회>와도 상통합니다.  https://brunch.co.kr/@cathykimmd/104  불필요한 입원이 너무 많은데, 이것으로 병원은 돈을 버니 병상을 점점 확대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전공의의 수는 점점 더 늘어왔고, 우리나라의 대형병원들은 전공의의 저임금노동에 기댈 수밖에 없는 기형적 구조가 되고 말았습니다. 

DALL-E 가 그려준 그림입니다. 썩 알맞진 않지만 입원진료의 어려움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그동안 실손보험에 대해서는 종종 쓴소리를 하면서도 실손보험혜택이 아니면 치료를 도저히 받을 수가 없다는 환자들의 읍소에 마음이 약해져 입원지시를 내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간단한 입원이라고 생각했던 이 일이 제가 직접 해보니 너무나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입원하자마자 오더를 넣고, 입원기록을 쓰고, CT 오더를 넣고 동의서를 제가 직접 받아야 하고, 검사를 예약하고, 전산예약이 잘 안잡히면 직접 연락을 해서 시간을 확보해야 하고, 기왕에 복용하던 약을 모두 검토하여 별도로 복용오더를 넣어주어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외래에서 가능한 일인데도 입원을 하면 훨씬 번거로워지고, 간호사나 간호조무원 등이 외래에서는 해주는 일도 입원을 하면 전공의선생님의 일이 됩니다. 전공의 선생님의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병원에선 이런 잡일을 해주는 인력을 별도로 고용할 필요가 없는 거죠. 

앞으로는 실손보험금 수령목적의 입원은 절대 시키지 않을 예정입니다. 환자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전공의 선생님들의 노동을 쉽고 값싸게 이용해온 것은 잘못입니다. 환자의 사정이 딱하더라도 치료비 부분은 도와드릴 수 있는 다른 방법 (건강보험공단의 재난적 의료비 지원 등)을 찾아보실 수 있도록 사회복지팀에 연계드릴 예정입니다. 또는 입원을 해야만 항암치료를 할 수 있는 좀더 작은 규모의 병원으로 전원을 가시도록 유도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그분들도 나름의 혜택을 보실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외래주사실에서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에서 본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굳이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겠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입니다. 


또다른 불필요한 입원은 말기암 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장기 입원입니다. 말기암 환자는 대체로 쇠약한 상태이고 가정에서 돌보기가 어려우니 입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당장의 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원은 종종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암의 진행을 조절하기 어려우니 계속 나빠지게 마련이고, 장기적인 입원을 해도 나아져서 퇴원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는 상급종합병원에서 과도한 치료와 처치를 받기보다는 호스피스병원에서 생애 말기의 존엄을 지키며 증상조절 치료를 받는 것이 환자분에게도 더 나은 선택입니다. 문제는 본인의 상태를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불안감이 심한 환자와 가족들이 상급종합병원 장기입원을 고집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경우엔 의사 본인이 이런 환자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지속하거나, 환자와 가족에 대한 설득을 포기하고 목적없는 입원을 지속하도록 방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환자들이 입원해있어서 당직 때마다 교수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평소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분들을 설득하여 호스피스로 안내하는 일을 저는 예전에는 매정하다고 여겼었습니다. 오랫동안 치료해온 환자를 버리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호스피스병원에 견학을 가본 이후에야 그것이 저의 알량한 생각일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기암 환자의 돌봄에 많은 경험을 가진 호스피스 의료진의 손길은 상급종합병원의 거대한 컨베이어식 시스템보다 환자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치료였습니다. 

무엇보다 상급종합병원이라는 자원은 특정환자나 특정교수의 것이 아니라 필요한 환자에게 제공될 있어야 하는 공공재이자, 무한하지 않은 유한한 자원입니다. 환자의 사정이 딱하거나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계속 이용할 있게 방치한다면 다른 딱한 사정의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번 의료대란은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그동안 입원진료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있었는지를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의 일들이 병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요. 응급실의 경증환자들이 줄어들어 응급실이 비로소 제 기능을 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절되지 않은 의료수요가 얼마나 우리 의료를 비효율적이고 과로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몰아왔는지를 예기치않은 기회를 통해 투명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로만 향하는 밴드왜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