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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ug 04. 2024

닥터쇼핑

같은 질환으로 여러 병원을 다니며 진료를 받는 것을 '닥터쇼핑'이라고 부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뿌리내린 건강이용행태라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이 왜 문제인지도 잘 모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주치의제도는 없고 의료전달체계는 유명무실하니 그런 건강행태가 자리잡힌 것도 무리가 아니고, 의료기관 이용자만 탓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가끔은 어이가 없을 때도 있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의사를 찾을 때까지 이곳저곳을 누비는 닥터쇼퍼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얼마전 한 노인이 외래에 찾아왔다. 몇 달 전에 전이암으로 진단받아 수술하기 어렵고 항암치료를 권고하였던 환자다. 기록을 보니  그동안 A 병원을 찾아가 기어이 수술을 받았으나, 재발한 상태다.


"어떻게 다시 오셨나요?"

"아  A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네 그건 기록 봐서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 항암치료 하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항암은 내가 할 생각이 없어요."

"네, 그러실 수 있죠. 그러면 저희 병원에 오셔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A 병원에서는 항암을 안하면 CT를 찍을 필요가 없다지 않소?"

"그렇죠. CT는 항암치료를 하고 효과를 판정하기 위해 찍는 거니까요."

"거기서  CT를 안찍어줘서 여기로 다시 왔는데요."


하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수술을 해주는 의사를 찾아 병원을 바꾸고,

이젠  본인이 원하는 대로  CT를 찍어주는 의사를 찾아 병원을 또 바꾼다.


"환자분, 저희는 환자가 원한다고  CT 찍어주는 병원이 아닙니다. A 병원으로 다시 가세요. 거기서 필요하면 CT를 찍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별다른 증상이 없고 항암도 하실 것이 아니면  CT를 찍을 필요는 없으세요."

"아니 병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니까..."

"CT는 환자분이 궁금하다고 찍는 것이 아니에요. 환자분께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하면 찍는 겁니다. 수술하신 병원에서 상의하시지요."

 

쌀쌀한 말을 듣고 노인은 바로 돌아서서 진료실을 나갔다. 막말이나 욕을 하고 나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물론 노인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항암치료로 고생하고 싶지는 않지만, 병의 상태를 파악하고 남은 기간의 계획을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본인의 뜻을 수술한 병원에서 밝히고 담당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옳았다. 내가 CT를 오더해주면, 병원을 바꾸면 본인이 원하는 대로  CT를 찍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관념을 강화시켜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환자는 의사가 시키는대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도 치료 결정에 참여할 수 있고, 본인이 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를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병원이나 의사를 바꿀 수도 있다. 내 외래에서는 전이암 진단을 받고 쓸 수 있는 약도 있지만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추적관찰만 하는 환자들도 있다. 단 그것은 환자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에 대해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그 결정의 장단점에 대해 상의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라뽀 (rapport)를 형성하지 않은 환자에게 그저 그가 원한다고 해서 CT 오더만 내주는 기계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환자가 원하는 검사 오더하기를 거부하는 특권은 대학병원, 그것도 big5 병원 의사니까 누릴 수 있는 것도 안다. 대부분의 병의원에서는 평판이 떨어질까봐 환자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닥터쇼핑은 의사들이 시장에 진열된 상품이니 가능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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