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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Oct 29. 2017

연명의료계획서를 쓰기 어려운 이유  

죽음에 대한 대화를 미리 나눌 수 있어야 

내년 2월 시행 예정이던 연명의료법에 대해서는 사실 그동안 병원에서도 몇몇 관심있는 의료진들만 아는 정도였습니다. 당장 병원에서는 관행적으로 말기환자에게서 (주로 가족에게서) DNR (Do Not Resuscitate) 동의를 얻고 환자가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임종을 맞이 하도록 도와왔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말하기 어려웠죠. 그런데 최근 시범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서 등록하는 분들이 생겼고, 연명의료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도 조금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인이라면 누구나 써서 등록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는 달리, 말기 및 임종기 환자가 쓸 수 있는 연명의료의향서는 등록하는 이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24/0200000000AKR20171024180300017.HTML


사실 이는 이미 예상되어 왔던 일입니다. 비교적 건강할 때에는 그래도 차분히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몸이 힘들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다가올 수록 이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게다가 많은 분들이 암 진단과 사망가능성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심적인 불안과 고통을 가중시켜 몸과 마음을 더욱 약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여 연로한 부모님이 암 진단을 받으면 자녀들이 부모님이 알지 못하도록 숨기는 경우가 실제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연명의료계획서는 반드시 본인만 작성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상의하여 DNR을 결정해왔던 의료관행으로는 법의 요건을 만족시킬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부모님에게 말기암에 대해 알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서는 이 법으로서 DNR결정에서 환자 본인은 정작 배제되어 왔던 관행이 바뀌기를 바라는 점도 있기는 합니다. 말기암 환자 본인에게 임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나, 해야 하는 것이죠. 자신의 삶이 끝나는 것을 알고 마무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가족들은 진실을 마주한 환자가 절망하는 상황을 두려워한 나머지, 환자에게 알리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상 환자가 위독하게 되면 어쩔 줄 몰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자신이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아는 환자와 모르는 환자 간에 불안이나 우울 정도는 의미있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 충격을 받더라도, 사람은 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법이고, 어쨌거나 겪어야 할 적응의 과정이라면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의 상태가 나을 때 겪는 것이 낫습니다. 암을 비롯한 말기 질환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악화되는 병이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면 점점 환자와 차분히 대화를 나눌 기회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편, 환자가 자신이 말기라는 상황을 알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연명의료계획서 양식을 한번 볼까요? 

연명의료계획서 법정서식 - 환자의 삶에 대한 고민이 부족합니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이런 것들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 법정양식이나 법 자체가 환자의 소망과 권리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지켜줄 것인지를 고민한다기보다는, 지나치게 연명의료 그 자체에 집중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과연 이런 연명의료가 환자의 당장의 관심과 삶의 고민에 닿아있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런 말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당장 덜 아프고 조금이라도 식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인데, 이런 바람과 연명의료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말기환자에게 연명의료에 대한 선택을 일일이 하도록 제시하는 것보다는 환자의 소망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전의향서 역시 연명의료계획서와 마찬가지로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사항 자체에 대한 내용만 들어있는, 매우 무미건조한 양식입니다. 그런데 사전의향서에 해당하는 advance directives 에 대해 설명하는 외국의 동영상들을 보면, 다짜고짜 연명의료 얘기를 먼저 꺼내지는 않습니다.  먼저 자신의 임종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자신의 소망에 대해 생각해보고, 가족들과 이야기해볼 것을 권유합니다. 자신의 소망대로 임종하려면 연명의료와 관련해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https://youtu.be/mPtu-FpY1Kw


환자나 가족에게 DNR 을 설명할 때 마치 목숨포기각서를 종용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저만의 경험일까요? 대부분의 의사들이 임종이 임박해서야 쫓기듯 DNR을 받습니다. 혼란스러워 하는 가족들을 불러내어 중환자실에서 기계에 의지하여 목숨만 부지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줄줄이 위협하듯 설명하고 DNR을 받아내는 의료관행이 환자와 가족의 존엄을 지켜왔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 시작되는 연명의료계획서 또한, 설명하는 대상이 가족에서 환자로 바뀌었을 뿐, 그래서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오히려 연명의료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들 뿐, 이러한 관행에서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환경에서 임종하기를 바라는지 미리 대화를 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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