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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Nov 18. 2017

희망과 현실사이

종양내과에서 진료를 받는 환자들의 상당수, 아마도 70% 정도는 전이암 환자들입니다. 소위 완화적 화학요법 (palliative chemotherapy)을 받는 분들입니다. 완화적 화학요법은 완치가 목표가 아니고 병을 조절하는 것, 진행을 늦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환자들에게 물어보면 아마 십중팔구는 완치를 목표로 치료를 받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기는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힘든 치료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목표가 더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겨우 몇 개월 더 살려고 이 부작용을 견뎌내는 것이 본인에게 용납이 안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환자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항암화학치료를 받고 있는 1,000여명 이상의 4기 폐암, 대장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의 약 70-80%는 치료로 완치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Weeks et al, New Eng J Med 2012;367:1616-25)  


<당신의 암이 완치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한 4기암 환자들의 비율. 대부분은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Weeks et al, NEJM 2012

아마 이들 중 대부분은 치료를 시작할 때 목표가 완치는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4기암 환자들의 생존기간은 치료의 발전과 함께 점점 연장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가운데 ‘의학이 발전하면서 나도 그 혜택을 입는다면 어떻게든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는, 즉 암이 진행하여 약제를 바꾸어야 한다던지, 아니면 더 이상 쓸 수 있는 치료가 없다던지, 그런 이야기를 전할 때면 늘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런 환자의 치료의 여정을 수없이 보아 온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이미 다 예고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일 것입니다. 이런 환자분이 그날 한나절의 외래진료 40-50명 중 4-5명만 되어도 그날의 진료는 하염없이 지연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마침 진료지연을 참기 어려운 분들이 있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그런 분들은 대개 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은 2-3기 환자들입니다...) 분위기가 한없이 나빠지죠. 복도에서는 누군가 한시간째 기다렸다고 소리지르고 있고, 안에서는 몇 달 안남았고 준비하셔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고...그런데 그런 슬픈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의사는 바깥이 시끄러워 집중을 할 수가 없고 제대로 된 상담을 못합니다.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나만은 5년 생존률 5% 이하라는 4기암의  데이터에서 예외일 것이다'라는 믿음을 어떻게 가질수 있는지 의아하겠지만, 절박한 이가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너무 강하면, 상태가 나빠질 때 치료가 잘못된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데에까지 이르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치료를 하는데 병이 나빠지냐’ ‘그동안 힘들게 한 것이 물거품이 되다니 너무 허탈하다’는 말씀을 들으면 사실 의료진으로서는 힘이 빠집니다. 그나마도 치료를 해서 여기까지 끌어 온 것인데, 환자가 치료로서 바라는 효과와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이죠. 스스로가 치료자로서 무력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억울한 감정까지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더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환자이니 뭐라 말을 못할 뿐이지요. 


종양내과외래는 이렇듯 생과 사가 갈리는 대화들이 도떼기시장같은 어지러운 곳에서 오가는 기묘한 곳입니다.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함부로 취급되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잠시 들다가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실수를 해서 환자들에게 더 심한 피해를 줄수 있다 싶어 다시 맘을 다잡습니다.

신약임상시험, 새로운 바이오마커, 면역치료, 정밀의학… 의학기술의 발전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사실 더 많은 이들에게는 희망고문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형종합병원의 종양내과에는 이런 희망을 가진 이들이 모여듭니다. 이들의 삶에 희망을 주면서도, 한편으론 희망에 오히려 압사당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일인데…. 현실은 참으로 아득하고 어렵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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