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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Dec 23. 2017

[번역]의료비 절감을 위한 전쟁

과잉진료가 문제인가, 아니면 과도한 단순화가 문제인가?

아래 글은 최근 가장 저명한 의학잡지 중 하나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실린 리사 로젠바움의 칼럼을 번역한 것입니다. 리사 로젠바움은 NEJM에 시론을 자주 싣는 고정 필진 중 하나이자 보스톤의 브리검 앤 우먼즈 병원의 심장내과 의사입니다. 최근 문재인케어가 화두가 되면서 의사들의 과잉진료를 향해 많은 비판이 있었는데요. 미국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의료비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더욱 더 강조되는 것 같고요. 그러나 그녀는 과잉진료가 단순히 의사들의 탐욕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행위량을 줄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전에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요인에 대해 저도 브런치에 글을 썼던 적이 있었는데요. https://brunch.co.kr/@cathykimmd/46  좀더 많은 자료에 기반하여 풍부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그녀의 칼럼을 여러 분들과 같이 읽고 싶어서 번역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번역해보니 의역을 상당수 했음에도 불구하고 좀 많이 어색하고 잘 읽히지 않네요.. 원문은 여기서 확인하시기를.. 의사를 대상으로 한 글이어서 일반인이 읽기엔 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만 해설을 모두 달기는 좀 힘들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nejm.org/doi/full/10.1056/NEJMms1713248


사람들은 저를  “적정성 선생님”(Ms. appropriate)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심장내과 펠로우로 있었을 때, 보건의료비용은 급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의료 자원의 부적절한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저의 경력을 바치기로 결심했죠.  저는 심장부하검사실(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혈관이 좁아져있는 경우, 평상시엔 증상이 없지만 운동이나 약물 등의 스트레스를 가하면 심전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를 이용하여 관상동맥질환을 진단하는 검사입니다. 관상동맥질환은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이죠-역자 주) 의 관리자로서  불필요한 테스트를 위해 의뢰되는 환자들을 첫번째 타겟으로 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증상이 없는데도 매년 정기적으로 심장부하검사를 하는 경우, 또는 백내장수술같은 시술 이전의 안전성 확인을 위해  의뢰되는 경우 등이죠. (이런 경우는 검사가 실제 심장질환 또는 사망을 예측하거나 줄인다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불필요한 검사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자는 그런 검사의뢰를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받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 역자 주) 그것은 의료자원의 낭비를 퇴치하기위한 저의 광범위한 노력의 시작이었습니다.  해결책은 일견 간단해 보였습니다. 불필요한 치료를 중단한다면,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겠죠.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채 저는 어떤 영상의학과 연구자에게 경력에 대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에게 시니컬하게, 이렇게 말했죠.  "당신은 자신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군요. 안그래요?"
사실, 저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준 경멸은, “의사가 과잉진료를 하는 일차적인 요인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저의 심증을 굳히는 데 기여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많은 의사들처럼 의료비 지출과 의료의 질 간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많은 연구결과들에 매료되었습니다. 상당수는 다트머스 의과대학에서 나온 연구들이었죠. 이러한 결과들은 검사를 덜 하고 약을 덜 쓰는 것이 더 좋은 의료이고, 더 쓰면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인식을 퍼뜨리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저렴한 의료가 좋은 의료”이라는 인식에 기초한 사회운동이 일어났고, 그 영향은 책, 교육, 집담회, Choosing Wisely (의료에서 불필요한 관행을 없애자는 의료 공급자 측 비영리단체의 캠페인입니다.  http://www.choosingwisely.org/)같은 캠페인 등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진료를 줄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의료적 낭비를 잡아내어 고치기 위한 열정은 근거 기반 의학의 복잡한 측면을 가리버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그 “낭비”의 정도, 원인, 그리고 해결방법에 대해서 너무도 단순화하게 서술하는 행태를 고착화시켰습니다.

다트머스 연구자들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의료비의 약 30%가 불필요한 진료에 사용되고 있다고 하며, 이는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트머스 연구의 한계점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질환의 중증도에 따른 보정이 충분히 되지 않았고, 지역적 가격 차이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았으며, 지역 편차가 의료의 과다이용 뿐만 아니라 과소 이용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메디케어의 지출 패턴이 다른 보험자들의 패턴과 유사할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최근 밝혀졌습니다.


반면, 의료지출이 증가하면 건강관련지표가 실제로 더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분석은 엄청난 교란변수를 고려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더 아픈 환자들을 치료할 때는 돈이 더 들게 마련이고, 상대적으로 건강한 이들이 더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더 효율적인 병원을 선택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강력한 근거가 되는 데이터는 MIT의 경제학자 그룹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구급차로 이송되는 환자들이 무작위배정과 비슷한 방식으로 병원에 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구급차 회사가 이송해야 할 환자를 돌아가면서 배정을 받게 되는데, 구급차 회사마다 선호하여 이송하는 병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유사 무작위화를 포함하는 모델을 설계하여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다양한 급성 질환으로 입원하는 환자에서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할 수록 입원후 1년째 사망률이 더 낮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의료비용과 사망률간의 상관관계는 주로 입원 당시 치료의 강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높은 의료비 지출이 사망률을 낮춘다고 해서, 그것에 낭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MIT 연구자들은 퇴원 후 진료와 관련해서는 상당한 낭비적 요소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줄이기 위한 정책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미묘한 부분들은 사실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치료가 만연하고, 너무 많은 약들이 우리를 더 병들고 가난하게 만들고 있으며, 연간 약 3만명이 과도한 치료로 사망하고 있다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너무나 견고하게 자리잡은 덕분입니다. 의료계의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진 사회에서는 이러한 과잉진료에 대한 비난들이 의료시스템 전반에 대한 환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절충안 없는 해결책- 과잉진료를 줄여 의료비를 낮추고 더 건강해지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  좀더 호소력이 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의료비를 덜 쓰는 것은 더 많은 것을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매년 약 4 백만 건의 불필요한 입원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에 따라, 16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응급실 내원 환자 중 외래 치료가 가능한 환자들을 식별하도록 관리하는 체계를 도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환자의 입원이 더 필요한지를 항상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적은 환자를 입원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위험 또한 감수해야 합니다.  최근의 한 분석에 따르면, 입원율이 가장 낮은 병원의 응급실에서 퇴원한 메디케어 수혜자는 입원율이 가장 높은 병원의 경우보다 1주일 이내에 사망 할 가능성이 3.4 배 높았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병의 중증도의 차이를 보정하여도 여전히 존재하였습니다. 실제로, 입원율이 낮은 병원은 높은 곳보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중증도가 낮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률은 더 높았던 것입니다.


과잉진단 (overdiagnosis)

과잉진단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에서는 ‘의료비를 덜 씀으로서 잃는 것도 있다’는 문제가 무시되기 쉽습니다. 과잉진단은 임상적으로 뚜렷하게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검사소견 등으로  진단을 하는 것인데, 암 선별검사의 위해성(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갑상선암의 과다진단이 그 극명한 예입니다-역자 주)이라던가, 질병의 진단기준이 지나치게 낮아서  결국 과잉치료로 이어지는 문제들이 그 해로운 예입니다. 예를 들어, 과잉진단을 비판하는 이들은  트로포닌 (troponin; 심장근육의 성분인 단백질 중 하나로, 심근경색시에 근육이 깨지면서 이 성분이 혈액에서 검출되기 때문에 이것을 혈액에서 정량하는 방법이 심근경색을 초기에 진단할 수 있는 검사법으로 개발되었습니다-역자 주) 테스트가 비 ST분절상승 심근경색을 과도하게 진단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하곤 합니다. 이는 심장내과의사들에게도 공감을 얻었는데, 이들은 종종 추가적인 심장검사 자체가 더 위험할 수도 있는 중증환자에서 트로포닌이 약간 상승되었다며 의뢰를 받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간의 이상을 발견하는 것이 불필요한 추가적인 검사와 치료로 이어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약간의 이상을 아예 발견하지 못하였을 때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장 적절한 진단적 접근방법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이런 이슈는 좀더 민감한 트로포닌검사방법을 도입하기 위해 시행된 한 연구에서 드러난 바 있습니다. 이 검사 방법을 검증하는 단계(validation phase)에서는, 이전 검사방법으로는 정상이었지만 새로운 검사법으로는 정상수치 이상이었던 결과들이 의사들에게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검사의 적용단계(implementation phase)에서는 새 검사법으로 이전보다 낮아진  정상범위를 넘어가는 값들은 모두 의사들에게 보고되었죠. 연구자들은 이 두  단계에서 각각 관동맥증후군이 의심되었던 환자들의 임상경과를 비교하였습니다. 적용단계에서 좀더 민감도가 높은 검사가 도입되자 심근경색의 진단률이 높아졌다는 (검증단계에 비해 29% 상승) 결과는 그리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검증단계에서 두 가지 검사방법에 의해 중간값을 보인 환자들, 즉 이전 검사에 의하면 정상이었으나 새 검사로는 비정상이었던 환자군의 경우, 트로포닌수치가 이전검사의 기준값보다 높아 치료를 받은 환자들보다 2-3배 정도 예후가 나빴습니다. 반면 적용단계에서는 그 차이가 사라졌죠. 검증단계에서는 이러한 중간값을 보인 환자들이 이중항혈소판제치료, 재관류치료 및 이차예방 치료를 적용단계에 비해 적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진단기준을 좀더 완화하는 것은 과잉진료가 아니라 오히려 더 좋은 치료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탐욕, 전문성, 그리고 절충 (Greed, expertise, and trade-off)

아마 가장 정확한 결론은 이것일 겁니다. 가끔은 검사나 치료를 덜 하는게 건강에 더 좋을 수도 있고, 또한 가끔은 더 하는게 더 좋을 수도 있는데, 그게 어떨 때인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덜 할 수록 좋다(less is more)”는 구호는 정책과 관련한 논의과정에서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 지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의료적인 낭비가 우리 눈에 보다 잘 띄기 때문이겠죠. 병원에서는 낭비적 요소가 분명히 어디에나 있습니다. 매일 칼슘 수치를 측정하는 것에서 허리 통증에 대해  MRI를 찍는 것까지 말입니다. 또한 검사가 정말 필요한가를 사려깊게 통찰하는 것보다 검사를 오더하는게 훨씬 쉬운 시스템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그 낭비적 요소를 안전하게, 근거에 기반한 지식을 바탕으로 제거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합니다.  


한 이론에 의하면, 의료비를 낭비하는 진료방식을 수정할 때 의료의 질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연간 7천만달러를 아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논의가 반영되어 등장한 것이 accountable care organizations (ACOs; 역주:  medicare 수혜자들에게 coordinated care를 제공하는 의료공급자집단으로 주로 인두제로 급여를 지급받는다), 그리고 의료의 질 기반 급여 (행위별 수가제에 따라 진료량만큼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의 질이 상승된 만큼 급여를 지급하는 체계)로의 전환입니다.  의료적 낭비는 “탐욕이 과잉진료를 부른다”고 종종 묘사되곤 하죠. 행위별수가체계가 진료량을 늘리는 인센티브가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불필요한 심혈관중재술을 하여 돈을 버는 심장내과 및 흉부외과의사가 있고, 지금은 감옥에 있는 한 종양내과의사는 암이 없는 환자에게 항암제를 처방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비도덕적인 행위로 상당한 돈을 벌어들이는 의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계의 원칙에 의하면, 같은 상황에서 다른 이들보다  치료를 좀더 많이 하는 의사는 늘 있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런 의사들 사이의 차이를 단지 낭비로 간주한다면, 낭비를 저지르는 의사는 어떤 수가체계를 채택하더라도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진료량이 많다는 사실 자체를 하나로 퉁쳐서 과잉진료로 치부한다면, 진료의 양과 의료의 질 사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인자를 하나 놓치게 됩니다. 그것은 전문성입니다. 의료적 낭비를 안전하게 감소시키려면, 우리는 전문가와 사기꾼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환자를 많이 봐서 돈을 많이 버는 정형외과의사는 그냥 그녀가 가장 효율적으로 진료를 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녀의 치료방식은 마치 공장의 조립라인과 비슷하겠지만, 그녀의 환자들은 합병증도 적고 빨리 회복되지요.  (정형외과의사를 she로 표현하는 저자의 성평등의식이 돝보이는듯합니다 ㅎ 저자도 여성이지만....번역자의 사족) 한 흉부외과의사가 매년 승모판을 수백개씩 갈아치운다면 당연히 많은 합병증이 생길 수 있겠고, 마치 악덕업자가 수술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가 기술이 매우 뛰어나서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가 그에게 의뢰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행위량을 늘려서 돈을 많이 벌어들인다는 것이 불필요한 진료를 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가 효율적이고 일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어떤 의사들은 경험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과잉진료를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어떤 심장내과의사가 흉통으로 온 모든 환자를 관상동맥조영술을 받도록 의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ACO에서는 과잉진료가 패널티를 받기 때문에, 이런 의사에게는 아마  ACO 매니저가 관상동맥조영술 의뢰를 줄이도록 권고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정말 불필요한 의뢰를 줄일지, 아니면 정말 필요한 의뢰를 줄일지 알 수 있을까요? 만약 그가 관상동맥조영술 의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정말 위험한 환자들을 놓칠 우려도 있습니다. 의사들에게 적절한 의료이용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의료적 낭비를 줄이려는 많은 노력들- 가치 기반 급여로의 개혁,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의식한 진료를 장려하는 것-이 실제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의료적 낭비의 해로움은 매우 분명하고,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요인은 우리 주변에 매우 만연하기 때문에, 아마도 이를 줄이기 위한 근거기반의 접근방법을 마련하는 것은 마치 자유낙하에 비교한 낙하산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한 무작위배정 임상시험을 요구하는 것 마냥 의미없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낭비를 막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면에 어떤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낭비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있으며, 그 원인은 당연히 의사들이라고 보는 것이죠.  “오늘날의 보건의료에서 가장 비싼 기술은 의사의 펜이다”라는 경구는 의사의 영리추구와 행위별수가제가 의료비를 상승시키는 요인이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합니다. 의사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까요? 징징대거나 방어적으로 들리지 않으면서, 신뢰를 얻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금전적인 인센티브가 과잉진료를 유발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결정적인 요인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른 행동적 요인들은 과잉진료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의료의 불확실성, 진단을 놓치는 데 대한 걱정, 환자의 선호도, 의료소송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우리가 왜 불필요한 진료를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잉진료의 유발요인에 대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탐욕이 그 모든 요인에 앞서 우선적이라고 미리 가정하면, 이 논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었죠. 과잉진료를 비판하면서 저 스스로를  돈을 버는 의사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느끼게 해주었고,  그러한 저 스스로가 과잉진료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의 일부라고 여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탐욕을 이 모든 상황의 원인으로 전가하게 되면, 사람들은 증가하는 의료비용의 상당수가 의사들 때문이라고 비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결국 의사의 행동을 형성하는 다른 요인들은 배제된 채  너무나 단순한 해결책만이 제시되면서  (의사들의 탐욕만 억제시키면 되는 것!) 의사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과도한 단순화 (oversimplification)

우리가 세상의 일들을 설명하는 방식은 우리가 아는 것이 매우 적을 때 가장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인지적 착오에 대한 전문가인 다니엘 케인맨에 따르면, 어떤 이야기의 정확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근거의 타당성 및 수준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얼마나 일관된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퍼즐에 맞는 조각들이 적을 때 일관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더 쉽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과잉진료를 줄여서 의료의 질을 높이자는 이야기의 설득력은, 일부분은 그 이야기의 과도한 단순함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최근  아틀랜틱 지의 한 기사는 “근거는 no라고 말할 때 의사들은 yes라고 한다”는 제목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불필요한 치료가 만연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기사에서는 관상동맥질환을 앓는 두 남자가 등장합니다. 고혈압이 있는 중년 남자는 새롭게 발생한 운동시 흉통으로 내원하였고, 진단적 관상동맥조영술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관상동맥 CT검사를 받죠. CT에서는 관상동맥이 부분적으로 죽상반에 의해 막혀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 그는 그 이후 단계인 관상동맥조영술을 또다시 거부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물치료만으로 증상 재발없이 잘 지내게 됩니다.지나고 보면 보존적치료만 하는 것이 명백히 옳은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반면 병력이 좀더 복잡했던 또다른 남자는 스텐트 시술을 받았고 (그렇게 결정하게 된 구체적인 과정은 생략되었고, 기사에서는 스텐트가 불필요한 시술이었다고 믿게끔 서술되어 있습니다),  스텐트 시술 이후 그는 스텐트 내 협착을 예방하기 위해 이중항혈소판제 (dual antiplatelet)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때문에 예정되어 있던 폐이식이 연기되었고 (항혈소판제를 두 가지를 쓰는 치료는 출혈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수술을 하기가 어렵습니다-역자 주) 결국 이식을 대기하다가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기사에서 코멘트를 하는 전문가는 한 심장내과의사인데, 그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비용만 증가시키는 의료”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단체인 Right Care Alliance 소속입니다. 그는 “심장마비가 있지 않은 한은 스텐트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며 매년  수만 건의 불필요한 스텐트 시술이 남용되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기자는 “어떻게 근거없는 시술이 그렇게 일반적으로 행해질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죠.

과잉진료에 대한 비판은 이렇게 교묘하게 단순화된 이야기를 통해 중요한 세부적인 사항을 생략한 채로 지속되어 왔습니다. 안정적인 관상동맥질환에 대해 스텐트 등의 경피적 관동맥 시술 (PCI)을 과다하게 시행하는 것은 분명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최근 5년간의 등록연구데이터에 의하면, 안정적인 환자에서 시행하는 비응급 PCI의 건수는 약 ⅓ 가량 줄어들었고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시술의 비중 또한 26.2%에서 13.3%로 감소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전에 비해 진보하였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여전히 PCI가 과다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이 결과로부터 볼 수 있는 또다른 엄연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위의 기사에서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상당수의  비응급상황에서 스텐트 시술은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조각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PCI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임상적 요인들을 고려하게 됩니다.  좁아진 혈관이 여러개이거나, 허혈심근의 범위가 큰 고위험환자에서는 과연 심장마비가 일어날때 까지 기다렸다가  PCI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미리 하는 것이 좋은지 아직 불확실합니다. 때로는 안정적인 상황에서 미리 시술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약물치료에 반응이 적거나 약물치료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환자 등을 적절히 선택해서 스텐트를 미리 한다면 증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들은 “덜 할수록 좋다”는 주장과 배치되지만, 복잡하고도 엄연한 진실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바이어스는 대중에게는 익숙하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제약회사가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 제약회사가 주도한 임상시험은 이윤추구의 관점에서 해석된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과도한 의료화를 비판하는 저널에 치료의 위해성에 대한 논문이 게재될 때, 또는 과잉진료를 줄이는 것에 관심이 있는 의사가 의료적 중재를 중단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것이 인용될 때, 이와 관련된 바이어스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최근 출판된  ORBITA 연구에 대한 보도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바이어스의 영향이 증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ORBITA 연구는 3개의 관상동맥 중 한 혈관만 협착이 있는 있는 저위험 환자에서 PCI가 가짜시술(sham intervention)과 비교하여 임상적인 이득을 보이지 못했음을 보인 바 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한 기사에서는 이를 두고 “흉통을 완화하기 위해 수만명의 환자에서 시행되는 시술이 상당수에서는 불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였으며, 아틀랜틱 지의 기사에서는 “막힌 혈관을 뚫기 위한 스텐트 시술이 비응급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현재까지이 의학이 준 가장 큰 실망 중 하나가 될것이다”라고 보도하였지요.


아마도 더 큰 실망은, 일반적으로는 잘못된 정보가 지속적으로 유포되는 것을 비난하였을 사람들이 도리어 이 연구의 의미를 과장하기 위해 달려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연구는 안정적인 저위험협심증 환자에서 일차적인 치료는 약물치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고, 이런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sham control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의 결과에 근거하여 안정성 협심증환자에서 PCI가 ‘“불필요하다”고 결론짓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재발 또는 치료불응성의 고위험 림프종 환자가 CAR-T 치료로 효과를 얻었다는 결과에 근거하여 모든 새로 진단된 림프종 환자가 CAR-T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과도한 일반화입니다. 임상적인 이득을 과장하는 것이 이윤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간주되어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치료나 검사를 덜 하는 것의 가치를 과장하는 것은 훨씬 쉽게 용인됩니다. 우리는 안해도 되는 의료행위를 줄임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는 의학의 기본적 명제에 늘 도전해야 합니다.그러나 “덜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구호는 바람직한 의료시스템과 개별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서로 상충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가치에 대한 착각 (illusions of value)

덜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는 최근 폐색전증 진단에 있어서의 CT의 효율성을 평가한 경제학 연구에서 잘 드러납니다. 비효율이 CT의 과다 이용과 동의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건강정책담론과 choosing wisely 같은 캠페인에서는 검사이용자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효율을 최적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일까요? 폐색전증CT의 경우에는 아마 아닐겁니다. 위 연구의 저자들은 경제학적 모델을 적용해서 의사들이 CT를 과다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건강에 더 큰 위협이 되는 문제들은 고위험군 환자에서 폐색전을 제대로 진단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보건의료의 비효율을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그 비효율을 정확히 정의해야 한다는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지 못한 의료비가  과다이용되는 비용보다 더 큽니다”.

그러한 모델링이 풀 수 없는 것은, 보건의료를 어떨게 평가하느냐 하는 철학적인 문제입니다. 효율에 기반하여 평가하느냐 ‘가치’에 기반하여 평가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 ‘가치’는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영상검사의 효율성을 정의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간단하지만, 보건의료에서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존률, 입원기간, 재입원율, 요로감염률 등을 줄이는 것은 중요한 효율성 지표들이고 병원, 보험과 보건의료관련 당국에서도 측정하는 지표들입니다. 그러나 심부전을 앓고 있는, 홀로 사는 늙은 남자가 딸이 예정된 퇴원일에 환자를 데려올 시간을 내지 못하여 하룻밤을 더 입원할 수 있도록 청할 때, 그의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요? 다음날 그가 열이 나서 검사해본 결과 요로감염이 진단되어 2일을 더 입원해있게되고, 다음달 심부전때문에 다시 입원하게 되면, 그래서 가까운 시일 내에 동일상병으로 인한 재입원으로 인해 진료비 삭감을 당하게 된다면, 이 환자에 대해 제공한 진료의 가치는 낮은 것일까요? “적게 할 수록 좋다”는 모토에 기반한 모든 정책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 가치가 무엇인지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측정할 수 있으며, 그것이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어떤 의료적 중재의 효과이던지 다른 여러가지 요인과 분리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몇년 전 저는 원인불명의 이상한 질병을 앓았는데, 결국은 소염진통제 알레르기로 판단되었던 병이었습니다. 진단 이전에 저는 여러 전문가의 진료를 받았고, 염증성 대장질환이 후보 진단명 중 하나였습니다. 저를 진료한 의사 중 한 명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대장내시경을 권하였으나 저는 수 개월동안 이를 거부했었습니다. 저는 그 검사를 피함으로서 얻는 이득이 불확실한 진단을 놓치는 작은 위험보다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죠. 놀랍게도 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제가 의사일 때보다 환자일 때가 훨씬 더 편했습니다. 저에게 대장내시경을 권했던 의사는 진단을 놓쳤을 때 본인이 견디지를 못할 것 같다고 말했었거든요. 결국 저는 그녀에게 굴복하여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검사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담당의사가 저보다 훨씬 더 안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능성(possibility)은 개연성(probability)과 같지 않지만, 당신이 다른 이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을 때 그 구분은 종종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확률이 낮은 진단이어도 확인하지 못했을 때의 불안감과 걱정이 크기 때문에 의사는 검사를 권하게 되고, 이것이 꼭 이윤추구가 동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 역자 주)  


의료적 낭비를 줄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낭비를 효과적으로 줄이려면, 경제적인 탐욕 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더 많은 검사를 해서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역자 주) 탐욕과도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진료와 관련해서 필수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는 불확실성의 불편함을 잘 다룰 수 있게 될 때 까지는, “덜 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경구는 의사와 환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복잡한 상황에서의 결정에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시킨 그럴 듯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나 어울리는 구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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