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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ug 15. 2017

'과잉진료'와 저신뢰사회, 그리고 문재인케어

믿음이 부족하니 비용으로 때우는 사회, 어디까지 보전이 가능할지  

50대 여자분인 A 씨는 말기암환자입니다. 간 전이가 퍼져서 황달이 왔고, 그 후유증으로 복수가 찼습니다. 2주 전에 한번 열이 나서 응급실에 왔었고 그때 CT를 찍었습니다. 열은 간 전이 진행으로 인한 발열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때 병실이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었고, 지난 금요일 저의 외래를 방문했습니다.

배가 빵빵했고, 복수가 찼습니다. 이로 인한 호흡곤란이 있었고, 간 전이로 인한 통증도 있었습니다. 환자분에게는 더 이상 항암치료가 어려움을 말씀드리고 다시 응급실에 가서 진통제를 맞고 복수도 뽑은 후 병실이 나면 입원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토요일 아침 전공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CT를 또 찍었다고 합니다. 복수가 가득 찬 것은 신체검진으로도 알 수 있는 소견인데 왜 찍었는지 물었습니다. 2주전과 비교하여 복부팽만이 악화하였고, 상태가 변화하였기에 찍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복부팽만의 원인을 감별하기 위한 응급실의 관행이었을 것입니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가 내원하였을 때 흔히 하게 되는, '일단 하고 보는' 검사이기도 하고요.

복수는 아직 뽑지 않았다고 합니다.혈액응고수치가 기준 이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간기능이 좋지 않은 환자라면 혈액응고가 정상일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면서 한편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만약 만에 하나 출혈 등의 합병증이 생긴다면, 혈액응고수치가 기준 이하였을 때 복수천자를 한 책임을 추궁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혈액응고수치를 정상으로 맞추기 위해 환자는 혈장수혈을 받았습니다. 혈장수혈을 하여도 간기능이 나쁜 환자는 좀처럼 잘 수치가 오르지는 않습니다. 결국 환자는 복수가 더 증가할 수도 있는 혈장수혈을 받았으나 정작 수치가 오르지 않아 정작 복수는 빼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료에는 수많은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어차피 그것을 모두 다 100% 차단하지는 못합니다. 불확실성을 차단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 노력들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느냐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불필요한 검사는 금전적 낭비일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의료진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전자가 더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상당수의 의료과실과 관련된 소송이나 언론보도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환자를 위한 위험과 이득을 따졌느냐' 보다는 '어떤 검사나 처치를 했느냐 안했느냐'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시 있을 수 있는 복부팽만의 다른 원인을 감별하기 위한 CT를 오더하고, 혹시 있을 수 있는 복수천자로 인한 출혈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수혈을 합니다. 이제는 관행이 되어버린 이러한 절차들을 이제는 의사들 자신도 필요하고 옳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교수님들이나 선배 의사들에게 이런 불필요한 검사들을 왜 했냐, 환자에게 도움이 될 지 생각해보았냐고 하는 나무람을 흔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의업에 종사한 십오년 남짓한 세월동안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쓸데없는 검사를 많이 했다고 나무라는 것은 한가한 꼰대나 하는 짓이 되어버렸습니다. 전공의 선생님들에게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당신이 나를 보호해줄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원망어린 눈빛이 느껴집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고 각자도생이 살 길이라는 신념이 뿌리깊게 박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회적 난맥상은  의료시스템에도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자를 제대로 살피고 위험과 이득을 고려하여 검사와 처치를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저수가 의료체계에서, 제대로 진료하지 않았다는 법적 윤리적 비난을 피할 방법은 소위 '과잉진료'요 '방어진료'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의료비용은 점점 늘어만 가겠죠. 

이른바 "문재인케어"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네요. 비급여를 없애는 정책을 뒷받침할 재정적 대안에 대한 각종 갑론을박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의사들이 문재인케어 반대하는 것을 보니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의사를 얼마나 못믿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지요. 

대다수의 의사들이 걱정하는 것은 비급여의 급여화를 위한 대안을 정부가 이제껏 늘 해왔던 손쉬운 방법을 통해 마련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소위 '과잉진료'를 억제하기 위해 더 강력한 급여청구삭감, 또는 의사들에 대해 쉽게 들이댈 수 있는 사회적 도덕적 비난을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잉진료라는 것은 흔히 상상하듯이 과도한 이윤추구나 악의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혹시나 이 검사를 안했을 때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됩니다. 시작은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던 환자안전법, 신해철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들은 그 본질과 무관하게 의료인들에게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의 시그널을 던져줄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뜬구름잡는 소리일런지 모르겠지만, 신뢰의 구축이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동네의사를 못믿기에 큰 병원에 가고, 지방병원을 못믿기에 서울로 오고, 서울의 큰 병원에서는 환자가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정부는 의사를 못믿기에 진료비를 제대로 주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비급여는 팽창하였고 진료량과 비용은 점점 늘어만 갑니다. 

신뢰를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네요. 믿으라고 해서 믿어지는게 아니니까요. 작은 규모의 정책부터 기대했던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간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급여확대, 메르스, 환자안전 등의 정책에서 느껴졌던, '생색은 정부가 내고 짐은 의료계가 진다' 는 느낌, 안받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책임은 정부가 지는구나, 믿을 수 있구나'라는 느낌 가지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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