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상담수가가 없거나 낮은 우리나라에선 불가능
대개 값이 싸면 그만큼 질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의료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보게 된 논문과 이에 대한 기사에서는 암 진료의 질이 올라가면 치료 비용도 더 줄어든다는 내용을 보도하였습니다. https://jamanetwork.com/journals/jamaoncology/fullarticle/2663285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질도 좋고 값도 쌀 수 있습니까? 논문에서 제시한 비결(?) 중의 하나는, 치료의 목표와 한계에 대해서 치료 시작단계에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면, 불필요한 치료나 검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권하는대로 치료하고 검사하는 건데 불필요한 것을 하는 건 과잉진료이며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필요한 것, 절대 불필요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색지대에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예를 들면.... 항암치료의 기간입니다.
3-4개월간의 항암치료를 받고 종양이 줄어든 환자에서 치료를 계속 해야 할까요, 중단해도 될까요. 암종마다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적절한 치료기간 (optimal duration of treatment)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대개는 삶의 질과 생존기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trade-off를 해야 합니다. 치료를 중단하면 삶의 질은 향상되지만 쉬는 동안 암이 조금씩 진행되는 것도 사실이어서, 생존기간은 조금 단축될 위험은 있습니다. 다시 진행할 때 약제를 재개하면 큰 차이는 나지 않지만, 수 개월 정도의 차이는 날 수 있습니다. 한편 치료를 지속하면 생존기간은 수 개월 늘어나지만 누적되는 부작용은 늘어납니다. 치료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고려해야 합니다. 치료를 안했다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쓸 수 있었던 시간일 수도 있겠죠. 결국 case by case로 결정할 수밖에 없고, 의사는 치료효과가 얼마나 좋았는지, 부작용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고려해서 결정하지만 환자의 성향도 은근히 많이 고려가 됩니다. 그럼 여기서 ‘성향’이란 무엇일까요.
“그동안 치료하면서 많이 좋아졌는데, 치료를 계속 하면 치료독성이 더 누적되어 힘들 수 있습니다. 대신 그 사이에 암이 진행할 가능성은 조금 있고요. 조금 -2-3개월 정도- 쉬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항암치료를 하면 암이 없어질 것이다, 완치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러한 비장한 각오로 치료에 임합니다. 그런 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동안 진행하면 어떡해요? 힘들어도 계속 해야죠…”
"더 좋아지려면 계속 해야 하지 않나요?"
또는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도대체 언제 암이 없어지나요?”
의사입장에선 답답합니다. ‘아니 완치는 안된다고 시작할 때 여러번 말씀드렸는데 왜 또….’
그러나 치료의 목표를 ‘결국 나빠지겠지만 당분간 진행을 막는 것’ ‘암의 진행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는 것, 그러나 치료로 인한 고통도 최대한 피하는 것’으로 설정한 분들의 대답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하고싶은 거 하고 먹고싶은 거 먹고 지내도 되겠죠?”
물론 안심만 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그동안 나빠져서 힘들어지면 어떡하죠?”
“그러면 전화로 진료를 당겨서 보시거나, 전문간호사에게 전화로 문의를 해주세요. 중간에 예기치못하게 나빠질 수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병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으니 갑자기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은 아주 높지는 않아요. 주의는 하셔야겠지만 너무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 읽은 책,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저, 메이 역, 봄날의 책)”에서 항암화학치료를 받은 경험을 서술한 사회학자인 저자는 ‘환자의 소진(burn out)’이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소진은 주로 의료진이나 돌봄제공자에 대해 쓰는 말인데, 반복되는 스트레스로 감정이 사라져버리는 상태를 주로 일컫습니다. 환자는 어떤 방식으로 소진되는 것일까요?
"아픈 사람들 또한 소진된다. 어떤 사람은 치료를 계속 받긴 하지만, 치료를 중단할지 말지 결정할 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계속 치료받는다. 치료를 중단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전히 신경쓰는 이들이다. 이 사람들은 되도록 자신이 선택한 상황 안에서 더 짧게 살고자 한다. 소진된 사람들은 아예 신경쓰지 않는다. 살아있긴 하지만 끝이 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계속 치료를 받는 것을 선택한 이들도 무척 간절한 바람이 있어서 그리 선택한 것이니 ‘소진’이라는 단어의 의미, 즉 무감각해진다는 것에 꼭 맞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 완치-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알면서도, 그것을 외면하기 위해 치료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 한편 안타깝기도 합니다. 진실을 대면해야 한다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는 반응이니, 어쩌면 무감각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꼭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질병의 상태에 따라 오히려 의사가 계속 하는 것을 권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환자가 계속 하고 싶어도 부작용이 크면 의사가 말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치료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치료를 받고 있는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쉬고 싶다면 언제든지 상의하고, 그러나 항암치료로 언제나 내 몸이 암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결정한다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끝없이 치료를 받다가 병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다가 사망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질 좋고 값싼 의료의 의미입니다.
다시 의료의 질과 가격으로 돌아와서… 그런데 저 얘기는 미국얘기입니다. 사실 우리 현실에서 저 제목은 거짓에 가깝습니다. 값싼 건 맞는데 의료기관이 유지되지 않아서 존재할 수 없는 서비스입니다. 상담에 대한 수가를 제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검사를 많이 하고 치료를 많이 해야 더 돈을 벌고 의료기관 경영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환자 개인에게 받는 돈은 많지 않은 저수가 체계이지만, 진료량을 늘려서 전체 비용을 늘려야 수익을 올릴 있는 고비용 구조입니다. 국가나 공단이 지출해야 할 의료비의 총 비용은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암 치료를 시작할 때, 그리고 치료 중 검사 결과를 놓고 중간 점검을 할 때 상담시간을 충분히 할애할 수 있도록 수가가 충분히 보상이 된다면, 수가는 올라가도 전체적인 비용은 낮아지고 반면 의료기관의 수익은 보장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 이런 글을 쓰느냐면… 요즘 유난히 진료시간을 많이 들인 환자들이 몇명 있어서요. 혼자서 10-20분씩 상담을 하면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은 지치고 너무 힘들고 이들의 짜증과 분노까지 다독여야 하는 간호사들은 괴로워합니다. 왜 나의 암은 완치될 수 없나요? 앞으로 치료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다른 방법은 없나요? 주로 이런 이야기들입니다. 많이 알수록 의문이 또 생기기 때문에 그 다음에 또 와서 그렇게 오래도록 상담을 할 것입니다. 그분들에겐 정말 필요한 대화였고 저도 이런 대화가 환자분에게나 저에게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일부 '말이 많은 환자분들' 만이 이런 서비스를 누릴 뿐입니다. 다른 환자들에게도 공정하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나 스스로 그리고 동료들 또한 스트레스와 소진에서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답답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