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글을 쓰려고 메모해두었던 주제인데, 오늘 우연히 눈에 띄어 한번 적어보려고 합니다. 늘 마주치는 일이니까요. 이것에 대해서는 사실 수년 전에 의료전문지에 칼럼을 게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단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짧은 진료시간으로 인한 소통과 불신의 문제를 이차의견 진료로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 주제였고요. 속으로는 웬만하면 옮기지는 않는게 환자에게도 좋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775
하지만 병원을 정말 옮겨야 할 때도 당연히 있습니다. 뭐 저도 한번 그랬고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니 다른 병원에 가보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자세한 내용은 https://brunch.co.kr/@cathykimmd/50)
일단 담당의사와의 관계가 깨졌다면. 또는 진료에 정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일단 내가 담당의사를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 계속 진료를 받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서로 힘들어요.
그냥 잘 안맞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뭔가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어긋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인데, 의사와 환자 사이에도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 외에도 다니다보니 교통편이나 여러가지로 불편해서 피치못하게 옮기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라면 가능하면 집에서 다니기 쉬운 곳으로 권유드려요. 짧게는 수 개월에서 보통 수 년을 2-3주마다 들락거려야 하는데, 길이 멀면 본인이나 가족이나 견뎌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치료 자체도 힘든데 오가는 비용과 시간때문에 더 힘을 빼면 손해겠죠.
아무튼 간단한 병이면 모르지만 암, 심장질환, 류마티스 같은 만성질환의 경우에는 웬만하면 옮기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이전에 치료받던 병원의 자료를 잘 챙겨가야 합니다.
특히 암질환의 경우에는 (특히 항암화학치료를 받고 있는 진행암의 경우) 챙겨야 할 것들이 아래와 같습니다.
1) 소견서를 꼭 받을 것: 담당의사의 소견서 없이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개는 종합병원들에서는 소견서를 요구하기는 하나, 워낙 병원들이 신환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니 소견서 없어도 진료접수를 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가 없어요. 환자의 병에 대해서 파악이 일단 안되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괜한 편견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가령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죠.
'이전 담당의사에게 소견서 써달라는 얘기도 할 새 없이 그냥 온 것인가? 성격이 급한 분인가? 분명히 가져오라고 원무과에서 얘기했을텐데...'
'담당의사와의 관계가 아주 안좋아서 소견서를 발급받기 위한 진료를 잡기도 싫었던 것인가?'
하지만 소견서를 받는 것은 환자의 권리입니다. 또한 소견서는 국경을 넘어갈 때 소지해야 할 여권과도 같은 존재이죠. 병원을 옮길 때는 어렵고 귀찮더라도 꼭 받아서 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른 병원으로 가는 환자들은 소견서를 꼭 써드리고, 좀 복잡한 병력을 갖고 있는 환자의 경우에는 어느 병원의 어느 선생님께 가시는지 여쭤보고 가능하면 그쪽 선생님께 이메일도 드립니다. 지난 주만 해도 지방과 서울지역에 골고루 메일을 세 통을 보냈네요. 다들 감사하다며 답장도 주셨습니다. 각 병원마다 전원의뢰시스템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사실 환자에게나 담당의사에게 서로 도움이 많이 됩니다. 돈이 안되어서 문제이지만.
2) 차트, 영상은 최근 것 위주로 조금만: 모든 것을 다 복사해왔다며 10-15cm 정도 되는 두께의 복사본을 가져오시면 정말 난감합니다. 그 동안 찍은 모든 영상을 다 복사해왔다면서 CD 4-5장에 나누어서 영상을 가져오시고 그걸 업로드가 다 안되어 진료시간이 늦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절대 다 못봅니다. 다 본들 진료에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의 상태이니까요. 최근 3개월 영상이면 족합니다. 필요하면 예전것도 가져오라고 할 것입니다. 그 때 가져오면 됩니다.
3) 조직검사결과지는 꼭 챙기자: 산더미같은 차트 복사본을 가져오시면서 정작 조직검사결과지를 안가져오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암질환은 조직학적 진단이 제일 중요하므로 이것 없이는 치료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떼어낸 조직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든 조직 표본 슬라이드도 대개는 챙겨가는 것이 좋습니다.
4) 챙길 필요 없는 것: 간호기록지, 혈액검사결과지, 처방내역은 대부분 안봅니다. 물론 파악에 도움은 되나 영상, 조직검사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일단은 다 볼 시간이 없습니다. 엄청 두꺼운 복사본을 가져오셨는데 죄다 이런 내용이면 맥이 빠집니다. 물론 대개의 경우 일부러 이렇게 해오는 건 아니라고 알고는 있습니다. 또한 사려깊은 의사라면 의무기록 중 무엇무엇을 복사해서 가라고 지정해줄 것입니다. 산더미같은 차트를 가져오시는 분을 볼 때마다 난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전 담당의사가 어지간히도 무심한 분이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소견서를 안가져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런 의심이 더해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동안 기록을 다 복사해달라고 해서 왔어요'라며 기록을 내미시는 분들도 있는데.... 아마 일부러 요구해서 다 복사해오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절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5) 이전 병원이나 의사를 흉보지 말기: 이전 병원에서는 제대로 설명을 안해줬다, (그러니 이 자료를 보고 나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해달라...)이런 문제가 있어서 믿을수가 없었다, 태도가 좋지 않았다, 등등 불만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내가 왜 옮겼는지 설명해야 하고, 속상한 것이 있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하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사는 이전 담당의사보다는 환자에 대해서 평가하게 됩니다. 물론 환자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그래요, 인정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재는 게 편입니다. 불만을 느끼는 환자의 입장보다는 항의를 받는 입장에 더 많이 서는 것이 의사입니다. 그 불만을 만들어낸 환경과 상황에 대한 이해를 더 잘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의사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전 병원 의사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는 환자를 보며 생각합니다. "이 분은 만약 여기서 진료받다가 다른 곳에 가게 되면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할 분이구나..."
그러니, 가급적 감정은 배제하고 내가 이러이러한 사유로 옮겼다, 라고 간단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좋고, 처음 만나는 의사에게 이런저런 정황을 설명하고 이해받고 공감받으려고 하시지는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은 그런 얘기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우선 첫 만남에서는 본인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