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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Mar 31. 2016

의사의 손길


얼마전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온 40대 여자분을  외래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소견서에는  2주전부터 신우신염을 의심하고 항생제를 쓰다가 호전이 안되어 추가 검사 중 발견되었다고 적혀  있었죠. 젊은 여성이 옆구리가 아프다고 하니 비교적 흔한 질환인 신우신염으로 생각하였을 것이고, 늑척추각압통도 간을 뒤덮은 종괴 때문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자의 등만 두드려보는 것이 아니라 눕혀서 복부진찰을 하고 신체의 모든 부분을 자세히 볼 시간이 있었다면, 늑골 아래로 단단히 만져지는 간비대를 발견하기는 어렵진 않았을 것입니다. 

2주 정도 진단이 늦어진 것이 환자의 운명을 바꾸진 않았겠죠.  처음엔 좀 당황스럽기는 했습니다. 어떻게 이걸 처음에 신우신염이라면서 치료를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랬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환자를 처음 만난 의사였다면 제대로 진단 과정을 밟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많은 환자를 보고 피곤한 와중에, 비교적 건강해보이는 젋은 여자분이 옆구리가 아프다면서 왔다면.... 그리고 그 뒤에도 많은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다면. 아프다는 데만 대충 두드려보고 제일 처음 생각나는 진단명으로 몰아가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아니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진단하는 것이 오히려 드문 일이죠. 


알파고, 아니 알파닥터라면 좀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선입견에 사로잡히기 쉬운 인간 의사보다 훨씬 냉철하고 논리적인 알고리즘을 통해 오진률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파닥터일까요, 아니면 환자를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일까요? 

몇 번을 보아도 감동에 젖게 되는, 스탠포드 대학병원의 감염내과의사이자 작가인 아브라함 베르기즈의 2011년 TED 강연 동영상이 있습니다. 제목은 “의사의 손길 (A doctor’s touch)”. 강연은 양측 유방암이 진행되어 말기 상황이 되고 저혈압과 쇼크 직전에 내원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심폐소생술 후 원인을 찾기 위한 CT 검사를 하면서 비로소 발견된 유방의 종괴는, 이전에 의사가 유방 진찰을 했었더라면 좀더 일찍 발견되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전에 받았던 몇 번의 건강검진에서 이는 발견되지 못했지요. 베르기즈는 이것이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의사의 신체검진, 그것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뒤지는 자세하고도 엄숙한 신체검진을 하는 경우가 점점 사라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형성되는 의식(ritual)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와 같은 이야기를 접할 때 ‘건강검진을 좀더 좋고 비싼 걸로 했으면 일찍 발견했을텐데’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험실적 검사와 각종 영상 검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나 큰 나머지, 신체검진은 환자에게나 의사에게나 마치 요식행위같이 여겨지고 있죠. 외래에서는 환자 한번 눕히는 것만으로도 5분은 훅 가기 때문에, 웬만하면 환자를 만지지 않고, 증상을 호소하는 부분만 간단히 진찰을 하게 됩니다. 입원환자의 차트에서도 역시 신체검진소견은 “특이소견없음”이라는 한마디로 대체되어 기록되기 일쑤죠.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고, 의료계에 인공지능의 영역확대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가기 시작한 지금이 베르기즈의 강연 동영상을 다시 봐야 할 적기인 것 같습니다.  강연의 첫머리에서 베르기즈는 자신이 러다이트(Luddite; 신기술 반대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의학기술의 발전이  우리 삶에 가져다줄 편리와 풍요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검진이라는 의식은 의업의 본질이자 의미로서 지속되어야 하며, 영상과 생체시료분석으로  몸 안을 분자적 수준까지 샅샅이 다 볼 수 있는 시대에 와서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신체검진은 환자를 위해 나의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의 다짐, 그리고 의사를 믿고 따르겠다는 환자의 약속, 그러한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의사들 역시 러다이트는 아닙니다. 어떤 언론기사에선 의사들이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것을 밥그릇을 잃을까봐 그런다며, 마치 러다이트처럼 취급하기도 하더군요. 실시간으로  스마트기기를 통해 환자의 심박수와 혈당을 모니터하고, 시간이 없어 못오는 고혈압 환자의 혈압 패턴을 모니터로 보고 약 용량을 조절해줄 수 있으면 의사도 편하고 좋겠지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놓치기 쉬운 진단명까지 충분히 빠른시간 안에 검토를 할 수 있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업데이트되는 최신지견을 모두 고려하여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다면 의료의 질은 한결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기본적인 신체검진을 하는 것이 시간낭비인 양 여겨지는 현실, 그 결과 전이암을 신우신염이라고 오진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은 이대로 외면한 채로 인공지능을 이용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시대로 그냥 가도 되는 걸까요? 



(청년의사 2016.3.26일자에 실린 칼럼을 약간 수정한 글입니다)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6032500007


https://www.ted.com/talks/abraham_verghese_a_doctor_s_touch?languag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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