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벽! 이태원? 핫도그!
엘에이에 와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루하루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록하는 것만큼 기억하기 쉬운것이 없기에 하나씩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브런치를 조금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 이곳의 와이파이 속도에 기겁을 하며, 일기 업로드가 늦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그래서 아침 시간을 일기를 쓰는 데 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 9시 정도에는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그 뒤에 여유로운 시간과 같이, 늦어도 12시 정도에는 어디라도 구경을 하러 간다. 그런데, 오늘은 각잡고 부엌식탁에 앉았다. 더 늦어지면 붙잡을 수 없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날 역시 그 전의 일기를 남기기 위한 것이지, 실제 일기를 10/19에 쓰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사람일 모를 일이다.-
인고의 사진 업로드를 견디고, 3시 정도가 되었다.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도 여기는 미국인데!!
반나절 정도의 시간으로 어디를 갔다올 수 있을까 고민했다. 원래는, 어제 같은 방을 썼던 하루만 묵었던 언니가 다른 일행과 그리피스 천문대를 갈 일정이라고 하셨었다. 그렇지만, 다시 본래의 숙소로 돌아가시고 연락을 나눠보니 그 일정이 취소됐다고 했다.
혼자서라도 갔다올까 했지만,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졌다. 우버비용을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크고,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타고 갔다오기엔 기본 2시간 왕복 4시간이간이 지금엔 넉넉하게 남아있지 않나고 생각했다.
'무리하지 말자!'
우선 조금 침착하기로 했다. 그리고 꽤 길게 하는 미국여행이었기에 갖고 갈 수 있었던 보다 차분한 마음을 활용하기로 한다.
'그리피스 천문대를 무리해서 갔다온다면,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급하게 돌아와야 한다'
생각을 마치고, 그러면 현실에 맞추면서 즐기면서 올 수 있는 새로운 곳이 어디있을까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언니오빠들이 말했던 멜로즈 거리가 떠올랐다.
그렇게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멜로즈 애비뉴를 찍고 버스를 탔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우선 나는 멜로즈 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멜로즈 힐을 치니까 지금 사는 곳에서 일직선으로 가는 버스로 직진으로 갈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타코벨'이었던 곳을 멜로즈 거리의 시그니쳐인줄 알고 갔었다. '무작정'이라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이 무슨 길거리 한복판에 내려줬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스스로 웃겼다.
알고보니 멜로즈 거리는 '멜로즈 로데오 거리'가 유명한 것이었다. 그곳은 지금까지 남북으로 왔다면 알고보니 동서로 또 갔어야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하루 관광할 수 있는 날이 날아가기 때문에, 대중교통은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우버를 타고 갔다.
그런데 더 충격인 것은 우버를 타고 갔음에도 길거리에 내려졌다는 것이다.
충격을 두 번을 받았다. 멜로즈 거리를 검색했을 땐 그것이 아니어는데...
그렇지만, 그 덕에 더 좋았던 것이 있다!
바로 '핑크 핫도그'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
멜로즈라는 거리에 대해서 정보가 없었는데, 핑크 벽과 핑크 핫도그가 유명하다는 것을 발견했었었다. 둘 다 어디에 있는지 감이 안와 살짝 마음을 떴었는데, 멜로즈 주요 거리까지 걸어가기로 하는 길에 있다고 하니 정말 좋았다.
'핑크 핫도그'집은 1939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현지인인지 외국인인지 모르겠지만 인기가 있어 줄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후보가 많고 옵션도 다양해 보였지만, 그중 가성비 좋아보이는 것으로 선택했다. 아마, 칠리 치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마치 아메리칸이 된 것 같이(실제 아메리칸이 길을 가면서 오히려 안 먹을 수 있지만) 핫도그 박스를 한 손으로 들고 길을 걸어가면서 먹었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면서, 핫도그가 진심으로 맛있어서 그냥 그 기분을 만끽하기로 했다. 길을 가면서 공격적인 거지(무서움을 주었으니, 예의는 갖추지 않겠다)도 있었지만 눈도 안 마주치고 걷는 법을 익히고 있다. 그 덕에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
어찌됐던 꽤 긴 거리였지만, 정말 맛있게 한도그를 음미하면서 길을 걸어 갈 수 있었다. 만약에 길 한복판에 또 우버에서 내려지지 않았다면, 이 핫도그를 못먹었을 것이다. 그것에 또 감사함을 느씬다. 진짜 맛있었고 또 의미도 있는 미국 첫 미국핫도그였기에 긴 걷기의 시간도 그 뒤부턴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멜로즈의 메인 거리로 들어왔다. 시간이 넉넉히 남아있지 않았기에 마음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거리를 감상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메인 거리에서 느꼈던 첫 감정은 '이태원 같다!'였다. 일단 옷가게가 많다. 그리고 키 낮은 상가가 즐비해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주로 찾아 올 것같은 핫한 느낌이었다. 또, 벽을 예쁘게 페인팅한 곳이 많아서 마치 성수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걸으면서 들어간 의상점에서는 선물로 사주고 싶은 혹은 내가 갖고 싶은 옷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흔하게 보지 못하는 라인이 들어나는 옷이나 과감히 드러내는 의상도 멋있었다. 그래서 더 이태원이 떠올랐던 것 같다. 자신의 개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젊은 분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로 느껴졌기에, 옷가게 안에서도 그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다 아메리칸 프랑스 영화제를 한다는 깃발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또 이 LA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열어 준 기회가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그때 거기를 가지 않았다면? 혹은 그냥 가만히 집에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한다.
드디어 핑크 월(wall)에 도착했다.
어떤 상가의 벽이었다. 실은 '멜로즈'하면 '핑크 벽'이 유명하기에 실제 갔을 때 왜 이것이 유명한지 의아하기는 했다.
건물의 벽 두 면 정도가 쨍한 핑크였다. 일행이 없이 왔기에 사진이 아쉽긴 했지만, 만약 일행과 괕이 왔다면 사진 하나는 예쁘게 나왔을 것 같다. 처음으로 일행이 있으면 어땠을까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래도 한국인들이 있어서 가족분께 사진을 부탁드려 전신샷을 찍을 수 있었다.
거리 이름의 시그니처이지만 별것이 없어서 아쉬우면서도,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이중적인 마음이 공존한다.
그래도 핑크벽 생각보단 예뻤다.
못 볼 줄 알았던 핑크 월까지 보니, 그래도 멜로즈 힐 거리 투어도 알차게 보내고 온 것 같았다. 하루가 그대로 가지 않고 조금이라도 관광을 하고 올 수 있었던 것이 시간을 허투로 쓰고 있지 않다고 느끼게 했었다.
물론 생각해보면, 30일 동안 계속 관광을 할 수는 없다. 오늘과 또 그 전 그 후 처럼 카페, 도서관 등을 다니며 하루를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넉넉하진 않다고 생각하기에 어쩌면 그래서 더 조급해진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리피스와 같은 계획을 강행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임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는 걸 또 생각해보고 같다.
벌써 지금은 LA에 온지 삼 주가 지났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은 언제나 느끼고 있다.
내일은 뭐 해야 할 까 고민이 된다. 남은 시간동안 조금이라도 더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더 깊게 숨 쉬자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25살 이기에, 어쩌면 지금까지 수고했자는 선물이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뇌물로 '시간'을 주고 싶다.
앞으로 남은 여행도 스스로를 믿기 때문에 잘 보내고, 의미있게 보내고 올 것을 믿는다. 아마 원하는 미국의 시간을 다 보내고 오지 않을 까 싶다. 예를들어, 영어라던가, 영화라던가, 생각이라던가, 건강이라던가....ㅎ
더 늦어지기 전에 미래에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