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것 하루만에 즐기기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는 다양한 활동이 있다. 그중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은 요가수업인 듯하다.
아침 10시가 되면 요가르 위해 마당인 공간으로 모인다. 거기서 강사님이 수강생을 데리고 바다로 같이 걸어간다. 걸어서 10분 정도의 바다가 이렇게 좋다.
그런데, 최근 해일이나 태풍을 예방하기 위해서 둑을 쌓아 놨다. 강사님 말씀은 원래는 바다뷰를 보면서 요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부분은 꽤 아쉽다.
그래도 하나씩 하나씩 쿰지락 요가 동작을 따라해봤다. 필라테스는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요가는 처음이다.
눈치코치껏 팔을 올리라는 것인지 내리라는 것인지 파악하고, 흘깃흘깃 옆 사람을 컨닝해보면서 수업에 참여했지만, 마지막에 다리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보라고 했을 때는 마치 내가 하나의 식물이 된 것 같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않았던 발과 몸과 땅의 일체감이었다. 그 경험이 좋아서, 앞선 요가 모든 시간이 좋아졌다. 물론 그 외에도 안쓰던 근육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주 금요일에 또 같이 갈 거냐고 오늘 체크아웃을 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날 다른 스케줄로 못가게 됐다. 그들에게는 간다고 했었는데,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가서 아쉽다.
요가를 끝내고 나서는 원래 서핑을 하려고 했다. 서핑 성지인 앞선 바다의 모습을 보니,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우선은 그냥 수영으로 노선을 바꿨다.
첫 째, 서핑보드와 서핑슈트를 빌릴 수 있는 곳이 달라 번거로웠고(숙소에서 빌릴 수 있는 것은 보드뿐이었다)
둘 째, 가격이 심상치 않았고, 대략 35달러
셋 째, 무엇보다 강의 없이 혼자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강의는 있었는데 혼자하면 70달러까지 올라갔다. 그룹 다른 사람이 신청한 게 있을 때 연락주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연락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연락 얘기를 해서 하는 얘기인데, 왜 이렇게 돌아받지 못하는 연락이 많나 모르겠다. 이것은 비단 이 서핑 강의나 어제의 마가리타 아주머니뿐만이 아니다. LA에서는 한인문호원의 영화 담당자뿐께서도 도울 인력으로 좋다고 한 뒤에도 전화나 메일로 몇번 주고 받았지만 최종적으로는 아무 연락없이 인연이 끊어졌다. LA한인 도서관에서 선생님으로 정을 줬던 알리와 피터도 결국 나의 메일에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런 낱장의 순간들이 연속되니 매우 속상하다. 인연이 거기까지임을 알면서도 앞으로는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잠깐의 여행과 연락으로 계속 된 인연을 기대한 내가 순진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조금 더 무언가 다른 노력을 해야 했을까, 아니면 자책도 상황탓도 그만하고, 그럴 운명이었다는 운명론을 믿어야 할까.
어찌됐던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하나 또 쓴 맛을 알아가는 것 같다.
다시, 샌디에고의 얘기로 넘어와야겠다.
서핑을 하지 않기로 한 나는, 수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은 이미 나는 옷 속에 수영복까지 입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수영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편안한 복장을 걸치고, 숙소에서 제공되는 거의 모든 것을 바리바리 싸고 나왔다. 요가매트, 비치타월 2개, 심지어 비치 발리볼까지 들고 나왔다.
지나가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수영할 것으로 기대를 가득 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웃기고 재밌었다. 그만큼 설레는 걸음걸이였다. 그날 날씨도 행복을 올리는 데 한 몫 했다.
수영을 하겠다고 초가을겨울에 샌달을 신고 왔다. 그래도 집에서 샌달을 챙겨온 게 얼마나 이번 여행의 바다 구경을 윤택하게 해줬는지 모른다.
수영을 하겠다고 하다보니 사진이 거의 없다. 수영복을 입고 찍을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그정도로 수영을 한다는 것 자체로 기대를 가득 가졌던 것 아니었을까.
숙소에서 가져온 비치 발리볼이 수영의 재미를 높이는 데 톡톡히 한 몫했다. 동실동실 떠 다니면서 개헤엄도 하고 배영도 하고 재밌었다. 원하는 곳까지 수영해 가려고 하는데, 이 도구가 안 도와주자, 저 멀리 보내고 갔다 오기도 했다. 생각보다 햇빛 속과 물 속에 있으면 따뜻했는데, 물 밖에 나와서 시간이 좀 지나자 좀 많이 추워졌다. 그럼에도 물에는 한 번 더 들어가야 한다고 꼬옥꼬옥 물에 들어갔다. 후회는 없었다. 해가 져가는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어서 물이 차가워져 갔지만, 그래도 물에 한 번 더 들어가 놀다가 나올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 앞으로 날이 더 추워져서 이게 스스로의 마지막 이번 바다수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미련없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원래 물놀이의 마지막은 뒷정리라고 했던가, 지친 몸과 물에 젖고 모래가 범벅된 수영복, 비치타울, 요가매트 등등을 챙기고 돌아오느라 애썼다. 그렇지만 빠짐없이 도구를 챙겼고, 개운하게 뜨거운 물로 씻고 나니, 그것도 충분히 해볼만한 뒷정리였다.
아, 돌아오는 길에 숙소 앞 곧 뉴포트 거리에서 파머스마켓을 하는 것을 봤다. LA에서 와는 사뭇다른 찐 7일장인 이 파머스마켓을 살짝 물에 젖은 수영복 차림(아래는 수건 두르고 있는)으로 구경하려니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게 무색하게 재밌게 그 거리를 통과했다.
한 번 스윽 다 스캔했으니, 이제 돌아와서 무엇을 먹을지만 고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파머스 마켓 투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은 우선 관광객들이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음식가게가 즐비해 있고, 그 뒤로 실제 거주민들이 거래할 것 같은 과일과 야채들이 놓여져 있는 곳이 펼쳐졌다.
이 야시장 같은 장에는 맛있는 음식이 참 많았는데, 식사류 뿐만 아니라 미국인의 힐링 베이커리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쿠키, 파이류 등등 눈을 현혹시키는 것이 많았다.
그 중 나의 선택은 맨처음엔 피자, 두번째엔 제일 줄이 긴 곳의 음식점이었다.
피자를 선택한 이유는 나름 간단한데, 7일레븐에서의 최악의 피자의 맛을 잊기 위함이었다. 라스베가스에서 먹은 최악의 편의점음식 이후로, '아, 미국 피자 원래 안 이렇 잖아!'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다시 덮기 위해, 피자를 선택했다. 생각보다 잘 한 선택같다. 물론 피자는 한국에서도 어디에서든지 먹을 수 있지만, 나는 미국 피자에 대한 안 좋은 인상보다는 맛있었던 기억을 가져가고 싶다.
두 번째는 이 야시장에서 가장 줄이 길어보이는 곳의 음식점이었다. 실은 이 시장에서는 다 맛있어 보였다. 그러다 보니 다코야끼를 파는 일식을 먹을까도 고민이 됐지만, 기왕 온 거 현지인들 혹은 이곳 서양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것은 바로 위의 사진과 같은 도시락이었다. 이곳은 하나의 플레이트 식으로 자신이 선택한 음식을 담는 구성이 많은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으나, 쌀이 있다는 것에 매우 반가웠다.
어제의 일기에서도 썼지만 요즘 쌀이 먹고 싶다. 점점 한국에 갈 날이 다가오니까 더 그런 경향이 보이는 듯 하다. 어찌됐든 이제 무엇을 먹겠다고 소통을 해야하는데 아니나 다를가 쉽지 않았다. 밥을 주는데, half and half를 알아듣지 못했었다. 뭐 그래도 나는 노란색 밥으로 다 먹고 싶었으니 상관 없었다. 그렇지만 다소 쪽팔림과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게 되는 점, 또 확실히 이렇게 줄이 긴 가게의 종업원이라면 우리나라라도 엄청 숙달된 조교가 매우 빨리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정도의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렇다고 못할 것도 아니니! 좀 더 힘을 내보기로 한다.
우리 숙소가 또 좋은 것은 공간이 많다. 그 중 이번에 선택한 곳은 현관에 뚫려있는 흔들 의자이다. 그네같이 생긴 것인데, 거기서 누가 먼저 먹고 있어서 나도 그곳으로 선택했다. 앞의 야시장의 뷰를 보면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뭔가 그렇게 테이크 아웃 음식을 사고 어디서 먹을지가 고민이었는데, 그런 고민 할 필요 없이 물과 음료(티)까지 제공이 되는 숙소에 묵고 있다니 이곳 정말 장사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요물딱진 자리를 잡았을까,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맛은 와, 정말 맛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먹었던 고기가 스파이시 절크 였던 것 같은데, 절크(철자가 기억나지 않는다) 뜻이 거의 크레이지급의 강조법이었던 것 같다. 진짜 매웠으니까. 근데 그게 너무너무 맛있었다. 매운것이 진심으로 먹고 싶었었는데, 진심으로 매웠어서 밥고 술술 넘어갔다. 요가 때 친해진 마크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눴는데, 이게 자메이카 음식이라고 한다. 가게 이름은 모르겠으나, 자메이카 음식을 먹은 것도 기분이 좋아진다.
요가, 수영, 파머스 마켓 같은 3가지의 굵직굵직한 것들이 있었던 오늘 하루였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사진은 찍지 않았던 하루. 사진보다는 몸과 미각으로 기억하는 하루가 될 것 같다.
샌디에고의 곳곳 현지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하루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