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의 내 모습을 사랑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스스로의 애정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한번쯤 생각해볼...

by purple

'님프 나르키소스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된다. 말 그대로, '빠지게' 된다.'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들을 한번 생각하게 된 시점이 있었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라는 넷플릭스 영화가 그 계기였다. 과거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정리하면서 쓴 편지들을 짓궂은 장난으로 전체 전송되면서 벌어지는 사랑얘기인데, 그러면서 다시 현재의 사랑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과거 스스로 사랑이라고 여겼던 인연들을 생각해보게된다. 그리고 지금의 긴 인연을 함께하고 있는 연인도 같이 생각해본다. 어떻게 달랐을까? 이전 짝사랑, 이전의 X... 그런데 결국 돌고 돌아 그때와 다른 나의 모습에서 차이점을 발견한다. 이것은 결과론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꽤 많은 생각이 든 부분이었다.


앞서 님프 나르키소스의 얘기를 꺼냈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을 고백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짝사랑했던 사람 중 나는 '나를 좋아해서' 누군가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서 좋아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나를 좋아해서 좋아했다는 뜻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나에게 거울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닥 로맨틱하지 않은 이 비유는 나르키소스의 연못과 같았다는 말이다. 나르시시스적인 나는 나의 빛남을 멋있다고 바라봐주는 저 상대를 좋아했다.


그 사람과 사귀고 싶은 것이 아닌데 계속 끌렸던 적이 있다. 전혀 이유를 알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이 왜 나에게 특별한지를 생각해봤다. 그 이유는 그 사람 옆에 있으면 내가 스스로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다. 그 사람은 내 작품을 칭찬해줬을 뿐인데 말이다. '내가 정말 그를 좋아했던 이유는 이것 뿐이었을까?' 되뇌어보면, 이것때문만은 아니겠지, 싶다가도 이 이유가 참 컸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의 마음을 알아준 사람이라는 느낌.


아무것도 행동하지도 심지어 이성적인 마음이 없음을 재차 확인해도 그가 나의 작품을 칭찬해줬을 때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마음을 알아줬던 것에 대한 감동이었던 것 같다.

구두로 정리해보니 왜 좋아했는지 조금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나에게 나오는 빛을 반사해서 다시 나에게 그 빛을 돌려주는 거울을 사랑(???)했다. 나르키소스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나르시시즘을 사랑으로 착각해 보낸 긴 시간이 첫 번째 대가였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인연을 만나기까지 긴 시간이 흘렀다. 우연으로 만나게 된 이 계기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계속 그 연못을 보고 있다가, 결국 빠져 스스로의 시간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두 번째는 이 사실이 온전한 나의 마음의 진실이든 아니든, 알게된 순간부터 미묘히 느끼게 되는 부끄러움이다. 상대를 그렇게 소비적으로 생각했던가 하는 조금의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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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을 적으면서도 위의 과거 누군가를 좋아했던 감정이 내 마음속에 정말 어떤 것이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나도 유미의 세포들처럼 내 마음속 세포들의 상태를 알 수 있다면, 지금 내 마음 속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뿐이다. 아마, 지금은 이렇고 또 다른 날은 다른 생각으로 바뀔지 모르겠다.


단지 오늘은 그저 나는 왜 그렇게 그 친구를 좋아했던가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 친구에게서 내가 느꼈던 주감정을 무엇이었을까. 물론 이건 정말 단순 부정의 변명과 자기합리화와 회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지금의 나로서는 가장 솔직한 말이었다.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마음에 죄는 없다.

단지 다음엔 그 '짝사랑의 감정'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지금의 소중한 인연에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을 지속하겠다는 마음과 함께

이렇게 얼토당토 않게 마무리해야겠다.

원래 누군가를 좋아했던 마음을 적어본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으니까.



2025.09.23. 세 번째 화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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