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면 하고 싶었던 것들...
새로운 곳을 전전긍긍하면서 이직생활을 해왔던 지난 1년 내지 더 많은 시간동안, 나는 몸을 갈아넣으면 내가 성장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몸이 지치자, 모든 것을 멈추게 됐다.
대학교 때의 학과를 살리고 그것이 나의 꿈인지 혹은 살고 싶은 현실이었는지 생각할 시간도 갖지 않은체, 그대로 졸업을 해 프리랜서와 직장인의 경계선으로 일을 시작했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의 삶은 내 몸에게 가혹했다. 13시간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을 했으며 그 사이에 식사시간 외엔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장실도 잘 안가는 타입이었고, 내 눈 앞에 쌓여있는 업무만이 뇌를 마비시킨 상태였다고 회상된다. 운동은 전혀하지 않았고, 늦은 귀가에 야식은 습관이었다. 야식 후에는 기절하듯이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한달을 꽉 채우고 두달을 채워갈 어느 시점에 벌써 내 몸이 아작나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프게 된 곳은 허리였다.
한번도 허리통증으로 걷거나 일어나지 못할 정도라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누군가의 부축없이는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하고 또 병원까지 가는 택시조차 버티지 못하는 허리가 내 삶에 많은 충격과 변화를 주었다.
처음에 아팠을 때는 디스크 주사를 맞고 그대로 집에서 누워있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그대로 누워있는 삶이었는데, 일하면서 '일이 끝나면 제발 아무것도 안하고 일주일동안 누워서 잠만 자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이 이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극적이었지만, 나름 행복했다.
하지만 점점 이 고통이 계속되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와 화장실조차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가지 못하는 삶에서 존엄성이 흔들리는 느낌까지 들었었다. 그 순간에 느끼는 공포의 과장일지 모르지만, 허리가 계속 찌릿찌릿하게 아픈 것은 생각보다 불행했다.
병원을 왔다갔다하는 차 안에서의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나의 시선은 창 밖을 향해있었다.
'저렇게 맘편히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 않고 무거운 것을 들 수 있으며, 아니 그저, 아프지 않고 걷고 웃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를 느끼게 됐다. '평범'하다는 그 삶이 빛나는 특별함으로 참 갖고 싶었다.
그때 지금 이 직장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무엇보다, 이 일이 정말 내가 내 인생의 시간과 육체적 노동력을 바칠 정도로 값어치 있는 삶인지 스스로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 일은 내가 행복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허리가 아프면서 내게 겪게된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만약 내가 허리가 아파서 누워있었던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 이런 생각은 들지 못하고 그렇게 계속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허리가 아픈것은 내 인생에 급브레이크를 선사해줬고, 그 덕에 나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간을 벌게 됐다.
이전 직장이 나에게 돈을 벌어다 준다하더라도, 진지하게 다음 직장, 다음 직무를 향해 준비해가는 것이 내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게 됐다.
이것을 실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는 다시 이전 직장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직장에서 한 직무로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인 것은 늘 필요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그 느낌을 다시금 되세긴다. 이것이 내게 돈을 벌어다 준다고 하더라도, 조금 더 내 몸을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그리고, 조금더 나의 시간과 노력, 노동력을 쏟기에 아깝지 않은 직무를 하겠다고.
어쩌면 삶에서 아픈 경험은 내가 가고 있는 삶의 방향이 맞았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 같다. 앞서 나는 직무를 바꾸는 지경까지의 결단이었지만, 이렇게 거창한 방향이 아니더라도 살아온 삶의 습관이 건강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이제와 생각한다. 지금은 허리가 아프지만, 나의 눈은? 하루종일 노트북을 본 나의 눈은 건강한가? 나의 정신건강은? 회사 내에서 겪은 실패를 나는 잘 극복해냈는가? 나의 마음 상처는? 하다 못해 나의 두피 건강은??? 우리는 몸이 아프다고 소리칠 때만 귀기울여 줬던 것은 아닐까?
돌이켜보면 나는 내 몸을 정말 사랑하지 않았다. 이전의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렇고, 내 삶 전체에서 '몸'을 아꼈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좋아하는 한 얘기가 있다.
"건강했을 때는 삶에서 고민이 많다. 이것 저것 중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았을 때는 고민은 딱 한가지가 된다. '건강해지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건강의 무게다."
삶의 모든 고민을 모아도 건강 한 개의 무게감과 동일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허리가 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장거리 여행도, 스카이다이빙도, 혼자하는 달리기도 모두 할 수 있을 그 순간으로 빠르게 회복되길 기다리고 있다. 뼈저리게(말 그대로 뼈저리게) 느끼게 된 건강과 삶의 변화에 대한, 진로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오늘도 두번째의 기록한 줄로 기억해두려고 한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이전과 똑같이 살면 안된다.
그렇게 건강의 적신호는 그것으로 역할을 다했다.
우리는 왜 건강해야할까. 열심히 살아온 나의 시간들이 한 순간의 꽃처럼 져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건강해야한다. 꽃은 오히려 지나가는 것이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반드시 건강해야한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건강해야한다. 하지만 이 말이 사회적으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틀에 얽히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해 말하고 싶다. 현재의 치료로 최선을 다한 상태라면, 현재의 상태가 가장 건강한 상태임을 받아들이면 된다. '건강'은 '손가락 다섯개 발가락 다섯개, 직립보행, 눈 두개, 팔 두개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에. 건강은 생활습관이자, 자신의 몸을 아끼는 태도다. 우리는 반드시 건강해야한다. 우리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한다.
P.S 반성하는 부분으로 지금도 허리가 조금씩 괜찮아지자, 그 전에 하던 일을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하나 하기로 했다. 경제적인 벌이가 필요해 충동적이었단 부분이 반성의 이유다. 하지만 이 계기로 오히려 앞서 말한 스스로의 다짐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는지 시험해봐야겠다. 1. 나 자신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2. 일의 순간에도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을 것인가. 3. 돈의 유혹에도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해내갈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한 이유로 경제 벌이가 되는 직업이 필요한 자연스러운 자본주의사회에서 내가 후회없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이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울 설렘을 스스로 응원하고, 여전히 자기자신을 가장 사랑하기를 바란다.
2025.09.16. 두 번째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