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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냥이 Sep 18. 2021

골드미스가 아닌 그냥 미혼이라서




골드미스를 꿈꾼 적도 있지만 목표는 아니었


싱글이라는 말도 거창하게 느껴지고, 그렇다고 아주 퍼펙트한 남자가 나타났는데도 결혼을 거부할 비혼은 아니라서 미혼이라는 단어가 내게 어울린다 생각한다. 나이 든 싱글은 죄다 골드미스인 줄 오해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래서 결혼을 위한 아주 작은 노력조차 하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무의식 중에 본 내 미래는 화려한 골드미스였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캥거루족 8년 차이고 다시 독립을 꿈꾸고 있지만 무직에 부족한 자금과 폭등한 부동산 시장이라는 상황이 겹쳐 브론즈미스조차도 못 되었다.


내가 벌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현실은 내가 골드미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김시켜줄 뿐이지 대신해서 먹여 살려 줄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그럴듯한 닉네임을 부여받지 못한 그냥 나이 먹은 미혼의 시민 1이어도 이 정도의 고난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성인이라면 가끔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이라며 넘길 수 있다. 전기가 나가면 두꺼비집을 열어보고 차단기를 올릴 줄 알고, 내 마음에 드는 전등으로 직접 교체할 줄 알고, 각종 필터와 손잡이 교체 정도도 유튜브와 블로그의 힘을 빌려 직접 할 줄 안다. 작은 가구 정도는 도면까지 그릴 줄 알고 힘이나 전문 기술이 필요한 일은 동네 철물점에 부탁하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면 어차피 남편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잘해주지 않고 요즘 남자들도 집에서 안 해 버릇해서 할 줄 모른다며 다들 나처럼 직접 하거나 사람을 불러서 해결한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고, 성인이라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비하면 당연히 힘들고 복잡한 것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는 것이다.


물론 가끔 결혼한 사람들이 부러운 순간도 있기는 한다. 요리는 잘 못해서 가끔 요리 잘하는 남편이 밥상을 차려준다라는 글을 보면 나도 그렇게 요리를 즐기는(이왕이면 설거지까지) 남편이 밥 좀 해줬으면 좋겠고, 돈 잘 버는 남편이 노후 걱정 없게 잘 준비해주었으면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끔 부럽고 아쉽다는 것이지 그런 점 때문에 혼자 사는 삶을 포기하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가지는 않는다. 부러움 한번 안 느끼고 아쉬움 전혀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다행이라면 빈약한 인맥 덕분에 불안한 미래에 대해 가끔 심란해진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결혼식 참석도 거의 없어서 내 선택지에 "결혼이 나의 구원"만이 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사실 호화찬란하고 행복이 넘치는 결혼식을 많이 가더라도 내가 결혼을 꿈꾸거나 그 여지를 좀 더 많이 남겨놓게 될 가능성은 적을 꺼라 생각한다.


왜냐면 나에게는 결혼을 안 해야 될 이유와 혼자 살아야 할 이유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안 해야 될 이유와 혼자 살아야 할 이유


결혼하면 불행하기 때문에 결혼을 안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인생이 한두 가지 조건으로 행불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 결혼 여부가 행복의 절대 판가름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이 불행의 한 원인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언젠가 놓쳐버린 결혼의 단꿈이 아쉬움이 될 수도 있다.


단지 대체적으로 알려진 결혼식 이후의 삶의 모습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 맞지 않을 뿐이다.


제일 큰 이유는 혼자 살고 싶다는 것인데 결혼을 하면 반드시, 최소 남편 한 명과는 한 집에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결혼은 이미 탈락이다. 각 방을 쓰더라도 집이라는 같은 공간을 공유해야 하며 상황에 따라 부모님을 모시게 되거나 누군가의 형제와 같이 살아야 할 수도 있고 그 결정을 나 혼자 독단으로 내릴 수 없다.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홀로 들어서면서 드디어 하루가 시작됨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나에게 집에 나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육아가 기다리지 않더라도 또 다른 출근을 의미했다.


결혼찬성론자나 싱글말살론자들은 어떻게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집으로 가는 것이 출근에 비할 수 있는 것이냐 묻겠지만, "혼자 있는 집"이라는  자체를 원하는 나에는 그 누가 집에 있어도 무언가 감내하고 배려하고 참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분들은 나를 길러주시며 먼저 베풀어 주신 분들이라, 나랑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동급의 성인과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과는 아주 상황이 다르다.)


집에 있을 때만큼은 내가 원하는 스케줄대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활하기를 원한다. 주말에 빨래를 모아서 하다가도 퇴근을 좀 일찍 한 날은 모아져 있는 만큼 빨래를 하거나, 왠지 퇴근길에 고기가 당겨서 어떤 걸 먹을까 상의할 필요 없이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돼지 항정살을 집어 들어서, 이것저것 준비하는 것 없이 냉동실에 얼려진 밥 데우고 소금으로만 간해서 프라이팬에 달달 구운 고기반찬 하나로만 먹고 치우는 간단함을 원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논의를 해야 한다거나 배려를 해야 하는 과정이 추가가 되는 것은 상상만 해도 피곤하다. 그런 건 주중에 이미 회사에서 충분히 했는데 퇴근 후나 주말까지 그 생활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 만일 모든 결정은 나에게 맡기고 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내 손발처럼 시키는대로 착착 일을 해내는 유니콘 같은 남편이라고 하더라도, 혼자면 이 모든 것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결코 장점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삶 자체를 추구하게 되면 결국 삶이 모든 모습이 혼자 살아야 할 이유가 되고 결혼을 안 해야 될 이유가 된다. 그런 생활이 가능하게끔 도와줄 남자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이 삶은 완성이 될 테니까 말이다. 결혼을 하기 위한 아무리 작은 노력조차 하지 않겠다는 말에는 적극적으로 남편감을 찾는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것만이 아니라 혼자인 삶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두 갈래의 노력은 교차점이 없다.


때문에 간혹 내가 보편적으로 알려진 결혼 생활에 대해 질색을 해서 비혼을 주장하는 것이라 오해하는 사람들은, 결혼의 세세한 모습을 알려주며 미혼이 모르는 행복이 있다고 설득하려고 한다. 요즘 남자들 가르쳐주면 집안일 잘 도와주고, 요즘은 결혼해도 일 계속 다닐 수 있고, 요즘은 시댁에 그렇게 며느리 노릇 안 해도 되고.... 이 모든 것들을 미혼인 지금 아무런 노력 없이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말로 해주어도 "에이, 그래도..."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싱글말살자에게 사냥 당하지 않는 방법


언제 결혼할 거냐라는 질문에서 멀어진 지금은 다른 권유에 질색하게 된다. 아직 혼자인 남자 있는데 소개받을 생각 없냐는 말이다. 이게 30대 초반까지 듣던 질문과는 그 결이 상당히 다른다. 그래도 결혼 적령기에는 이상형이 어떤지 물어보고 자기가 아는 어떤 사람이 있는데 성격은 어떻고 직업은 뭐고, 자신이 그동안 지켜봐 왔는데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을 소개해주려고 했었다. 한데 30대 중반이 넘어간 이후에는 주위에 남는 싱글녀 하나, 남는 싱글남 하나, 아, 매치되네 만날래? 이런 느낌이다.


자신은 만나 본 적 없지만 옆집 아줌마의 아들의 친구의 아버지의 사촌의 막내가 지금 싱글이라더라는 식이다. 사람이야 어찌 됐던 싱글 하나씩 짝지어서 지워나가는 퍼즐 게임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싱글말살론자들에게 이미 나는 자아를 가진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저 세상에서 없어져되는, 저 나이 먹도록 혼인신고 한번 하지 않은 불순분자로 분류되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 대부분의 싱글말살론자들은 결혼을 추천하면서도 결혼의 불행함에 대해 토로하고 그러면서도 결혼하면 행복하다는 자아분열을 종종 일으키기도 한다.


이들에게서 도망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방금 그들이 털어놓았던 결혼의 불행한 사연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예의를 좀 아시는 분이라면 헛기침을 하며 돌아서 주시고, 그렇지 않더라도 금세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 싱글말살정책을 펼치는 것을 잊어버리신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피할 수 없는 편견은, 어딘가에 하자가 있는 인간일 것이라며 매서운 눈초리로 단점을 찾아 나를 훑는 눈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은 있기 마련이기에 뭐라도 하나 걸리기 마련이지만, 내 얼굴의 여드름 하나조차 그들에게는 결혼을 하지 못한 치명적인 하자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결혼하지 못한 이유 하나쯤은 다들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혼자 살고 싶다"이고 다른 이들도 대부분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아닌 이상 단점이 아닌 그저 이유로서 존재할 뿐이다. 어쩌면 "결혼 시장"에서만큼은 이것이 "단점"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결혼 시장에서 "집에 혼자 있고 싶다"라는 소망을 가진 사람은 아주 지대한 하자를 가진 상품임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그런 이유로 싱글을 멸종시켜야 할 존재로 취급하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나긴 인간의 삶에 결혼은 무수히 많은 갈림길 중 하나일 뿐인데 말이다.  






결혼해도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원하지 않는 다른 종류의 행복일 뿐


결혼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여성분들 중 의외로 큰 비율을 차지하는 부류는 소위 힘든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이른바 슈퍼우먼이다. 돈 버는 일과 가정을 꾸리는 일, 육아 모두 남편의 큰 도움 없이 해내면서 가끔 집안일 한 번씩 하면서 생색은 거하게 내는 남편에 대해 감사한 마음까지 가지고 있는 분들이 대게 결혼 생활에 만족하며 꼭 결혼을 하라며 강력하게 추천한다. 오히려 결혼을 말려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이 더 결혼 생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자신만 이 지옥에 있기 억울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결혼을 추천하는 이유가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죽자는 이유로 결혼을 하라고 권유하는 부류는 결혼 생활에 대한 하소연도 만만치 않게 한다. 하지만 억척스럽게 결혼 생활을 해내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체력이 달려 헉헉거리면서도 잠시 뒤돌아 본  곳에 자신이 지키며 일구어 놓은 한 가정이 온전히 있는 모습에 감동을 느. 이것은 어떤 것을 해냈다라는 보람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그 이상을 해냈다는 만족감이 그들에게서는 보인다.

 


같은 상황에 대해 행복을 느끼는 그들과 거부감을 느끼는 나는 서로 반대의 선에 서있. 그 정도로 열심히 살 거면 혼자였으면 더 잘 살았을 것이라는 말은 그들에게는 틀린 말일 것이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퇴근 후 혼자인 집으로 돌아갔다면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살지 못했을 것 같다. 더 많은 일 부여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족들 때문에 어쩌면 그들이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고 의욕을 살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의 스트레스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별도로 각각 적립하며 살아가는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다.


나는 혼자 있는 삶을 원했기에 미혼을 선택했고, 기혼은 함께 하는 삶을 원했기에 결혼 한 것뿐이다. 서로 다른 선택지를 두고 비교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혼한 자신과 결혼하지 않은 자신의 삶을 동시에 살아보지 않는 한 말이다. 행복이라는 삶의 목표는 같지만 그 형태는 다르고, 그것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매우 많이 다르다. 어느 것이 불행해보여서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행복으로 가는 길이 이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때문에 각자의 선택을 존중할 필요도 없다. 그런 선택들이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그뿐인 것이다. 


거기에 욕심을 좀 더 내보자면, 그렇게 살 거면 뭐하러 결혼했냐 라는 말을 하지 않을 테니 나한테도 그 반대의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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