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돈냥이 Oct 07. 2021

숨겨진 살이 많아서



네가 뭐가 살이 많아


말랐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키 대비 몸무게는 분명 말랐다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맞다. 하지만 키에 비해 뼈대가 작은 데다 근육량이 적어 보기보다 살이 많다는 것은 가족 외 나와 팔짱을 낄 만큼 친한 사람들만 아는 비밀이다. 최근에는 몸무게까지 보통 범위에 들어왔다. 사이즈는 상하체 모두 한 사이즈 커졌음에도 여전히 처음 본 사람들은 말라서 좋겠다고 말한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가는 손목과 발목이지만 그것은 절묘하게 반팔과 반바지에 가려진 부분에 살이 집중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보기에는 가늘어 보이는 팔인데 팔짱을 끼면 예상과는 다른 풍만함에 화들짝 놀라버린다. 팔뚝에 왜 이렇게 살이 많냐면서...


키도 크고 말라서 옷 입을 때 스트레스받지 않겠다는 말은 정말 내 속사정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가려진 살이 많기에 맞는 사이즈의 옷을 사는 것부터 어렵고 체형을 가리기 위한 옷이 오히려 부하게 보이게 만든다. 청바지에 블라우스나 셔츠만을 고집하는 것이 내 취향이기 때문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없다.


불편한 점은 옷뿐만이 아니다. 체격에 비해 더 많은 살은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되는데 키에 비해 체격이 작은 편이라 조금만 살이 쪄도 숨이 차고 움직임이 둔해지며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보기에는 말랐어도 몸무게에 예민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몸인 것이다.






뭘 입어도 이상한


상의는 55, 하의는 77 혹은 88

혹시 상의라도 속 편하게 아무거나 입으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곡선 없고 팔뚝이 굵고 팔목이 얇은 사람이 입었을 때 어색하지 않은 디자인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예뻐 보이거나 잘 어울리는 게 아니라 어딘가 이상함을 풍기지 않는 옷 말이다. 일하지 않은 체형은 날씬과 통통 여부를 떠나 맞는 옷을 찾기가 어렵다.


우선 팔이 끼지 않아야 하고 배가 나와보이지 않게 라인도 들어가 있어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인지라 특히 버스 손잡이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팔을 들어올릴 수 있는 넉넉함이 필요하고, 걸을 때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의외로 턱 살이 있어서(보기엔 샤프하지만) 넥라인 인상 영향을 준다.


이렇게 고르면 남는 선택지는 신축성이 있으면서 라인이 제대로 잡힌 블라우스와 셔츠, 립라인티 뿐이다. 가오리티가 나왔을 때는 유레카를 외쳤지만 둥실한 배를 가진 덕분에 모든 가오리티를 소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복으로 가면 더욱 심각해진다. 일단사이즈부터 곤란한데 29, 30을 입는다고 해도 점원은 27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추천한다. 그리고 탈의실을 다녀온 나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허벅지가 튼실한 하체비만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바지가 잘 없다. 입고 난 뒤의 라인은 둘째치고 말 그대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신축성이 좋으면서 타이트함이 적으면 울퉁불퉁한 살이 흉하게 드러나고, 툭 튀어나온 종아리 알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질 좋은 면바지가 특히 이런 특징이 있어 부츠컷의 신축성이 중간 정도의 청바지를 선호하게 되었다. 게다가 허리에 비해 골반과 허벅지가 넓어 거기에 사이즈를 맞추면 상의의 배 부분이 튀어나온다.


스키니 진이 한창 유행할 때 사람들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왜 스키니를 입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 다리가 바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면 농담하지 말라며 웃었다. 입어보지도 못하고 버려야 했던 스키니 진이 몇 벌이나 있었다는 현실에 내 마음만 아플 뿐이었다.



원피스는 아예 고려할 수가 없다. 어째서인지 모든 라인의 원피스가 내가 입으면 임부복처럼 보이게 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임신부 같은 모습이 된다. 배가 뚜렷하게 나온 것도 아닌데도 왠지 임신부처럼 보인다 생각한 날,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을 양보받았다. 허리 라인이 확실하게 들어간 정장풍의 원피스였는데 말이다.


치마도 마찬가지이다. 왜 이렇게 부 해 보이냐며 머리는 작은데 하체가 너무 뚱뚱해 보여서 마치 공룡 같다는 말을 들었다. 볼록거울로 보는 모습 마냥 왜 이렇게 보이는지 본인인 나도 궁금했다.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 예쁘고 안 예쁘고는 옷을 선택하지 기준이 되지 못했다. 의아함을 자아내지 않는 복장, 그것을 찾는 것이 목표였고 나름 블라우스와 부츠컷 청바지에 정착해서 만족은 하고 있다. 그나마 배에 힘을 주면 정장이 매우 잘 어울린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항상 나 홀로 다이어트 중


사실 남들이 보기에는 일단 날씬해 보이기 때문에 그다지 단점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내가 옷을 살 때 불편하고 아쉬울 뿐이라서 그렇지 그로 인해 타인이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없는 편이다. 내가 진짜 불편을 겪는 것은 두꺼운 허벅지 살이나 팔뚝살이 아닌 은은하게 숨겨진 뱃살, 내장지방 때문이다.


마치 기저귀 찬 아이들의 배처럼 뚱실하게 튀어나온 배는 성인이 되자 마치 중기 임신부의 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불룩 튀어나온 살이 없으니 나도 그렇고 모두들 나는 뱃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의자에 앉으면 허벅지에 뱃살이 살짝 얹어지기도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나만이 주물럭거리며 존재를 인식하고 있던 그 뱃살은 내장지방이라는 개념이 알려지며 정체를 알게 되었다. 뱃속에 빼곡히 들어앉아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세에 따라 밀려나오며 뱃살을 형성하고 체지방을 측정하면 나오는 어둠 속에 숨겨진 살들이었다.


하체 비만인 것도 모자라 내장 비만이라니.... 인바디 기계만이 내가 비만임을 아는 유일한 존재였다.

유산소 운동으로는 부분적인 살만 빼는 것은 불가능했고 꾸준한 스트레칭과 바디 마사지를 통해 체형 불균형은 어느 정도 해결을 할 수 있었다. 내장 비만은 운동만으로는 어려워서 식이가 불가피했는데 간식을 좋아하고 고열량 음식을 선호하는 나에게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애초에 이런 식습관 때문에 내장 비만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라면 나이가 들면서 소화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식이를 하게 된 것이다. 아침은 과일과 견과류를 먹고 점심은 샌드위치 하나면 오후 내내 속이 든든했다. 제대로 챙겨 먹으면 오히려 속이 답답해서 어지럽기까지 해서 최대한 가볍게 먹으려고 한다. 저녁은 든든하게 먹지만 제대로 골고루 챙겨 먹고 식후에 편한 자세로 있을 수 있으니 더부룩한 느낌을 피할 수 있다.




이런 내 노력은 다른 다이어터인 친구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부분적으로 살이 많다는 것을 아는 친구라도 나의 다이어트 소식은 용납을 하지 않았고, 이런 잔잔한 일상 다이어트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도 없다. 내장지방과 하체비만은 약으로 빼는 게 쉽다지만 왠지 순리를 거스르는 듯한 느낌에 꺼려진다. 먹으면 내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되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을 막는 약이라니 거부감이 들었다.


이렇게 살을 빼더라도 워낙 느리게 줄어드는 데다 애초에 보이지 않는 곳의 살이 빠진 거라서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이 나 혼자 만족하고, 옷을 입을 때 답답하게 끼지 않는 것에 행복해하는 것이 전부이다. 함께 다이어트 이야기를 하는 대화에 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마음도 있다.


오해이긴 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타고난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은 진실이 무엇이든 강점이 될 테니까 말이다. 오늘도 버스 세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이동할 것이다. 이렇게 운동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몸매 덕분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사람인 척 살아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