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돈냥이 Sep 24. 2021

체력이 약해서


잘 먹고 열심히 움직인 게 독이 되었다


20대 중반, 한창때의 나이에 나는 누운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자도 자도 피곤했고 숨을 쉬는데도 온 힘을 끌어모아 내 흉곽을 들어 올려야 되는 듯한 느낌으로 숨을 들이켜야 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팠기에 자주 먹었고 조금만 활동해도 쉽게 피로를 느껴 을 자야 했다. 취업도 못하고 많이 먹고 많이 자는 나는 사회의 쓰레기가 된 듯했다.


우연한 계기로 집안 어르신이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진단을 받게 되었다. 타고난 체력 자체가 약한데 남들처럼 생활하면서 체력을 급 소진하였고, 그 결과 25살의 수치가 요양원에 누워있는 80대 노인과 비슷하다는 결과였다. 체력이 없으니 잠도 깊게 못 자고 소화력이 약하니 먹고 소화하는데 오히려 체력을 더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한 달 동안 약을 지어먹으며 이유식에 가까운 수준으로 음식을 먹고, 맨손체조 같은 가벼운 운동을 짧게 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했더니 머리도 맑아지고 숨쉬기가 편해졌다. 숨을 쉴 때 힘을 줘서 가슴을 들어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내 건강 상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고 몇 년을 조심해서 생활했다. 그리고 별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미리 보신하자는 의미에서 찾아간 다른 한의원에서 건강한 70대 노인의 체력 같다는 소견을 받았다. 당시 나는 내가 매우 건강해졌다고 믿고 있었다






남들도 다 그래의 함정


내 체력이 약하다는 걸 몰랐었다. 다들 그것을 게으름과 편식이라고 불렀다. 맵고 뜨거운 것을 잘 못 먹고 밥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반찬을 먹는 한식을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지고 쉬이 설사를 하는 나에게 잘 안 먹어서 그런 것이라며 더 잘 먹고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쉽게 피곤해지는 것은 운동을 안 해서 그런 것이고, 남들도 피곤하지만 다 참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나는 남들이 어떤 상태로 살고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남들은 내 상태와 자신의 상태를 비교해서 "다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남들은 타인의 상태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건지 SF적인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한의원에서 진단을 받고 몸이 좋아지면서 남들이 했던 그 말들이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그 상황에서 그 말을 하는 것이 매뉴얼인 마냥 나에게 조언하고 야단을 쳤던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 원망의 대부분은 타인보다는 그 어린 시절부터 내 상태보다는 무조건 먹이고 움직이게 했던 부모에게로 향고, 과거에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라 평생 그 원망이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원망은 주위에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해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세상 그 누구도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 아이의 입장에서 먼저 이해하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가 어떤 반응을 하면 어떻게 라고 문제와 대응방안으로 매뉴얼화하고 있었을 뿐, 어디가 안 좋은지, 왜 그러는지를 살펴보라고 하지 않았다. 그 두 가지는 같은 행동을 요하지만 다른 결과를 낳는다.


맵고 뜨거운 것을 잘 못 먹고 먹는 속도가 느리며 쉽게 피곤을 느끼는 아이를 보고, 그저 말 안 듣는 고집쟁이에 짜증스러운 아이라고 하며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무조건 예 하고 따르라고 윽박지르기보다는, 왜 안 먹으려고 하고 왜 일상생활을 힘들어하는지 알려고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라고 알려주는 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즘에서야 육아 전문가와 심리 전문가들이 여러 정보를 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어른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것조차 인식하고 못 한채 그저 "남들도 다 그래, 견뎌내면서 사는 거지"라고 조건반사처럼 말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 범위 밖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알아야 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이해하기 위한 여유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설사 남들이 다 그렇더라도


남들보다 하염없이 약한 체력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남들보다 잘해야 하는 학창 시절부터 남들만큼 해야 하는 사회생활까지, 디딜 땅이 없는 늪지대에서 달리는 것과 비슷했다. 기초 체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그 위에 체력을 쌓아갈 수 있을 텐데 이미 다 소진해버린 나에게 최선은 그나마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고 밤늦게 노는 걸 좋아하지도 않으니 이 상태만 유지하면 남들이 체력이 무너지는 40대에 비슷하게 경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40대를 목전에 앞둔 지금 그 생각이 얼추 들어맞는 거 같기는 하다. 그리고 지금은 남들보다 더 많이 걸으면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평균과 기준이라는 수치에서 본다면 "남들이 다 그런" 수준은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건강한 70대 노인의 체력이라면 나에게 "다 그런 남들"은 건강한 70대 노인인 것이다. 그걸 본인 기준에서 일방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하고 억지를 쓴 사람들이 문제였던 것이고,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던 어린 시절이었기에 상황이 악화되었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남들처럼 살 필요가 없다. 먹으면 해가 될 것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거절해도 되고, 먹는 척하면서 치우는 요령도 생겼고, 무엇보다 나에 대해 이렇다고 이야기했을 때 면전에서 부정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되지 않는지, 나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위에 도움이 없으면 실천하기가 어렵다.




남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방법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다. 어렸을 때도 생각했듯, 두 사람의 육체로 살아보지 않고서야 그 사람의 몸 상태가 어떤지는 절대 알 방법이 없다. 건강 검진 결과가 동일해도 병에 걸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듯이 어떤 수치가 두 사람이 같은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분명 나태함을 병약함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다른 방법을 권유하는 게 그 사람에게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 건, 상대방이 본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먼저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게 진정 도움이 주고 싶다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전 03화 보통 키, 보통 몸무게가 아니라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