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부러워하던 20대의 하얗고 매끄러웠던 피부는 무관심과 스트레스로 트러블성 피부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기초화장품은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샘플과 잡지에서 나오는 부록으로 연명했고, 가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천연팩도 했지만 한번 나빠진 피부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갔다. 피부과도 다녀보았지만 전반적으로 건강이 안 좋은 탓도 있고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었기에 이제 여드름은 위치만 바뀔 뿐, 언제나 얼굴과 몸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는 존재가 되었다.
본디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밖에서 갑자기 잘 익은 여드름이 폭발해 피를 흘리는 불상사가 아니면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밥 같이 못 먹을 정도만 아니면 이 정도에서 만족하자라는 심정이었는데, 남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내 안부보다는 여드름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너 얼굴 왜 그래"
"피부에 그거 뭐야"
친척 어르신부터 학교 선배, 매일 만나는 직장 선후배 등등, 오랜만에 만나든 자주 만나는 사람이든 내 얼굴을 보면 마치 여드름이 내 본체인 것 마냥 어떻게 생긴 것이며 왜 안 없애고 그대로 두는지에 대해 먼저 물었다.
글쎄요, 저도 좀 알고 싶네요. 그런데 잘 지내시죠?
피부가 깨끗해진 후
피부과 진료와 각종 민간요법에도 내 피부는 좀처럼 개선되질 않았고, 안부인사 대신 보내는 여드름의 위치와 익은 정도를 파악하는 시선에 대해서도 포기할 즈음, 회사와 같은 건물 안에 피부관리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부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나에게는 가볍지 않은 고가의 피부관리를 끊었다. 놀랍게도 피부 관리 1년 후, 여드름과 탄력 저하가 해결되었고 본래의 뽀얀 피부색도 돌아왔다.
문제는 영양 부족과 적절한 마사지의 부재였는데 그동안 화학 약품을 적게 쓰고자 기초화장품을 너무 적게 발랐고 잘못된 자세와 스트레스로 몸 구석구석이 뭉쳐서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피부 상태를 악화시키고 있었던 거라고 했다. 꾸준히 마사지를 받고 얼굴에 막을 씌운다 할 정도로 기초 제품을 열심히 발랐더니 이미 생겨버린 여드름 흉터 외에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심지어 은은한 광택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피부에 대해 아무런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만나자마자 피부가 왜 그렇냐고 묻던 사람들이 피부가 좋아지고 난 뒤에는 좋아졌다거나 깨끗해 보인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안녕히 지내셨어요?라는 인사에 응, 그래 라며 그냥 지나가버리는 게 다였다. 그동안 정말 내 안부보다는 여드름의 안부가 더 궁금했던 것 마냥 좋아진 내 피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동안 내 안 좋은 피부를 보면서 자신의 피부가 그렇지 않음에 상대적 행복감이라도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라는 생각은 내 삐뚤어진 억측일지도 모른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보이는 빨갛게 솟아오른 뾰루찌에 대해 보이는 대로 말했던 것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피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것뿐일 수 있다.
깊게 생각해봤자 진실은 알 수 없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물어도 아마 그렇게 행동한 것 자체를 기억 못 할것이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속상했던 당시의 감정은 불쑥 솟아올라 섭섭함으로 변하였다.
안 하면 좋을 말들을 들어도 어쩔 수 없어야 되는 사람은 없다
눈에 띄는 문제점이나 상대방의 고민거리에 대해 언급을 할 때에 우리는 예의라는 필터를 거쳐서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서 좋을 것이 없고 상대가 그것을 언급하기를 꺼려하거나, 사회적으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무례하다는 인식이 있을 때 그렇게 한다. 즉, 순간적인 판단에 이런 부분에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말을 꺼내는 것이다.
내가 섭섭하다는 기분을 느낀 것은 외모에 대한 지적은 분명 무례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려운 상대였다면 하지 않을 이야기들을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행해졌다는 것이다. 얼굴을 보자마자 피부 트러블에 대해 지적당했을 때, 나는 거기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내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고 주위 사람들도 그 행동에 대해 만류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내 안부보다는 여드름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평소에도 말을 가리지 않고 한다기보다는 상대를 가려가면서 말을 고르는 사람들이었다. 즉, 그들에게 나는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피부에 대한 속상함이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으로 변하였고, 할 수 있다면 그런 대접을 받는 자리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내 피부에 대한 걱정이나 지적만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느냐에 대한 표시였던 것이다.
계속 노력한 끝에 매끈하고 하얀 피부를 갖게 된 것에는 만족한다. 매일 로션을 바를 때마다 걸리적거리던 여드름 없이 매끈하게 문질러지는 피부에 감탄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그 무례한 행동들 덕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는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며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듣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 의무를 가진 사람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