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어 속으로만 비명을 질러야 하는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춥고 배고픈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속으로 울어야만 했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칠수록 계속되는 실패와 나의 무능함만 확인하는 경험만 쌓여갔습니다. 도망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에게 남겨진 방법은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시기가 지나고, 그때도 그랬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것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겨울처럼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질 않고 얼어붙은 땅을 일구는 것도 어려운 그 시기를 지나니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기회가 하나씩 나타났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마치 사계절처럼 춥고 밤이 긴 시간을 지나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해 볼 기운이 나는 시간을 보내고 여기저기 뿌린 씨앗이 거센 폭풍을 견디며 열매를 맺고 그것을 수확해서 저장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없는 계절이 찾아왔을 때, 그 저장된 것들을 먹으며 좀 더 수월하게 견디면서 봄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고 낮과 밤이 있습니다. 매 봄과 겨울이 같지 않고 모든 낮과 밤도 다릅니다. 씨만 뿌려놓으면 물조차 주지 않아도 적절한 때에 비가 내리고 적정한 온도에서 알아서 성장해서 수확만 열심히 하면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땅이 너무 말라 물을 아무리 주어도 부족할 때도 있고 적절한 거름을 주면서 주의를 기울여야 수확을 할 수 있는 시기도 있습니다.
또 아무리 날씨가 좋고 좋은 종자를 좋은 땅에 심어도 이유 없이 아무것도 나지 않는 때도 있고, 열심히 길러놓은 작물이 태풍에 전부 주저앉아 버리기도 합니다.
아무리 안 좋은 상황이어도 지나가면 좋은 날이 오고 아무리 좋은 상황이어도 지나가면 힘든 날이 오기도 한다
춥고 배고픔에 떠는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같이 막막하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정말 괴롭고 힘들게 느껴질 것입니다.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무언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숨이 막히는 느낌일 겁니다.
그럴 때 그대로 숨이 막혀버리지 않도록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기운을 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하면서 마음을 달래주고, 기회가 왔을 때 뛸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켜야 합니다. 외적으로 결과를 내지 않아도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며 내적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계절이 지나면 반드시 좋은 계절이 온다는 믿음이 있으면 그 시간을 그냥 견뎌내는 것이 아닌 준비하는 시절이 됩니다.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보다는 예열을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잔잔한 행복으로 가득 찬 날들이 지나면서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할 일이 넘치고 운이 좋은 때를 지나, 평온하고 풍족한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힘든 시기가 오겠지만 이전의 겨울에 비해 준비가 잘 되어 있고 다음 봄을 기다리기가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주말농장을 하고 있습니다. 대여한 밭이라 겨울 동안은 경작을 할 수 없어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주말밖에 시간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주말 농장을 일구며 우리 인생의 사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겨울이 왔을 때 봄을 준비하는 일이 첫 번째 겨울만큼 힘들지 않았습니다.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듯 제 인생의 두 번째 봄을 준비하면 됐으니까요.
자신이 지금 어느 계절에 와 있는지 안다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하게 느껴질 겁니다. 지금의 시간이 언젠가 분명히 다가올 여유와 풍요의 시기를 위한 것임을 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