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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그리고 계속 준비 중

아직도 아무런 수확이 없다고 느껴지지만

by 돈냥이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고 봄비가 내려 땅이 충분히 부드러워지면 농사가 시작됩니다. 일교차가 심하고 날씨가 아직 안정되지 않은 이 시기에는 모종보다는 씨앗을 심어야 작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적합한 환경에서 싹을 틔운 모종을 밭에 심으면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쉬이 말라버립니다. 하지만 씨앗을 심게 되면 단단한 껍질을 충분히 뚫고 나올 수 있는 촉촉하고 따뜻한 때를 스스로 알고 싹을 틔우기 때문에 날씨가 변해도 적응하면서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땅 속에서 날씨를 느끼면 스스로 싹을 틔울 때를 알고 깨어나 열심히 자라는 작물을 보면 신기하고 기특합니다.


봄은 아직 건조하고 아침 공기가 차가워 작물이 빨리 자라지 않습니다.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고 수확을 할 때까지 3주 정도는 아무런 수확이 없기도 합니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솎아주기를 하면서 여린 야채를 먹을 수 있지만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물을 준 노력에 비해 수확이 참 적게 느껴집니다.


봄이 되면 바로 풍족하게 작물을 수확해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처음에는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없다





힘든 시기가 지나고 새로운 시작을 하였음에도 한동안 눈에 띄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기울이고 시간도 충분히 들인 것 같은데 막상 손에 쥔 것은 아주 여린 새싹뿐입니다. 그것도 일부러 키워낸 것이 아닌, 다른 것이 충분히 잘 자랄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겨진 것이지 제대로 된 결과물로 보이지 않을 겁니다.


이런 때는 묵묵히 할 수 있는 것을 지속하는 시기입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건조하면 물을 주고 산소가 뿌리까지 닿을 수 있게 흙을 돋아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대하는 수확량보다 더 많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모든 씨가 발아되지도 않을뿐더러 새싹 중 약해 보이는 싹은 뽑아주어야 남아있는 싹들이 더 튼튼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충분히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솎아주기도 해야 합니다.


소득이 없어도 계속 충분하고 적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 시기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풍요로움을 생생하게 상상하면서 기다린다면 그 시간을 즐기면서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가끔 새싹비빔밥을 먹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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